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미디어 시장에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각 사업자들이 적극적인 인수합병에 이은 외연 확장에 시동을 걸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가운데 유료방송과 OTT 시장 모두 시장 재편의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 결국 '쩐의 전쟁'이 본격화된 가운데 각 진영의 치열한 눈치싸움도 전개되고 있다.

▲ 출처=갈무리

IPTV 대회전
유료방송 시장은 2019년 상반기 기준 IPTV 1위 사업자 KT가 위성방송 KT스카이라이프와 함께 점유율 31.31%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CJ헬로를 품은 LG유플러스가 24.72%로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티브로드와 만난 SK브로드밴드가 24.03%로 LG유플러스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중이다.

LG유플러스는 SK브로드밴드가 한 때 욕심을 냈던 CJ헬로를 전격 인수하며 광폭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다만 CJ헬로를 인수한 후 당분간은 내실 다지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송구영 LG헬로비전(구 CJ헬로) 대표는 27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LG시너지의 성과가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보다 강한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제2의 도약을 준비하자"라고 당부했다. 지난 3월 LG헬로비전의 방송과 인터넷 가입자가 1년 만에 순증세로 돌아서는 등 고무적인 성과를 거둔 상태에서 LG유플러스와의 화학적 결합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LG유플러스도 당분간은 내부의 교통정리에 집중한다는 뜻을 여러차례 피력한 바 있다. 실제로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지난 2월 마곡사옥 지하 프론티어홀에서 LG헬로비전 임원 포함 전사 담당, 임원 약 1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해 첫 임원워크숍을 열어 "이번 워크숍은 새롭게 LG 가족이 된 LG헬로비전 임원들도 함께해 더욱 뜻 깊다”라며 “올해는 통신과 미디어 플랫폼 혁신을 통한 선도가 중요한데, 일등DNA를 가진 LG헬로비전 구성원들이 이러한 경쟁에서 주인공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출처=LG유플러스

LG헬로비전 기술담당 김홍익 상무도 “LG유플러스 임원들과 처음 함께한 자리였지만 LG의 한 가족이라는 동질감을 느꼈고 특히 그룹 전체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면서 “양사가 가지고 있는 우수한 점들을 수시로 벤치마킹해 경쟁력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LG유플러스가 CJ헬로를 인수해 LG헬로비전으로 변경시킨 후 내실 다지기에 나선다면, SK브로드밴드는 공격적인 외연확장 카드를 빼들 가능성이 높다.

SK브로드밴드는 티브로드 인수를 선언한 후 30일 합병법인을 출범시킨다. SK브로드밴드는 당초 1월 1일을 합병 디데이로 삼았으나 3월 1일에서 4월 1일, 이후 4월 30일로 연기한 끝에 융합작업을 마무리 할 전망이다. SK브로드밴드 가입자 454만명, 티브로드 가입자 314만명 등 총 8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대형 플랫폼이 등장하는 셈이다. 합병법인의 지분은 SK텔레콤이 74.3%로 대주주며 태광산업 등 티브로드 계열이 24.8%를 가진다.

SK브로드밴드 측은 “ICT 산업에서 글로벌 사업자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유료방송 플랫폼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와 다양한 미디어 플레이어들과의 협력 확대로 경쟁력을 극대화하고자 합병을 추진한 것”이라며 “이번 합병이 유료방송을 넘어 국내 미디어 산업 전반에 혁신을 촉진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합병법인 출범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SK브로드밴드는 합병법인 출범을 계기로 ▲미디어 플랫폼 고도화 ▲가입자 기반 확대 가속화 ▲비즈니스모델 확장을 통해 IPTV와 케이블TV 서비스 경쟁력을 동반 강화할 계획이다. 나아가 기존 티브로드 고객이 이용 중인 케이블TV 서비스 품질을 대폭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SK브로드밴드가 티브로드 인수 마무리에 들어간 가운데, 업계에서는 또 한 번의 인수합병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바로 매물로 나온 현대HCN의 새로운 주인이 될 가능성이다.

