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바이러스의 첫 희생양은 세계인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발이 묶인 항공사들이다.    출처= Loyalty Lobby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세계는 지금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휩싸여 있다. 중국에서 발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는 23일 현재 전세계 200개가 넘는 국가에서 260만 명의 감염자와 20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내며 세계 경제를 패닉 상태에 빠트리고 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공장들이 문을 닫는 것으로 시작한 경제 충격은 이제 생산, 소비, 무역, 유통, 여행, 관광 등 경제의 전과정에 심각한 피해를 가져오며 전세계 동시 다발 파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항공 산업

코로나 바이러스의 첫 희생양은 세계인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발이 묶인 항공사들이다.

지난 2월 터키 항공사 아틀라스 글로벌(Atlas Global)의 파산을 시작으로 3월에는 영국 저가 항공사 플라이비(Flybe)가 파산에 들어갔고, 이달 들어서는 지난 20일 노르웨이 저가 항공사 노르웨이지안 항공(Norwegian Air)의 덴마크와 스웨덴에 있는 4개 자회사가 파산을 신청했다. 물론 이들 항공사들은 코로나 이전에도 부채 압박을 받던 회사들이다.  

그러나 21일에 호주 2위 항공사인 버진 오스트레일리아(Virgin Aurtralia)가 자발적 법정관리(voluntary administration)에 들어갔는데, 언론들은 버진 오스트레일리아가 코로나로 인한 세계적인 도시 봉쇄, 여행 제한 조치로 항공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파산 절차에 들어간 첫번째 사례라고 보도했다.

버진 오스트레일리아는 지난 해 말 기준 부채가 50억 호주달러(3조 8700억원)에 달했는데, 코로나로 사실상 모든 서비스를 중단한 뒤 자금 사정이 악화되며 호주 정부에 14억 호주달러(1조 800억원)의 대출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 회사는 현재 정규직과 계약직을 합해 1만 5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버진 오스트레일리아는 주요 주주가 외국 항공사다. 싱가포르항공, 아랍에미리트의 에티하드 항공, 중국 하이난항공그룹, 중국 난샨그룹이 각각 2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호주 정부가 버진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출 요청을 거부한 것은 이들의 재정 지원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2012년부터 손실이 누적되어온 남아프리카 항공(South African Airways)도 이달 정부로부터 추가 자금지원을 거절당하자 4700여명에 달하는 전 직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고 보유 항공기 59대는 매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 컨설팅 전문기관인 CAPA는 지난달 "많은 항공사가 이미 기술적 파산 상태에 몰렸거나 대출 약정을 현저하게 위반한 상태에 있다"며 “정부의 지원 대책 등이 나오지 않으면 대부분 항공사가 5월 말 전에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지난 100년간 미국 소비의 명과 암을 보여준 유수의 백화점들이 줄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출처= The Real Deal

유통업

항공업 다음으로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곳은 유통업이다.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아마존 등 전자상거래 업체의 등장으로 이미 타격을 받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최후의 일격’을 맞으며 지난 100년간 미국 소비의 명과 암을 보여준 유수의 백화점들이 줄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올해로 창립 113주년을 맞는 미국 고급 백화점 니만마커스(Neiman Marcus)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파산 신청을 할 계획이다. 니만마커스는 지난 달 직영점 43곳과 할인 매장 라스트콜(LastCall) 20곳, 최고급 명품 백화점 버그도프굿맨(Bergdorfgoodman) 두 곳의 문을 닫았다. 현재 직원 약 1만 4000명은 무급휴직 상태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에 따르면 니만마커스의 부채는 약 48억 달러(6조원)로, 이달 말까지 갚아야 할 빚만 1억 1500만 달러(1400억원)에 달한다. 1907년 처음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문을 연 니만마커스는 1972년 뉴욕의 최고급 백화점 버그도프굿맨를 인수하면서 부유층과 유명인사를 고객으로 둔 명품 백화점으로 부유층의 사랑을 받아왔다.   

