▲ 29일 현대부산신항 4부두 선착장(HPNT)에서 직접 본 HMM의‘알헤시라스호’의 모습. 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 기자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누구나 어렸을 적 한번쯤 부르며 놀았을 말 잇기 노래다. 하지만 이 노래에서 기차 대신 들어가도 손색이 없을 배가 한국에서 탄생했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인 ‘알헤시라스호’. 선수에서 선미까지 400m에 달하는 이 배는 에펠탑(300m) 보다 길고, 롯데월드타워(555m) 보다 조금 짧은 수준이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호’ 직접 보니

지난 29일 현대부산신항 4부두 선착장(HPNT)에서 처음 만난 HMM ‘알헤시라스호’의 첫인상은 ‘크다 못해 거대하다’였다. 배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건물 같았고, 움직이는 섬 같기도 했다. 선미에서 선수는 보이지 않게 까마득했고, 높이를 가늠하기 위해 올려다본 순간 목이 뻐근했다. 옆에 주차돼있는 승용차들은 마치 장난감처럼 작아보였다. 2만4000TEU의 위용이 느껴졌다.

“이 배가 HMM의 알헤시라스호입니다. 길이가 400m에 이르다보니 선미에서 선수까지 가는데 한참이 걸려요” 이날 설명을 맡았던 이진철 HPNT 영업담당임원 상무의 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승선 대신 옆을 따라 걸으며 체험해본 알헤시라스호는 크고 또 컸다. 배 측면에 새겨진 HMM 문구만 해도 40~50여 발자국을 걸어야 했다. 선미에서 선수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분 이상. 따뜻한 날씨에 살짝 땀이 나기도 했다. 

지난 23일 명명식을 끝낸 알헤시라스호는 중국 칭다오로 출발, 4572TEU를 싣고 28일 오후 9시 HPNT에 입항했다. 이후 1031TEU를 하역한 후 3615TEU를 선적해 29일 밤 00시 중국 닝보로 출항하는 예정이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선적 작업이 한창이었다. 높이 50m의 100톤급 안벽크레인(QC·Quay Crane) 4기가 알헤시라스호에 컨테이너를 끊임없이 실어 올리고 있었다. 이날 선적이 예정된 3615TEU는 크레인 기사 15명이 3교대로 24시간 쉴 틈 없이 움직여야 실을 수 있는 양이다.  

▲ 화물 컨테이너가 ‘알헤시라스호’ 선적을 위해 크레인으로 옮겨지는 모습. 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 기자

HMM에 따르면 알헤시라스호는 현재 전 세계에서 운항 중인 컨테이너선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20피트(6m) 짜리 컨테이너 2만3964개를 동시에 실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를 일렬로 세우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직선거리(144㎞)와 맞먹는다. 

알헤시라스호의 자랑거리는 크기 말고도 또 있다. 바로 친환경·고효율 선박이라는 점. 국제해사기구(IMO)의 에너지 효율 설계지수(EEDI) 기준 요구량 대비 50% 이상 개선했으며, 친환경 설비인 탈황장치(스크러버)를 장착해 세계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도 대응할 수 있게 됐다. LNG 연료탱커를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돼 향후 LNG 추진선박으로도 교체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HMM을 비롯한 국내 해운선사의 경쟁력을 크게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유럽항로 평균 선형인 1만5000TEU급 선박에 비해 약 15%의 운항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첨단·자동화 산실 HPNT…“100% 자동화가 목표”

이날 선적 현장에서는 크레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반면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95%에 달하는 자동화 덕분이다. HPNT에는 무인자동화 야드크레인 38기와 40피트 컨테이너 2개 또는 20피트 컨테이너 4개를 동시에 들어올릴 수 있는 탠덤(Tandem) 방식의 겐트리 크레인 12기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38개 야드 크레인은 무인자동화로 효율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트럭이 항만 입구를 통과하면 통제실에 해당 내용이 전송되고 이후 프로그램을 통해 트럭 작업 위치가 정해진다. 크레인은 스스로 작동해 트럭에서 컨테이너를 내린다. 

▲ HPNT 전경. 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 기자

이후 통제실 직원이 야드크레인이 들어 올릴 컨테이너 위치만 지정하면 된다. 인형뽑기의 크레인 조작이 연상되는 방식이다. 특이상황이 발생하면 화면에 빨간색 알림이 뜬다.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이 게이트를 들어왔다 나가기까지 대략 16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사람이 직접 크레인을 운전할 때보다 사고 발생률이 적고, 비용 절감도 가능해 세계 유수의 항만들도 자동화 항만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HPNT는 장기적으로 자동화율을 100% 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물동량 증대와 함께 수익성을 대폭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2018년 기준 HPNT의 물동량은 230만TEU를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증가한 250만TEU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해운동맹을 맺고 있는 선사들의 부산 기항을 유도해 부산항 환적 물량을 통한 수익을 높일 계획이다. HMM은 지난해 7월 1일 세계 3대 해운동맹 중 하나인 ‘디 얼라이언스’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 4월 1일부터 본격적인 협력을 해오고 있다. 

이진철 HPNT 영업담당임원 상무는 “자동화 수준이 가장 높은 네덜란드의 경우 통제실까지도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우리 역시 이를 위해 여러 가지 협의를 추진, 진행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이진철 HPNT 영업담당임원 상무가 통제실에서 크레인 자동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 기자

한편, HMM은 알헤시라스호를 시작으로 오는 9월 말까지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 모두를 아시아~북유럽 항로에 투입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현대중공업으로부터 1만6000TEU급 8척을 인도받는다. 2만4000TEU급 12척에 1만6000TEU급 8척까지 총 20척의 초대형선을 2021년 말까지 모두 인도받게 되면 HMM 선복량은 총 87만TEU로 세계 8위 선사로 도약하게 된다.

HMM관계자는 “국내 화주에 대한 안정적인 수출입 서비스 제공 기반 마련을 통해 국산화물 적취율 제고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초대형선 20척 발주에 따른 국내 조선소 일감 확보로 2만3000명의 고용효과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