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한국 철강업은 50여년 만에 세계 6위의 철강 강국으로 부상함으로써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발전해 왔다. 하지만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위상을 유지하며 생존·번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글로벌 공급 과잉,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대내외적 여건으로 성장한계에 직면해 있는 탓이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 철강업은 한국전쟁과 제1·2차 석유파동, IMF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수차례 난관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철이 과거 신화를 넘어 향후 미래100년의 성장 엔진으로 가기 위한 숙제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한국 철강산업의 지속발전 여부는 스마트화와 기술력 확보에 달려있다고 입을 모은다. 

진화하는 철강업, AI·빅데이터로 생산성 제고

철강업계는 위기 타파의 수단 가운데 하나로 스마트팩토리에 주목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딥러닝,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통해 노후 설비의 가치를 높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인건비 절감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향상, 불량률 감소로 인한 품질 제고, 개발주기 단축 등 효과도 기대되는 효과다. 

철강업은 가장 전통적인 자본집약산업으로, 기계장치로 대부분 기술들이 구현된다. 이에 따라 최신 설비를 얼마나 많이 갖췄느냐가 생산성을 결정하는 핵심요소다. 설비투자 시기를 놓치거나 갱신투자를 소홀히 할 경우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잃을 수 있어 스마트팩토리 도입이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다보스포럼으로부터 국내 유일의 등대공장으로 선정된 포스코는 인공지능(AI)을 통해 전통 제조 기업에서 4차 산업혁명 선도 기업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포스코는 AI를 도입한 도금공정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고로를 운영 중이다. 이에 따라 용융아연도금공정(CGL)에 AI를 도입, 수동으로 조업할 때 최대 7g에 이르렀던 m²당 도금량 편차를 0.5g까지 줄이는 효과를 얻었다.

또한 기존에는 숙련공이 2시간마다 고로 하부에서 수동으로 노열을 점검하고 육안으로 색을 식별해 내부 온도를 예측했지만, 스마트 고로 도입 이후 센서가 쇳물 온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1시간 뒤의 온도를 예측해 자동제어가 가능해졌다. 

스마트고로를 통해 용선 1t당 연료투입량이 4kg 감소했고 고로 일일 생산량도 240t 늘었다. 연간 중형 승용차 8만5000대를 생산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포스코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스마트팩토리 구축으로 2500억원이 넘는 원가절감을 했다. 

포스코는 약 3년에 걸쳐 딥러닝을 활용한 고로 부위별 자동제어시스템 개발을 마치고,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통합 시스템을 개발 중에 있다. 향후 사이즈가 큰 3·4고로(각 5600㎥)에도 적용시켜 성과 창출을 가속화 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제철 또한 IT융합 제철소 구현을 추진 중이다. 특히 자동차용 강재에 특화된 제철소를 표방하고 있는 자동차강판 개발 및 생산에 AI기술을 적극 접목하고 있다.

현대제철에 따르면 딥러닝 방식으로 최적의 금속배합 비율을 찾아낸 다상복합조직(AMP)강재는 강판의 강도 및 가공성이 이전 대비 약 40% 향상됐다. 불량 강판을 식별하는 ‘자동 판독시스템’도 설계부터 생산에 이르기까지 AI기술을 통해 ‘시험-오류-수정’ 반복을 최소화하고 99%의 정확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 스마트팩토리에서 더 나아가 제조 부문을 비롯해 시스템 등 전 부문에 걸친 매니지먼트 구현이 가능한 ‘스마트 엔터프라이즈’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초 프로세스와 시스템, 인프라 부문의 스마트 매니지먼트를 실행하는 프로세스혁신 태스크포스팀(TFT)을 사장 직속 조직으로 전진 배치하기도 했다.

현대제철은 향후 2025년까지 스마트 팩토리 고도화와 스마트 매니지먼트 융합을 통해 스마트 엔터프라이즈 시스템을 완성한다는 방침이다.

 

R&D투자로 초격차… 공해산업 인식 제고도 숙제

업계에서는 스마트팩토리와 함께 고부가가치 제품과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데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야만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일본과 턱 끝까지 쫓아온 중국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국내 철강사들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포스코를 제외하면 매출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최근 3년간(2017~2019년)간 철강 빅4의 R&D 비용 추이를 보면 포스코의 R&D 비용이 압도적 1위다. 2017년 4783억원(1.58%)에서 2018년 5458억원(1.69%), 지난해 4988억원(1.54%)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업계 2위인 현대제철은 1491억원(0.8%)에서 1191억원(0.6%), 지난해 1362억원(0.7%)을 기록했다. 이 밖에 동국제강은 111억원(0.2%)→107억원(0.2%)→102억원(0.2%), 세아베스틸은 72억원(0.4%)→72억원(0.4%)→58억원(0.3%)에 그쳤다. 

반면 중국 최대 철강사인 바오산철강은 매출의 2%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최대 고로사인 신일본제철도 매출 대비 투자 비율이 1%를 웃돈다. 이에 국내 철강업계도 위기상황에서도 혁신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한국의 경제구조가 고도화함에 따라 전체적인 철강수요는 둔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단순한 생산규모 확대보다는 고부가가치 제품의 생산 비중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 제품 이익률을 극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프리미엄 제품은 기술혁신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R&D 투자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수합병(M&A)이나 글로벌 철강사와의 전략적 제휴 등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아울러 거세지는 환경 규제에 맞서 친환경 산업으로 거듭나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블리더 개방 이슈와 관련 미세먼지의 최대 원인 제공자라는 오명을 쓰며 조업중지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이에 미세먼지 저감기술 개발은 물론이고 철강부산물에 대한 재활용 확대방안을 마련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공해산업이라는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철강재는 다른 소재에 비해 재활용률이 높고, 태양광·풍력·조력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위한 소재로도 사용될 수 있다. 또한 제철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의 97% 정도를 재활용하고 있고 강재생산 톤당 에너지 사용량도 지속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국내 철강업계는 지속적인 환경투자와 더불어 친환경 공장을 구축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이 밖에도 수입 철강재의 과도한 국내 시장 진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국산 우선구매제도나 품질인증제도 강화 등을 통해 수입재의 투명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보호무역주의와 관련해서는 통상마찰을 줄이고 교역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의 기민한 협력 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전문가는 “당분간 공급과잉이 해소되기 어렵고, 전방산업의 빠른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중국산과 차별화를 꾀하고 중국산 불공정 제품 유입을 막는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기술과 마케팅을 융합한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와 해외사업 수익성 강화를 통해 철강의 본원 경쟁력을 강화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청정에너지와 원천소재 등 신성장사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익수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선임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가 해소되더라도 철강업황이 반등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자동차·조선 등 전방사업이 코로나19 영향에서 벗어나면 가격 협상 기회는 있겠지만 중국으로부터의 공급이 지난해부터 다시 점증하는 등 수급상황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철강 업황이 당분간 반등하기 힘든 만큼 각 기업들이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는 재무건전성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재윤 산업연구원(KIET) 소재산업실 부연구위원도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철강업황이 크게 살아나지 않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재작년부터 수요침체가 지속돼고 있었던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고, 원래 안 좋았던 수요가 더욱 나빠지는 상황이다”며 “업황이 회복되더라도 100%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새로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환경 규제 비용 감소가 가능한 신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