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이가영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최악의 경제위기가 시작된 가운데 초유의 국제유가 하락이 겹치며 국내 기간산업이 휘청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공업과 항공업의 피해가 상당한 가운데 정부가 긴급 유동성을 제공하는 쪽으로 측면지원에 나서 눈길을 끈다. 

정부의 전략적 행보가 의미없는 혈세 퍼주기로 그치지 않으려면 기업 스스로도 고강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출처=두산중공업

급한 불 끈 두산중공업, 앞으로도 문제

한국수출입은행이 21일 두산중공업을 대상으로 6000억원 규모의 외화공모채에 대한 대출 전환을 승인함에 따라, 두산중공업은 말 그대로 벼랑 끝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급한 불은 껐다는 말이 나온다.

수은은 지난 2015년 4월 두산중공업이 외화채를 발행할 때 지급보증을 섰기 때문에, 만약 두산중공업이 상환에 실패하면 수은이 이를 대신 갚아야 한다. 이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 수은이 일종의 구원투수로 나선 셈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수은의 구원으로 두산중공업은 상반기까지 시간을 벌었으나 그 후속조치로 고강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당장 두산솔루스를 비롯해 두산메카텍, 두산퓨얼셀 등의 매각이 유력하다는 말이 나오는 한편 임직원 급여 반납 등 정상화를 위한 강력한 대책이 강행될 예정이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빚만 4조2000억원에 달하는 가운데 살인적인 ‘쥐어짜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최근 두산솔루스 매각이 한 차례 좌초되기는 했으나, 두산중공업의 고강도 긴축경영은 계속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매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도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라는 비관적인 말이 나오지만 두산중공업 입장에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런 가운데 두산그룹의 본질적인 문제에도 집중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현재 어려움에 봉착한 두산중공업의 경우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사실 두산중공업의 원전사업 매출은 10% 내외 수준이다. 그 보다는 화력발전 매출이 70% 수준이기 때문에 환경문제까지 얽힌 석탄산업의 퇴조에서 두산중공업의 부진한 경영을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나아가 두산중공업은 2013년부터 이미 실적이 악화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두산그룹 차원에서 두산건설의 회생을 위해 두산중공업이 막대한 자금을 무리하게 지원해 부실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 출처=두산중공업

한편 중견 중공업계의 간판인 한진중공업은 최근 본격적으로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 21일 주요 채권 은행들이 매각을 전격 결의했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은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16.14%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이어 우리은행 10.84%, 농협은행 10.14%, 하나은행 8.90%, 국민은행 7.09%, 수은 6.86%이 주요 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2월 해외 자회사인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부실로 자본잠식에 빠졌으나 경영진 교체 및 강도 높은 자구책으로 지난해 매출 1조6095억원, 영업이익 770억원을 기록하며 몸값을 몰린 상태다. 여기에 부실자산인 수빅조선소 정리 및 인천 북항부지 등 공격적으로 자산을 매각하고 특수선 분야에서 선전하고 있다.

다만 중현 선박시장의 경쟁이 워낙 치열하고 코로나19로 인한 타격도 상당하기 때문에 한진중공업 매각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말이 나온다.

▲ 출처=아시아나 항공

난기류에 빠진 대한, 아시아나 항공

수은의 두산중공업에 대한 긴급 지원이 결정된 21일 산업은행도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1조7000억원의 유동성 공급을 결정했다. 수은도 비슷한 측면지원을 선언한 가운데 아시아나 항공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시간을 벌었다는 말이 나온다.

산은과 수은은 지난해 7대 3의 비율로 아시아나 항공이 발행한 영구채 5000억원을 인수하는 등 총 1조6000억원을 지원했으며, 이번에는 한도대출 방식의 지원을 통해 아시아나 항공에 활력을 불어 넣겠다는 의지다.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을 포함해 1조7000억원을 소위 마이너스 통장처럼 활용하는 카드다.

코로나19로 항공업계 자체가 위축되자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 항공 인수전에 차질이 생겼고, 이에 채권단이 과감한 유동성 지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아시아나 항공은 지난해 1조6000억원의 유동성 지원 중 대출 분야에서 8000억원을 받아 이미 사용했으며 스탠바이 LC 3000억원도 조만간 집행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강력한 유동성 지원이 이뤄지면 아시아나 항공 입장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은 생길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아시아나 항공도 내부적으로 ‘필사즉생’의 각오를 보여주고 있다. 월 한달간 실시했던 전직원 15일 이상 무급휴직을 연장하고, 5월부터 사업량 정상화될 때까지 매달 전직원 최소 15일 이상의 무급 휴직에 들어가는 한편 캐빈승무원, 국내 공항 지점 근무자 대상으로 5월 이후 2개월 단위로 유급 휴직 신청을 받는다. 급감한 매출 회복을 위해 전세기 및 화물기 영업에도 속도를 낸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 인수 작업이 평탄하게 진행되지 않는 대목이다. 산은과 수은 등 정부의 지원이 아시아나 항공의 새로운 주인이 될 HDC현대산업개발의 안정적인 합병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리스크다.

최근 러시아를 제외하고 미국 정부 등 6개 나라에서 HDC현대산업개발과 아시아나 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했으나, 막상 HDC현대산업개발의 행보가 신통치 않다. HDC현대산업개발이 당초 이달 말로 예정됐던 아시아나 항공의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인수대금 납입을 연기하며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의 강력한 유동성 지원이 추가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조만간 움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양측 모두 기업결합에 있어 여전히 긍정적이라 추가협상을 통해 별도의 타결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대한항공도 비상이다. 지난 7일 코로나19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자구 노력의 일환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휴업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최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정부가 지원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두산중공업 등의 사례처럼 정부 대신 국책은행이 지급보증을 서는 방안이 유력하다. 최현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위원장은 14일 오전 11시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 앞에서 전국연합노동조합연맹과 공동으로 ‘위기의 항공산업, 신속한 정부지원을 촉구하는 항공업계 노동조합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대한항공을 비롯한 국내항공사들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으로 국민과 국가의 도움 없이는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 주장했다.

▲ 사진=이가영 기자

혈세 퍼부었는데..살아날까

두산중공업 및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은 모두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특단의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다만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활력을 잃어가는 기업을 대상으로 국민의 혈세를 퍼붓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원포인트 지원에 나선 후 사후에도 면밀한 검토를 통해 지원의 정당성을 잘 따져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도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동시에 각 기업도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열어야 한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