현대HCN은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이 4%를 갓 넘기는 수준이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전개, 가입자당평균단가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조만간 현대HCN에 대한 공개 경쟁입찰을 선언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SK브로드밴드가 현대HCN을 인수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그룹이 현대HCN을 넘기겠다는 의욕이 충만한 가운데 다양한 통신사들이 자문사를 구성하는 등 물밑행보를 보이고 있다"면서 "특히 티브로드와의 합병법인으로도 LG유플러스에 근소한 차이로 점유율 3위에 랭크되는 SK브로드밴드가 또 한 번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SK브로드밴드가 티브로드의 통합법인 점유율과 LG유플러스와 LG헬로비전의 점유율 차이는 약 0.7%에 불과하다. 현대HCN을 인수할 경우 단숨에 LG유플러스 연합군을 누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관계자는 "SK브로드밴드가 순위 경쟁에 나서기 보다는 당분간 내부의 역량을 모으는 일에 집중할 것"이라며 "LG유플러스도 당분간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HCN 공개매각 작업은 의외로 난기류에 봉착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출처=갈무리

KT, 한 방 보여줄까
한편 유료방송 업계 1위 KT는 일단 정중동이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이 일몰됐으나 아직 국회에서 마땅한 논의가 이어지지 않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말이 나온다. SK브로드밴드나 LG유플러스처럼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하기에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다만 구현모 대표 체제의 KT가 차근차근 문제의 해법을 찾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구현모 대표는 33년간 KT에 근무한 정통 KT맨이면서 올해 새로운 KT를 구축하기 위한 강력한 쇄신의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기존 ‘회장’ 중심의 1인 체제를 뛰어넘어 안정적인 경영 활동이 가능한 최고경영진간 의사결정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회장 직급을 없애 ‘대표이사 회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바꾸는 한편 CEO 임기 중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한 중대한 과실 또는 부정행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사회의 사임 요청을 받아들인다는 파격적인 조건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구 대표가 전략기획통으로 활동한 점도 고무적이다. 실제로 구 대표는 “KT는 그간 쌓아온 디지털 역량으로 다른 산업의 혁신을 리딩하고, 개인 삶의 변화를 선도하는 한편 핵심사업을 고객 중심으로 전환해 한 단계 더 도약시키고 금융, 유통, 부동산, 보안, 광고 등 성장성 높은 KT그룹 사업에 역량을 모아 그룹의 지속 성장과 기업가치 향상을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KT 내부 조직을 잘 아는 정통 KT맨의 입장에서 전략기획통으로 활동한 그의 역량에 기대가 높아지는 이유다.

▲ 구현모 KT CEO. 출처=KT

그 연장선에서 KT의 미래 먹거리 중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5G, 융합, 미디어 사업에 다양한 가능성 타진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5G는 예정된 로드맵을 전개하는 한편, 융합 부문에서는 케이뱅크 정상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시장에서 카카오뱅크의 파상공세에 밀리는 한편 비바리퍼블리카 토스의 기습도 예고된 가운데 케이뱅크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4월부터 은행의 주 수입원인 대출 업무를 중단한 뒤 사실상 케이뱅크의 존재감은 흐릿해졌고,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발목이 잡혀 KT의 케이뱅크 대주주 등극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여기에 3월 5일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안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며 치명타를 맞았다.

다만 비씨카드가 케이뱅크의 대주주로 올라서는 ‘우회지배 전략’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비씨카드가 오는 6월 18일 케이뱅크가 추진하는 5949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케이뱅크 지분을 34%까지 늘린다는 전략이다. 이 역시 어려운 작업이지만, 케이뱅크를 구하려는 전략기획 본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것 자체는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이러한 전략기획 본능이 일몰된 유료방송 합산규제의 망령에 발목이 잡힌 IPTV에도 가동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5G의 등장으로 킬러 콘텐츠인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에서 KT가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KT가 현대HCN을 노릴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성우 ICT미디어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주장하기에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너무 달라졌다"면서 "경쟁자들이 빠르게 몸집을 불리는 가운데 KT가 공정위를 설득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만 마련한다면 KT의 전격적인 행보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직 KT는 이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KT의 현대HCN 인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