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2년전 카카오재팬 픽코마의 성과를 취재하기 위해 일본 출장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가열차고 열정적인 취재 후(믿어주십시요) 잠시 짬을 내어 유명만화 <어시장 3대>의 실제무대를 걷다 일본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던 것에 경악하고 비싼 물가에 두 번 놀라고 편의점에 야한 잡지(?)가 있는 것에 세 번 놀라고 역시 유명만화 <시마 시리즈>의 치열한 경영활동이 벌어지는 비즈니스의 무대인 긴자를 조심스레 걷다 왠지 납치될 것 같아 네 번 놀라고 유명 초밥집이라 소개받아 들어갔는데 우리동네 마트 냉동초밥도 이것보다는 맛있겠다며 투덜대다 을지로 어딘가를 닮은 허름한 맥주집에서 내 생애 최고의 맥주를 만나 다섯 번 놀라다 보니 어느덧 김재용 카카오재팬 대표와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더군요.

지금도 잘 나가는 픽코마의 다양한 강점이 기억나는 가운데 유독 뇌리에 박힌 장면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사옥에 도착했을 당시, 김 대표가 희한하게 생긴 비늘돋은 방석을 선물하며 "너무 기분좋지 않아요"라고 웃는 장면입니다. 하필이면 천장 위 조명 바로 아래에 앉은 관계로 얼굴에 묘한 그림자가 진 가운데 빙그레 웃는 김 대표의 손길을 보고, 왠지 기분좋지 않다고 하면 큰일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방석은 지금도 둘째가 잘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김재용 대표가 밝힌 김범수 의장과의 일화입니다. 김재용 대표에 따르면, 당시 김 대표는 일본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널 때 김범수 의장과 동행을 한 적이 있다 했습니다. 그 때 김재용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던 김범수 의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야, 너 막내가 출세했네"

왜 이 일화가 2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날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김범수 의장이라는 브랜드라면 왠지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딱딱한 비즈니스가 아닌 따뜻한 형님 리더십. 그러면서도 현해탄을 넘어 세계를 누비며 꿈을 꾸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몽상가. 덕분에 왠지 어려운 길만 가는 것 같은 우직함.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오늘은 김범수 의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김재용 대표. 사진=최진홍 기자

그는 누구인가
카카오톡의 아버지인 김범수 의장은 대한민국 ICT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다소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내면서도 혈서까지 쓰며 86학번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한 '개천의 용'입니다. 

대학 재학 당시 김 의장은 운명의 동반자이자 라이벌을 만나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이해진 네이버 현 GIO입니다. 두 사람은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SDS에서 다시 조우하며 묘한 인연을 이어갑니다.

만약 청년 김범수가 삼성SDS에 쭉 근무했다면 대한민국 ICT 역사는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겁니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어요. 김 의장은 1998년 삼성SDS를 떠나 한양대학교 앞에서 국내 최대의 PC방을 창업하며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 의장의 PC방을 두고 엄청난 첨단 기술력을 내세운 연구소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 PC방이 맞습니다.

PC방 사장님 김 의장은 1998년 11월 인생의 승부수를 던집니다. 서울 테헤란로 작은 뒷길에 좁은 임대 사무실을 열어 인터넷 도박 게임 사이트인 ‘한게임’을 창업했기 때문입니다. 도박 게임 사이트. 실제 김 의장이 합법적인 틀 안에서 도박의 스릴을 즐기는 것은 일반에게도 잘 알려져 있고, 또 이와 관련해 어느정도 논란도 있었지요. '승부사'라는 별명처럼, 김 의장의 첫 ICT 사업은 도박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인 1999년 이해진 GIO도 삼성SDS를 퇴사합니다. 그는 이어 네이버의 전신인 네이버컴을 설립하고 다음, 야후, 라이코스 등이 지배하는 국내 포털시장에서 고군분투하지만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해요. 혹자는 당시 이해진 GIO가 네이버컴을 매각하려고 은밀히 인수 대상자를 찾아 나섰다는 말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어요. 청년 이해진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100억원의 투자를 받은 후 당시 한게임을 창립했으나 뚜렷한 수익사업 모델을 찾지 못한 김 의장과 의기투합합니다. 둘의 만남은 네이버컴-한게임 합병을 통해 (주)NHN 설립을 이끌어 냅니다.

그러나 한게임의 사행성 문제가 불거지며 사회적 비판이 쏟아지는 한편, 네이버의 한게임 의존도가 낮아지고 지식in 서비스의 등장으로 네이버의 독자적 생존이 가능해지자 두 사람은 결별합니다. 이후 이해진 GIO는 현재의 글로벌 네이버를 일구고, 김범수 의장은 해외유학 후 2010년 카카오톡으로 부활합니다. 그리고 2014년 네이버의 라이벌인 다음과 전격적으로 통합해 다음카카오를 만들고, 이어 사명은 카카오가 됩니다.

▲ 출처=카카오

10년, 그리고 2020년
그렇게 10년이 지났습니다. 이해진 GIO는 글로벌 네이버의 초석을 마련하고 있고, 김범수 의장은 카카오톡 10주년을 맞이했네요. 지난 3월 김 의장은 카카오톡 10주년을 맞아 크루들에 공개편지를 보내 "영어 호칭, 모든 정보 공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될 수 있도록 많은 공을 들였던 기억이 납니다"라며 "회사가 성장하고 많은 새로운 크루들이 합류하면서 '카카오스러움'은 희미해져 가는 듯 보였지만, 10년의 여정을 돌아보면 걸어온 그 길에 녹아있는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낍니다"고 말했습니다.

