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잉글랜드 대학교 간호학과 학생들이 VR 시뮬레이션으로 실제 병원 상황 훈련을 한다.     출처= University of New England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전세계 병원들이 심각한 의료진 부족에 직면함에 따라, 전염병 치료에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코로나 환자를 돕기 위한 의료 지원군으로 부름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외과나 신경과 등 코로나와 전혀 다른 분야에 있는 수천 명의 의사와 간호사를 훈련시키고, 은퇴 의사들을 코로나 현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일부 병원들이 가상현실(VR) 시뮬레이션이라는 이 분야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던 생소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시더사이나이 병원(Cedars-Sinai Medical Center)에서는 300여 명의 의사들이 VR을 통해 코로나 환자의 증상을 평가하거나 보호장구를 착용한 채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기술을 익혔다.

시더사이나이 병원의 시뮬레이션 센터장 러셀 메트칼프-스미스는 "이 시뮬레이션에서는 마치 환자와 함께 같은 방 안에 있는 것 같다”며 “훈련을 마친 의사들을 이들을 필요로 하는 전국의 의료진 부족 현장에 파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 의료진 부족을 메우기 위해 일반 의사와 간호사들이 보호장비를 올바르게 착용하고 벗는 방법, 대개 중환자실에서만 사용하는 인공호흡기 사용 방법, 기초 심폐소생술, 생명유지장치 등을 코로나 환자들을 돌 볼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지만, 시간과 자원이 제한되는 문제에 직면했는데, VR 같은 기술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문을 연 것이다.

의료업계가 오래전부터 VR의 얼리 어답터였던 점을 고려하면 병원들이 코로나에 대처하기 위해 VR에 눈을 돌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VR 훈련을 통해 의사의 사고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필요한 의료 인력을 한 곳에 대규모로 모을 수 없는 상황에서 VR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요. 우리는 이 기술에 대해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병원들은 의료진 훈련에 많은 연습이 필요한 절차에 대한 상세한 피드백과 지표를 제공하는 버티(Virti)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시더사이나이는 지난 1월부터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 의료진들을 훈련시킨 덕분에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3월 중순에 많은 보건 의료진들을 전국에 파견할 수 있었다.

버티의 설립자 알렉스 영 박사는 "우리는 이 시뮬레이션에서 현재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구현했다"고 말했다.

"이 시뮬레이션에서 환자를 격리시키는데, 환자는 VR을 통해 간호사와 의사가 드나드는 것을 볼 수 있지요. 환자들이 이 병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훈련입니다. 또 마스크를 착용하면 의사 소통의 기본을 잊기 쉬우므로 이 훈련을 통해 환자를 대하는 태도도 연습할 수 있습니다.”

▲ 스타트업 버티(Virti)의 시뮬레이션에서는 코로나 격리 환자가 VR을 통해 의사와 간호사가 자신의 격리 시설에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처= Virti

지난 3주 동안 미국, 영국, 이스라엘의 병원과 대학에서 7만 명의 신규 사용자가 이 회사의 훈련에 등록했다.

보스턴에 본사를 둔 옥스포드 메디컬 시뮬레이션(Oxford Medical Simulation)도 응급상황에 처한 의료 실무진들의 의사 결정 과정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시뮬레이션에서는 아바타 간호사가 가상 환자의 간략한 기록 파일을 건네 주면 의사는 환자의 반응을 보고 실시간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위나 폐를 검사할 수도 있고 환자가 피를 토하거나 발작을 일으키거나 거칠게 숨을 쉴 경우에는 빠른 판단을 해야 한다. 옥스퍼드의 시나리오는 꼭 코로나 19 상황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응급상황에서 의료전문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훈련한다.

2018년 옥스포드 메디컬 시뮬레이션을 창업한 잭 포틀 박사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가상현실에서 마음껏 실수를 하고 이를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의사들은 대학 병원에서 직접 현장으로 실전 투입되지만, 은퇴한 의사나 간호사들이 코로나 환자들을 안전하게 치료하는데 필요한 훈련을 받지는 못합니다. 이 시뮬레이션은 그들이 코로나에 대처하는 속도를 높이고 자신감을 갖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사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부터, 의과대학과 간호대학들은 차세대 의료 전문가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이러한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뉴잉글랜드 대학교 인터프로페셔널 시뮬레이션 혁신센터는 8개의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 헤드셋을 갖춘 실험실을 설치하고 학생들에게 가상 수업을 통해 특정 상황에 대한 훈련을 제공한다. 이 훈련을 마친 학생들은 휴대전화나 태블릿을 통해 옥스포드의 모든 시뮬레이션 과정을 원격으로 이수해야 한다.

혁신센터의 도우니-마리 던바 소장은 "VR 헤드셋을 사용하면 더 몰입적이지만, 모바일 기기로 프로그램에 접속해 원격으로 훈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VR 교육에 대한 초기 임상 연구는 이 도구가 부상 위험을 줄이고, 학습 과정을 단축하고, 전반적인 결과를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의학교육 전문학술지에 발표된 2018년 연구에 따르면, VR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전통적 접근법으로 교육받은 사람보다 실전에서 실수가 적고 더 높은 정확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VR 기술은 전통적 교육 접근법의 보완 도구로 사용되어야 하며 이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옥스포드의 플랫폼을 활용해 학생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뉴욕대학교 랭곤 메디컬센터(Langone Medical Center) 응급의학과 캐롤 더사키시언 임상교수는 "이 교육에 대한 반응은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유사한 사례들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모든 사례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시뮬레이션은 최전선에 투입되기 전에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자신감을 쌓는 데 도움이 됩니다. 최고의 장점은 누구도 위험에 처하지 않고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