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에볼라·말라리아 등 기존 약물을 활용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 약물은 코로나19 공포를 완화시킬 수 있는 게임체인저로 주목을 받아왔다. 상용화까지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신약 개발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속도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약물을 활용한 코로나19 치료제 역시 상용화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추가 임상시험을 통한 안전성과 효능 검증이 최우선 과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이들 약물을 활용한 임상시험이 활발하게 이뤄진 탓에 어느 정도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고해상 전자현미경 사진. 출처=질병관리본부

중국과 일본의 '아비간' 주도권 경쟁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과 일본이 코로나19 치료제로 검증되지 않은 항바이러스제 '아비간'(성분명 파비피라비르)을 두고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비간'은 일본 후지필름 자회사 도야마화학이 개발한 항바이러스제다. 애초 인플루엔자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지난 2월부터 중국에서 코로나19 치료제로서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현재 중국 의료당국은 아비간의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높게 평가하고 상용화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장신민 중국 국립 생명공학 개발센터 소장은 지난달 1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 우한과 선전 등에서 환자 340명에게 아비간을 투여한 결과, 안전성이 높고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도 코로나19 발원국인 중국에서 긍정적인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자 아비간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정식 승인하기 위한 절차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국내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임상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비간 사용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특히 임신부가 복용할 경우 태아에게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부작용 우려도 적지 않다. 방지환 중앙감염병병원운영센터장은 “아비간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를 봤다는 중국 논문의 수준이 높지 않아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렘데시비르 '희비 교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치료제로 눈여겨봤던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렘데시비르'는 최근 다수의 연구를 통해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이 '신의 선물'로 치켜세웠던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연구진은 코로나19 확진 환자 중 인공호흡 치료가 필요한 181명의 의료 기록을 확인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진에 따르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복용한 84명의 환자 중 20.2%는 중환자실(ICU)에 입원했거나 투약 후 7일 내 사망했다. 복용하지 않은 97명의 그룹에서는 22.1%가 중환자실로 이동했거나 숨졌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투여된 그룹의 사망률은 2.8%, 투여하지 않은 환자의 사망률은 4.6%로 통계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에 대한 안전성 문제도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브라질에서 코로나19에 걸린 17세 여학생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기반으로 한 치료를 3주 넘게 받다가 숨졌다. 이 여학생의 죽음으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없다는 사실에 힘이 실리고 있다.

▲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에볼라 치료제인 '렘데시비르'가 코로나19 치료제로 주목을 받고 있다. 출처=길리어드사이언스

기대만발 '렘데시비르', 속단 일러

반면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는 고무적인 치료 효과를 보였다는 소식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약물을 개발한 미국 바이오기업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몸값도 크게 치솟았다.

미국 의학전문매체 스탯(STAT)은 지난 16일 시카고대 의대 연구진이 코로나19 환자 125명을 상대로 실시한 임상 3상에서 렘데시비르를 투여받은 환자들이 고열과 호흡기 증세에서 빠르게 회복됐다고 보도했다.

전체 참가자 중 113명은 중증환자였다. 대부분 증상에서 회복했으며, 이들 중 2명만 사망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캐슬린 멀레인 감염학 교수는 “가장 좋은 소식은 대부분의 환자가 이미 퇴원했다는 것이다. 약물 투약 후 열이 떨어지고 치료 시작 다음날 인공호흡기를 뗀 환자도 있었다”고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번 임상에는 대조군이 포함되지 않아 약효에 대한 결론을 내리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임상시험에서 신약의 안정성과 효능을 정확하게 평가하려면 위약을 투여한 대조군과 비교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임상은 대조군이 없어 약의 정확한 효능을 평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길리어드 역시 전체 임상 데이터를 분석한 뒤 최종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길리어드는 성명을 통해 "이번 임상시험 결과는 고무적이지만 코로나19 치료제로서 렘데시비르의 안전성과 효능을 밝히는 데 필요한 통계적 검증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길리어드는 지난 3월부터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환자를 대상으로 렘데시비르를 투약하는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중 코로나19 중증 환자 2400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임상시험 결과가 이달 말에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