카카오스러움은 10년간 많은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김범수 의장은 "우리는 커머스, 콘텐츠, 캐릭터, 모빌리티, 금융, 블록체인, AI, B2B까지 무수히 많은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왔습니다"면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불편하고 복잡한 게 당연했던 일상에서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찾아나갔고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면서 "멋진 생각들은 리더만이 아닌 모든 크루들에게서 나왔고 스스로 주도적으로 일해왔습니다. 때로는 옆의 동료와 함께 토론하며 충돌하며 더 나은 답을 찾아갔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장이 말하는 카카오스러움은 크루들이 직접 문제의 해결을 찾아 나서는 자기주도성을 중심으로 수평적 소통을 바탕에 삼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전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사실 이 한 줄의 표현에 카카오가 지금까지 걸어온 역사가 응축되어 있어요. 카카오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크루들을 보물로 여겼고, 크루들이 직접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를 창조하도록 지원했습니다.

김 의장은 마지막으로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기술과 우리만의 문제 해결 방식으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회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데 크루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면서 "세상 참 좋아졌네 그 한마디에 보람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선한 의지를 진정성 있게 발현해 왔습니다. 이런 우리만의 문화를 통해 다른 직책, 다른 팀, 다른 회사에 속해있는 크루들일지라도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카카오 성공의 공을 크루들에게 돌리는 한편,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입니다. 또 조직 문화적 측면에서 카카오가 국내 기업 환경에서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도 엿보입니다.

▲ 출처=카카오

뱀파이..아니, 라이언과의 인터뷰
김범수 의장은 지난 23일 카카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채널 '카카오 나우'에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인 라이언과 만났습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뱀파이어급 동안외모를 자랑하는 임원, 라이언과의 인터뷰는 김 대표의 삶과 의지를 잘 보여줬습니다. 국내 대기업 ICT 기업 수장의 은밀한(?) 사생활도 알았죠. 실제로 우리는 이 인터뷰를 통해 김 의장이 저녁 9시에서 12시에 잠들어 새벽 4시에서 6시에 일어나는 것과 강아지와 아침산책을 즐기고, 관련된 루틴을 10년간 빼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보 습득을 위해서는 경제 트렌드, 시사, 뉴스 요약을 즐기고 재미를 위해서는 취미인 골프 영상을 본다는 것도 알았고 카카오톡 이모티콘 중 가장 즐겨 쓰는 이모티콘으로 '라이언'을 꼽으며 현장의 뱀파이어를 즐겁게 해주는 의외의 정무감각이 있다는 점도 알았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김 의장의 카카오톡 프로필 상태메시지입니다.

김 의장 프로필 상태메시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라는 문장입니다. 무엇을 의미할까. 김 의장은 "20대 때 가장 영감을 줬던 문장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였다"면서 "다른 전환점이 됐던 시기는 네이버를 떠날 때 다음에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에서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는 제 멋대로 의미심장한 포인트와 더불어, 이 프로필 상태메시지는 곧 카카오의 지향점을 잘 보여줍니다. 바로 더 나은 세상입니다. 실제로 카카오의 성장 역사는 오래된 무언가를 기술로 바꾸며 구사업과 싸우거나 화합해 이뤄낸 성과로 가득합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할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은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니죠. 지금까지 카카오는 한 발 물러서기는 했으나 포기하지 않았고, 또 포기하지 않아 세상을 바꿨습니다. 이러한 큰 의지가 바로 카카오의 현재이자 미래라는 것에 이견은 없습니다. 멋진 화두입니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조직 문화입니다. 김 의장은 "카카오톡 같은 경우에도 초기엔 제가 아이디어를 열심히 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입을 많이 다물"라며 "그냥 다 맡기고 '잘 해줘' 정도로만 이야기한다"고 말합니다. 시스템이 일하는 것이 아닌 문화가 일하는 기업. 카카오의 가치 중 하나입니다. '라떼가 말이야'를 사랑하는 꼰대들이 가슴 깊숙히 받아들여야 할 대목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를 꼽자면, 역시 김 의장의 숨길 수 없는 모험의지. 이는 카카오가 세상을 바꾼 원동력이자 특이점이 가득한 조직 문화 실험에 나설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 출처=카카오

언젠가 드라마화를 기다린다
김범수 의장은 PC방 사장에서 한게임, 카카오로 이어지는 한국 ICT 기업의 큰 줄기에서 개인의 판단이 얼마나 많은 나비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인물입니다. 나아가 그 특출난 개인이 시대의 흐름과 만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를 몸소 보여줬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도전의 가치가, 자극의 가치가 요동칩니다.

물론 카카오가 모든 길을 100% 제대로 걷고 있다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김범수 의장을 주축으로 카카오 전 크루의 담대한 실험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에 대한 기대가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정도 찬사면, 언젠가 김범수 의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두 명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IT여담은 취재 도중 알게되는 소소한 내용을 편안하게 공유하는 곳입니다. 당장의 기사성보다 주변부, 나름의 의미가 있는 지점에서 독자와 함께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