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애플이 이르면 2021년부터 자사 맥 컴퓨터에 들어가는 인텔 반도체칩을 걷어낼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칩 수직계열화를 추구하는 애플의 큰 그림이 차근차근 완성되는 가운데 올해 삼성전자를 누르고 글로벌 반도체 시장 1위에 오른 인텔의 행보에 약간의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 맥. 출처=갈무리

칼라마타 프로젝트, 결실?
애플은 지난 2006년부터 맥 컴퓨터에 인텔의 칩을 탑재했으며 2007년부터는 모든 물량에 인텔칩을 넣었다. 다만 애플은 인텔과의 협력을 통해 맥 컴퓨터 존재감을 키웠으나, 2012년부터는 모든 맥에 자체 생산된 칩을 탑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칼라마타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애플의 핵심 기술력을 자사의 경쟁력으로 채우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런 가운데 애플의 칼라마타 프로젝트가 조만간 성과를 거둘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23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이 ARM 기반의 맥 컴퓨터용 전용 칩 3종을 개발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모든 맥 컴퓨터에 애플의 자체 칩이 들어갈 것이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애플의 자체 칩은 TSMC의 5나노 공정을 통해 생산될 전망이며 8개의 고성능 코어와 에너지 효율에 방점을 찍은 4개의 코어가 들어간 총 12코어 개발이 유력하다.

애플이 자체 칩을 설계해 맥 등에 탑재하면 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지는 한편 양산 일정을 짜기도 용이하다. 마지팬을 통해 스마트 기기와 기존 전자기기의 경계를 무너트리며 두 곳 모두 경쟁력을 강화하는 로드맵이 가동된 셈이다.

인텔에서 조달하던 칩을 자체 칩으로 돌리면 관련 비용도 약 50%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인텔의 수급 물량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되며 안정적인 맥 컴퓨터의 시장 공급도 노릴 수 있을 전망이다. 최근 맥 컴퓨터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신모델을 적시에 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애플이 맥 컴퓨터에 자사 칩을 탑재할 경우 상당한 수준의 리스크를 덜어낼 수 있을 전망이다.

모바일 전용 생태계 구축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맥에 애플의 자체 칩이 들어갈 경우 아이폰 및 아이패드와의 호환성도 강해질 것"이라면서 "애플 입장에서는 iOS 생태계 강화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반면 인텔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인텔 전체 매출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지만, 세계 최대 스마트폰 및 모바일 PC 생태계 기업인 애플과의 협력이 느슨해지는 것은 결국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 대립각을 세우던 ARM의 품에 애플이 안기는 것은 일종의 굴욕으로 비쳐진다.

▲ 출처=애플

멀어지는 애플과 인텔
애플이 맥 컴퓨터에 자사 칩을 탑재하려는 전략을 꺼내며 애플과 인텔의 거리도 멀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애플의 수직계열화 전략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평가다.

애플과 인텔의 밀월'사'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애플이 2007년 맥 컴퓨터에 인텔의 칩을 탑재한 후, 인텔은 애플의 다른 기기에도 자사의 칩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 연장선에서 아이폰에도 인텔의 모뎀칩이 탑재되는 일도 있었다.

아이폰7이 출시되기 전 인텔이 무려 1000명에 달하는 칩 개발팀을 구성해 애플에 대한 칩 공급에 대비하는 일도 벌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사의 7360 LTE 모뎀칩을 애플의 아이폰7에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애플의 엔지니어들이 독일 뮌헨 인텔 연구소에서 모뎀 칩 적용을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인텔은 2010년 이미 인피티온을 인수한 상태였다. 이후 인텔은 애플 아이폰 오리지널부터 아이폰4까지 모뎀칩을 제공했던 인피니온을 통해 애플 아이폰7에 '선'을 댔고 이를 기점으로 애플은 퀄컴과의 분쟁에 돌입하기에 이르렀다. 정리하자면 애플은 아이폰에 있어 초기 인피니온과 협력한 후 아이폰5, 아이폰6는 퀄컴과 손을 잡았으나 인텔이 인피니온을 인수한 저력을 바탕으로 아이폰7을 기점으로 애플과의 접점을 강화시킨 셈이다. 이 때 애플과 퀄컴의 라이센스 분쟁(2017년)이 터지며 애플과 인텔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문제는 5G 스마트폰 시대가 시작되며 벌어졌다. 애플 입장에서는 5G 아이폰을 빠르게 출시해야 하지만, 문제는 인텔의 5G칩 기술력이 애플이 원하는 만큼 올라오지 못했다. 애플은 가뜩이나 퀄컴과의 분쟁으로 5G 모뎀칩을 구하지 못하는 가운데 인텔의 5G 모뎀칩 XMW 8160이 빨라야 2020년 물량이 풀린다는 이야기만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애플의 굴욕은 더욱 커졌다. 삼성전자에 5G 모뎀칩 조달을 조심스레 타진했으나 자체 물량 소화도 벅찬 삼성전자에게 퇴짜를 맞았고, 이런 가운데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화웨이로부터 오히려 5G 모뎀칩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실제로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2019년 4월 15일(현지시간) 미국 CNBC 인터뷰에서 애플에 자사의 5G 모뎀칩을 판매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우리는 애플에 열려있다"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당시 화웨이는 기린980이라는 모바일 AP와 더불어 5G 모뎀칩 바롱5G01, 바롱 5000을 보유한 상태였다.

결국 애플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2019년 4월 퀄컴과 특허 분쟁과 관련해 모든 소송을 중단하고 전격적인 합의를 이뤘다. 나아가 퀄컴과 5G 모뎀칩 계약을 맺어 올해 말 간신히 5G 아이폰을 출시하는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경쟁자인 삼성전자가 2019년부터 갤럭시S10에 5G 모델을 출시한 것과 비교하면 무려 1년 6개월이나 느리다.

한편 애플은 퀄컴과 손을 잡으며 적기에 5G 모뎀칩을 제공하지 못한 인텔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인텔은 애플이 퀄컴과 손을 잡자 5G 모뎀칩 개발을 포기했고, 애플은 해당 인텔의 사업부를 전격 인수했다.

▲ 아이폰7. 출처=갈무리

애플의 수직계열화
애플이 2019년 퀄컴과의 분쟁을 끝내며 인텔과의 5G 동맹을 끝내는 한편 2021년부터 자사 맥 컴퓨터에 인텔칩을 걷어내는 장면은, 결국 두 기업의 밀월'사'도 끝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밀월의 종말로는 시대의 트렌드, 나아가 기술의 적시성 등 다양한 요인이 거론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애플의 수직계열화 전략으로 보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2017년 4월 애플이 결별을 선언한 영국의 이매지네이션이 단적인 사례다. 애플이 자체 GPU 제작에 나서며 이매지네이션과의 관게를 단절하자, 결국 이미지네이션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애플은 핵심 자산은 스스로가 설계하고 나머지 제작은 파트너들과 협력하는 가운데 칩 경쟁력에 있어서는 일종의 수직계열화 전략을 강하게 구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모바일에서 초연결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에서 iOS의 연결성을 강조하고, 핵심 기술력 확보를 통해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