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업체에 수차례 ‘갑질’을 한 삼성중공업에 3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법인을 고발하기로 했다. 부당하게 하도급대금을 깎고, 위탁내용을 정당한 사유없이 취소 변경하는 등 거래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삼성중공업이 하도급 업체들에 선박·해양 플랜트 제조를 위탁하면서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결정한 행위, 사전에 계약 서면을 발급하지 않은 행위, 위탁 내용을 부당하게 취소·변경한 행위에 대해 시정 명령과 과징금 부과, 법인 고발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지난 2013~2018년 206개 사내 하도급 업체에 3만8451건의 선박·해양 플랜트 제조를 위탁하면서, 작업 내용 및 하도급 대금 등 주요 사항을 적은 계약서를 작업이 이미 시작된 뒤에 발급했다. 3만8451건 중 전자 서명 완료 전 공사 실적이 발생한 경우가 3만6646건, 공사 완료 후 계약이 체결된 경우가 684건, 지연 발급 건을 파기하고 재계약한 경우가 1121건이다.
이는 하도급 계약 내용을 적고 당사자 간 서명이 담긴 서면을 발급하도록 규정하고, 계약일은 전자 서명 완료일이 되도록 한 하도급법을 위반한 행위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017년 7월 선체 도장 단가를 정당한 사유 없이 전년 대비 일률(3.22, 4.80%)로 깎기도 했다. 2017년 7월~2018년 5월 10개 선체 도장 업체에 409건의 공사를 위탁하면서 5억원의 하도급 대금을 인하했다. 선체도장작업이 이뤄지는 도크 또는 선종별로 작업의 난이도가 다른데 일률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삼성중공업은 제조 원가보다 낮은 단가로 하도급 대금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도 했다. 지난 2015~2018년 95개 사내 하도급 업체에 대금을 정하지 않은 채 2912건의 수정 추가 공사를 위탁하고, 공사가 진행된 후 제조 원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대금을 결정했다.
수정 추가 공사 발생 시 삼성중공업 생산 부서에서 실제 투입 노동 시간을 바탕으로 수정 추가 노동 시간을 산정한 뒤 원인·예산 부서의 검토를 요청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생산 부서에서는 실제 투입 노동 시간보다 수정 추가 노동 시간을 적게 산정했다. 이마저도 원인·예산 부서 검토 과정에서 합리적·객관적 근거 없이 더 삭감됐다.
그 결과 삼성중공업이 위탁한 2912건의 수정 추가 공사에서 하도급 대금이 업체의 제조 원가보다 낮게 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하도급 업체와의 협의는 없었고, 작업이 끝난 뒤 삼성중공업이 사후적으로 정한 금액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삼성중공업은 협력사 제조 위탁 선박 부품을 임의로 취소·변경하기까지 했다 지난 2015~2018년 협력사 책임으로 돌릴 사유가 없음에도 임의 취소·변경한 부품은 6161건에 이른다.
윤수현 공정위 기업거래국장은 “삼성중공업의 계약 절차 등 문제점에 기인한 위반 행위, 선시공 후계약 행위, 하도급 대금을 일방적으로 낮게 결정한 행위 등을 제재했다”면서 “관행적인 불공정 행위로 다수의 신고가 제기된 사업자를 엄중하게 시정했다. 앞으로 유사한 거래 관행이 개선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