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진욱 산업부 부국장]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옥살이를 한다. 4번의 탈옥을 시도한 괘씸죄까지 더해져 형량이 늘었다. 긴 시간의 대가를 치르고 사회로 복귀했지만 그에게는 ‘범죄자’ 꼬리표가 붙었다.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사회는 그를 믿어주지 않는다. 

그런 장발장의 하류인생을 바꾼 이는 미리엘 신부다. 은(銀)접시를 훔치다 경찰에 붙잡힌 장발장에게 미리엘은 “내가 준 은접시가 맞다”며 그의 거짓말을 두둔했고 오히려 값비싼 촛대를 얹어주며 그를 끌어안았다. 그때부터 장발장의 삶은 달라졌다.

허구의 내용이지만,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인 용서가 주는 교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이다.

최근 몇몇 기업인과의 식사자리에서 때 아닌 ‘장발장’ 얘기가 나왔다. 악덕이미지로 낙인찍힌 기업은 이후 아무리 ‘착한’ 모습을 보여도 소비자들이 혐오하는데, 장발장을 포용한 신부처럼 소비자들이 잘못을 저지른 기업에게도 기회를 줘야한다는 내용의 대화였다.

“전 직원이 사비를 모아 2000만원을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한 적이 있어요. 관련 기사가 나갔기에 댓글을 봤더니 ‘이미지 세탁하지 마라’ ‘그래도 너희 회사 제품 안 쓴다’라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정도경영으로 수년째 노력을 해도 이미지 회복이 쉽지 않습니다.”

기업 간 거래를 하는 B2B기업에 비해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B2C기업의 경우 소비자들이 새기는 ‘주홍글씨’는 더 뚜렷하다. 2013년 본사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밀어내기’ 횡포를 부려 ‘갑질기업’의 대명사가 된 남양유업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갑질’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대리점주와의 상생경영과 사회공헌 활동 등을 통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도 여전히 인터넷 악성 댓글과 불매운동에 시달린다는 게 회사관계자들의 볼멘소리다.

온라인 쇼핑몰 ‘임블리’로 성공 반열에 오른 부건에프앤씨도 지난해 ‘곰팡이 호박즙’ ‘화장품 이물질 검출’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소비자들에게 ‘나쁜 기업’으로 찍혔다. 이 영향으로 부건은 1년도 안돼 매출규모가 이전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최근에는 이물질 검출과 관련, 소비자들이 ‘블리블리’ 화장품을 사용한 후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집단 민사소송을 걸었고 회사가 승소했음에도 여전히 소비자들의 불신에 시달리고 있다.

소비자들이 새기는 주홍글씨의 위험성은 해당기업의 생존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악플로 생을 스스로 마감한 연예인들의 사례처럼 기업도 소비자들의 편향적인 ‘악플’과 ‘악성루머’로 폐업의 위기에 언제든지 내몰릴 수 있다.

특정 기업의 브랜드나 제품들을 근거 없이 비방하거나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는 악플에 상당수 소비자들은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인터넷, 모바일기기에 익숙한 젊은 소비자들이 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기업에 대한 혐오스런 정보나 불매운동 캠페인을 공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잘못한 기업을 소비행태로 ‘단죄하는’ 것은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 중 하나다. 하지만 잘못한 기업에도 기회는 줘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정도경영을 꿋꿋이 지켜가는 기업에 이제 우리 소비자들도 나쁜 기업의 멍에를 벗겨주는 너그러움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기업이 잘돼야 국가경제가 살고 기업 활동이 왕성해야 일자리도 더 늘어난다. 소비자와 악덕기업 간 끝없는 ‘극과 극’ 대치보다는 악덕을 행하던 놀부가 착한 흥부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시장의 모습이 필요하다. ‘장발장 기업’을 품어주는 ‘미리엘 소비자들’이 많아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