1902년 설립된 ‘서민형 백화점’ JC페니(JCPenney)도 파산 신청을 검토 중이다. JC페니는 올해 초 40억 달러(4조8600억원) 규모 채무의 상환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채권단과 협상했지만 실패했다. JC페니는 코로나 여파로 미국 내 850개 점포의 문을 닫았고, 직원 8만 5000명을 해고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JC페니의 수익이 전년 대비 25%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162년 된 미국 최대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Macy’s)는 최근 투자은행과 신규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메이시스는 직원 12만 500여명 대부분이 지난 달부터 무급휴직 상태다.

1901년 설립된 백화점 노드스톰(Nordstorm)도 보유 부동산을 담보로 하는 대출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코언앤컴퍼니(Cowen & Company)는 “코로나19 충격에 노드스톰은 1년은 버틸 수 있겠으나, 메이시스와 JC페니는 각각 4개월, 7개월 버티는 게 전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 미 유통업체 파산 추이. 2020년은 4월 15일 현재까지 수치임.    출처= S&P Global

올게 왔다, 美 석유 산업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에 직면한 미국 셰일 산업은 올게 왔다며 패닉에 빠져 있다.

미 석유산업이 고사할 것이란 우려가 고조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석유·가스 산업이 무너지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며 “에너지부와 재무부에 석유·가스 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가용 재원 확보'를 위한 '계획 작성'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제계획 목표가 이들 매우 중요한 기업과 일자리를 앞으로도 오랫동안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전했다.

지난 1분기 동안 7개의 에너지 업체가 파산 신청을 한 가운데 지난 2일 화이팅페트롤륨(Whiting Petroleum)이 파산 보호를 신청했고, 최근 유닛코퍼레이션(Unit Corporation)이 파산 신청 절차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셰일 업계의 파산 도미노가 시작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셰일업계는 지난 5년간 국제유가가 배럴 당 50달러 이상으로 유지되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원가의 한계를 딛고 꾸준히 성장해왔다. 셰일오일 채굴 원가는 기술 발달로 현재 32~57달러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30달러 미만의 국제유가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 배럴당 유가가 33달러까지 떨어졌던 2016년 상반기에 실제로 수십 곳의 미국 셰일 에너지 업체가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다.

▲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에 직면한 미국 셰일 산업은 올게 왔다며 패닉에 빠져 있다.     출처= Financial Times 캡처

미즈호증권은 올해 미국 내 원유 생산업체 6000곳 중 70%가 파산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라보뱅크의 라이언 피츠모리스 에너지 전략가도 "이번 침체에서 많은 기업들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사상 최악”이라고 말했다.

원유 컨설팅 업체 리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의 셰일 연구팀장은 아르템 아브라모프는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가 지속되면 2021년 말까지 미국 석유회사 533곳이 파산하게 될 것이며, 10달러 대로 떨어지면 1100곳 이상이 파산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나마 화이팅페트롤륨은 미 연방파산법 챕터11에 따라 파산 신청(채권자들과 22억달러 규모 부채를 탕감하는 대신 자산 대부분을 양도하는데 합의)을 냈지만, 현재와 같은 비정상적인 유가가 지속된다면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파산조차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리드 모리슨 에너지 분야 대표는 "챕터7에 의한 청산이 더 많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돼 즉시 자산매각을 통해 청산 절차에 돌입하는 것을 뜻한다.

이번 위기로 미 석유 산업에서 어느 회사가 먼저 파산할 지에 대한 추측 게임이 시작되었다. 가장 취약한 회사들은 부채는 쌓여가고, 만기는 돌아오는데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회사들이다.

리스타드의 아브라모프는 “체서피크 에너지(Chesapeake Energy)와 오아시스 페트롤륨(Oasis Petroleum)이 파산을 신청한다해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유가가 얼마나 오랫동안 싼 가격에 머물 것이냐다. 유가가 빠르게 반등한다면 다행히 많은 석유 회사들이 파산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셰일 산업의 붕괴가 특정 산업의 위기로 끝나지 않고 미 금융시장 전반의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 셰일 관련 에너지 기업은 미국 정크(투기 등급) 본드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4년 사이 만기가 돌아오는 북미 지역 에너지 기업의 부채는 총 860억 달러(107조원)에 이른다. 셰일 업체들의 연쇄 파산은 이들에게 투자한 주요 은행의 부도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