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류 산업은 방글라데시 수출의 약 80%를 차지하며 국가 GDP의 16%를 기여하는 주력 산업이다.     출처= Global Issu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Dhaka)에 있는 앨리프 캐주얼 웨어(Alif Casual Wear)의 공장에 다니는 파티마 애크더는 지난 3월 말 평소와 같이 출근했지만, 그 날이 마지막 날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이 회사에서 5년 동안 일해 온 애크더는 그날 아침 공장장에게 “공장이 문을 닫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더 이상 나오자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방글라데시 의류 제조 및 수출자 협회(BGMEA)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으로 방글라데시에서 의류 업계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41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애크터처럼 그들 대부분은 여성이고, 그들이 매달 버는 110달러 정도의 돈은 그들 가족의 유일한 수입 원천이다.

남편과 아이를 부양하는 가장인 애크터는 "우리 가족 중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인데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세계적인 봉쇄와 일자리 감소로, 의류와 같이 음식이 아닌 물품에 대한 수요가 거의 증발했다. BGMEA에 따르면, 방글라데시가 제공하는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국제 유명 의류 브랜드와 소매업체들은 코로나 유행 이후 31억 7000만 달러(4조원)어치의 주문을 취소하거나 보류했다고 CNN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루바나 후크 BGMEA 회장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최악의 상황"이라며 "국제적인 유명 소매업체들은 계약 조건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공장들에게 어떤 법적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 고 말했다.

"우리는 어떠한 보상금이나 자선도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 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정의를 원할 뿐입니다."

수 백만 개의 일자리 위험에 처해

의류 산업은 남아시아 국가 경제를 이끄는 중추 산업이다. 전세계 경제지표를 소개하는 트레이딩이코노믹스(Trade Economics)에 따르면, 의류 산업은 방글라데시 수출의 약 80%를 차지하며 국가 GDP의 16%를 기여하는 주력 산업이다. 지난해 방글라데시는 300억달러 이상의 의류를 수출해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의류 수출국이 되었다.

국제 유명 의류 브랜드의 주문 취소로 위험에 빠진 사람들은 의류업계 노동자만이 아니다. 방글라데시 상무부에 따르면, 식당, 운수업, 그리고 항만 노동자 등 약 1500만 개의 일자리가 직간접적으로 의류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티푸 문시 방글라데시 상무장관은 "지금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난 달부터 봉쇄해온 다카는 방글라데시의 수도이자 대부분의 의류 공장이 있는 곳이다.

다카의 의류회사 새턴 섬유(Saturn Textiles Ltd.)의 공장에서 지난 3월 말에 해고되었지만 정부의 봉쇄로 도시에 갇혀 있는 레자울 이슬람은 "고향에 내게 의지하는 가족들이 있다"면서 "내가 여기서 버는 것이 무엇이든지 집으로 보내는데 이제 우리 가족은 먹고 살 길이 없다."고 말했다.

윤리의 문제

방글라데시 노동법에 따르면 최소 1년 이상 회사에 근무하다 해고된 정규직 근로자는 최소 60일 동안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은 그가 한 달 월급 밖에는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의 의류 회사들은 그들에게 주문을 주는 유명 브랜드들이 당초의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회사 혼자만으로는 근로자들을 부양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글로벌노동자권익센터가 조사한 방글라데시 하청업체 316곳 가운데 절반 이상이 코로나 대유행 이후 진행 중인 주문 대부분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설문 응답자들의 고객들은 대부분 유럽과 미국 브랜드였다.

조사 결과 주문을 취소한 유명 브랜드들의 98%가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임금을 부분적으로나마 지원하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BGMEA는 브랜드들과의 계약에 따르면, 주문자가 일방적으로 주문을 취소할 경우 공장 근로자 급여의 16%와 상품의 총 비용을 부담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크 BGMEA 회장은, 실제로 공장들은 주문자들로부터 물품 대금을 받기 전에 원자재를 구입하고 인건비와 간접비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사업상 리스크를 공장이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다카에 6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비엘라텍스 그룹(Viyellatex Group)의 데이비드 하사나트 회장은 "그들은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윤리성에 대해 말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그런 윤리를 믿는다는 것을 보여줄 때"라고 지적했다.

▲ 국제 유명 의류 브랜드와 소매업체들은 코로나 유행 이후 31억 7000만 달러(4조원)어치의 주문을 취소하거나 보류했다.    출처= 방글라데시 의류 제조 및 수출자 협회(BGMEA)

국제 브랜드의 의무

CNN은 방글라데시 공장과 거래하는 주요 국제 브랜드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스웨덴 의류체인 H&M, 미국 최대 슈퍼마켓 월마트(WMT), 영국 유통업체 프리마크(Primark) 등 일부 브랜드는 그들이 이미 주문한 상품에 대해서는 일부 또는 전액 대금을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월마트는 성명을 발표하고 "우리는 완제품이나 생산 과정에 있는 물건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존중할 것이며, 예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례별로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글로벌노동자권익센터가 확실한 약속을 하지 않은 브랜드로 지목한 프리마크는 "5월 17일까지 완제품, 인도 예정 및 생산 중인 제품을 모두 인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명 청바지 브랜드 갭(Gap) 등 다른 회사들은 여전히 어떠한 보증도 하지 않고 있다고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의 아루나 카샤프 여성인권담당 변호사는 말했다.

카샤프 변호사는 "방글라데시의 근로자들은 정말 가난하다. 그들은 수개월, 수 년 동안 지금의 공급망에서 이들 브랜드들과 일해왔다. 따라서 지금 같은 위기의 순간에 유명 브랜드와 소매업체들은 그들의 인권 책임에 부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갭은 방글라데시 공장에 주문한 물품에 대한 대금 지불 여부를 묻는 CNN의 질문에 "북미와 유럽의 점포 폐쇄 후 비용을 절감하는 등 직원, 고객, 협력사의 최선의 이익과 우리 사업의 장기적 건강성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애매한 답을 내놓았다.

불확실한 미래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들을 위해 지원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시나 셰이크 총리는 3월과 4월 두차례에 걸쳐 현지 공장들의 근로자 급여 지급을 돕기 위한 대출 등 85억 달러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문시 상무장관은 "하시나 총리가 ‘아무도 굶어 죽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돈을 받아야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며 ‘공장주들에게 노동자들을 돌보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공장주들은 정부 대출을 받는 것에 대한 우려를 씻을 수 없다. 그 돈은 2년 이내에 갚아야 할 돈인데,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이 얼마나 오래갈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빌린 돈을 제 때에 갚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엘라텍스의 하사나트 회장은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는 부유한 나라가 아니며 외환보유액도 많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이 불확실성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