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있었던 선거 다음날 팔십 중반이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선거 결과가 많이 서운하시죠?’라고 말입니다.

이에 주변에서는 다들 다르게 얘기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오고,

동서가 이렇게 갈라지는 걸 보니 걱정되어 선거 날 잠을 못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제 딴으로 위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들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 말씀만 들으신 게고,

언론도 그쪽만 보셔서 그런 것일 뿐, 세상은 정말 많이 변한 것 아닐까요?

그러나 걱정 안하셔도 될 듯합니다.

그 이유는 이제까지도 그렇게 서로 다른 환경 속에 부딪치면서 넘어왔고, 이번에도 다수가

특히 믿을 만한 젊은이들이 많이 선택했으니 그 선택에 책임도 다 할 것이라는 요지였습니다.

상대적일까요?

내가 아버지 위로(?)하느라 내 마음속에 가졌던 걱정이 많이 약화되는 걸 느꼈습니다.

내 경우는 정치색에 관계없이 너무 한쪽으로 쏠린 결과가 당황스러웠거든요.

선거결과가 꼭 우리 같은 부모 세대들이 무언가 얘기하면 자식 세대들이

‘그렇게 말씀하는 건 자유지만요..’라고 말을 확 돌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쉽게 말해 세대교체를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찜찜, 당혹, 의문 등의 생각으로 며칠 혼란스러웠는데, 갑자기 구원이 다가왔습니다.

우연히 슈베르트의 가곡과 함께 그의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유명 음악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오랜 기간 무명으로 그리 밝은 희망을 못 찾고, 결국 31세에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가 괴테, 하이네, 뮐러 같은 독일 작가의 작품에 곡을 붙인

아름다운 가곡들이 그날따라 더 처연하게 들렸습니다.

생존 당시 그의 진가를 알아주는 데가 없어 아름다운 가곡들로 작은 음악회를 열어

발표하는 걸로 족했다고 합니다.

당시 화가 모리츠 폰 슈빈트가 남긴 ‘작은 음악회’라는 작품을 통해 슈베르트를 보게 됩니다.

화가는 그가 평생 그렸던 그림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슈베르트에게 그려준 오선지라고 했답니다.

그들의 상세 관계는 자세히 모르지만 서로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까요?

화가가 그려준 오선지에 곡을 붙인 천재 슈베르트의 작품이 지금 남아,

이렇게 오고 가는 세대 통해 불리고 있으니 빈 오선지는 가장 가치 있는 작품이 맞겠지요.

무엇보다 오선지를 슈베르트에게 그려주고, 그 다음은 잊거나 기다린

삶의 자세가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러려니 자식 세대에게도 백지 같은 틀, 지금 여기까지만 넘겨주면 그뿐,

그 이후나 미래를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서운해 할 일은 더더욱 아니겠지요.

이 밤, 백지 선물을 깨우쳐 준 화가의 빈 오선지 그림이 사무치게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