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가 지속되면 2021년 말까지 미국 석유회사 533곳이 파산하게 될 것이며, 10달러 대로 떨어지면 1100곳 이상이 파산할 것이라고 추정된다.   출처= Indian Weekend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 석유 산업에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오고 있다고 CNN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석유 수요는 급감했는데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공급 경쟁을 벌인 탓에 전 세계에 석유가 넘쳐 저장할 공간이 부족해졌다.

이러한 이중 블랙스완(Double Black Swan)은 미국 셰일 회사들이 돈 버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수준으로 유가를 붕괴시키며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5월 인도분 선물가격이 20일(현지시간), -37.63달러까지 떨어지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21일 선물 인도 시한을 앞두고 투자자들이 대거 인도를 포기한 채 6월물로 갈아탔기 때문이다. 실제 거래가 거의 사라지면서, 돈을 더 얹어 줘가며 팔아야 하는 시장 상황이 이론상 ‘마이너스 유가’로 표현된 것이다.

OPEC 감산 합의에도 패닉 막지 못해

유가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 더욱 놀라운 이유는 러시아와 사우디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 이후 가격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한 이후에 나왔다는 것이다.

OPEC+는 석유 생산을 기록적인 양만큼 줄이는데 동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OPEC+의 합의로 수많은 일자리를 구할 것이며 석유 산업에 절대 필요한 안정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OPEC+의 갑산 합의 조치가 시작되는 5월까지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게다가 항공기, 자동차, 공장들이 코로나 대유행으로 셧다운 상태여서 수요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석유업계의 희망은 20일의 마이너스 가격이 5월 선물 인도 포기에서 비롯된 ‘우발적 사태’이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유가는 21일(현지시각)에도 대폭락했다. 6월 인도분 WTI는 전날보다 거의 반토막 수준인 11.5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6월물 브렌트유도 20달러 이하로 폭락했다.

원유 컨설팅 업체 리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의 셰일 연구팀장은 아르템 아브라모프는 "30달러도 이미 충분히 최악의 수준이지만, 20달러나 심지어 10달러가 되면 완전 악몽"이라고 말했다.

美 석유업계 ‘최악의 날’ 온다

리스타드 에너지는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가 지속되면 2021년 말까지 미국 석유회사 533곳이 파산하게 될 것이며, 10달러 대로 떨어지면 1100곳 이상이 파산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미국의 많은 석유회사들이 좋은 시절에 너무 많은 부채를 쌓았다. 라보뱅크의 라이언 피츠모리스 에너지 전략가는 "이번 침체에서 많은 기업들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사상 최악”이라고 말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정부의 코로나 긴급지원 대책의 영향으로 전체 주식 시장이 극적인 반등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S&P 500의 에너지 부문은 올해 가치의 40% 이상을 잃었다.

노블 에너지(Noble Energy), 할리버튼(Halliburton), 마라톤 오일(Marathon Oil), 옥시덴탈(Occidental) 등은 가치의 3분의 2 이상을 잃었다. 다우지수에 편입되어 있는 엑손모빌(ExxonMobil)도 38% 하락했다.

화이팅페트롤륨(Whiting Petroleum)은 이미 지난 4월 2일 파산 보호를 신청하면서 파산 도미노의 시작을 예고했다.

리스타드의 20달러 시나리오(533개 석유회사 파산)는 현재 700억 달러(86조원)가 넘는 미국 석유회사의 부채가 2021년에 1770억 달러(220조원)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 숫자에는 시추 및 생산 회사만 포함된 것이며, 이들에게 장비와 인력을 제공하는 서비스 산업은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관건은 유가가 얼마나 오랫동안 싼 가격에 머물 것이냐다. 유가가 빠르게 반등한다면 다행히 많은 석유 회사들이 파산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청산 작업, 이미 진행 중

국제 기업 법률사무소 헤인즈앤분(Haynes and Boone)의 버디 클라크 에너지 부문 대표는 “1982년부터 업계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올해 100여개의 석유회사 파산이 있을 것이다. 이는 현재 상황에서 판단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만일 유가가 조만간 반등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이미 더 많은 파산이 예정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화이팅페트롤륨은 미 연방파산법 챕터11에 따라 파산 신청(채권자들과 22억달러 규모 부채를 탕감하는 대신 자산 대부분을 양도하는데 합의)을 냈지만, 현재와 같은 비정상적인 유가가 지속된다면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파산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리드 모리슨 에너지 분야 대표는 "챕터7에 의한 청산이 더 많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돼 즉시 자산매각을 통해 청산 절차에 돌입하는 것을 뜻한다.

에너지 기업들의 파산이 업계 최대 기업인 엑손모빌과 셰브론 등에게는 인수·합병(M&A)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PwC의 모리슨 대표는 “경영 상황이 좋은 기업들은 이 상황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배당금 방어가 우선인 현 상황에서 이들이 6개월 내에 인수합병에 나서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도미노는 어디?

이번 위기로 미 석유 산업에서 어느 회사가 먼저 파산할 지에 대한 추측 게임이 시작되었다. 가장 취약한 회사들은 부채는 쌓여가고, 만기는 돌아오는데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회사들이다.

리스타드의 아브라모프는 “체서피크 에너지(Chesapeake Energy)와 오아시스 페트롤륨(Oasis Petroleum)이 파산을 신청한다해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서피크는 최근 우선주에 대한 배당금 지급을 중단했다. 또 주가가 너무 폭락해 거래소 요건에 부합하기 위해 200대 1의 액면 병합을 단행했다.

오아시스는 올해 가치가 90% 이상 떨어져 현재 30센트 이하로 거래되고 있다.

2014~2016년 석유파동 이후 겨우 살아난 미국 내 셰일 시추업자들이 이번 위기에서는 영구적 치명타를 맞을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미 수 년간의 과도한 지출과 업계의 끔찍한 수익률에 지쳐 있다. 그것도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