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유적 공간, 181.8×227.3㎝ oil on canvas, 2016

인간은 대개 다른 종(種)의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므로, 만약에 말이 늙었다 하더라도 하얀 머리를 하고 있는 산신령같은 총기(聰氣)를 여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석주의 작품에서 백마는 시간으로부터 초월한 상서로운 존재로 다가온다. 요한계시록이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백마의 주인공은 예수이다.

2016년의 작품에 등장하는 하얀 비둘기 또한 마태복음에 암시하는 대로 성령이 연상된다. 작가가 종교를 가지고 있든 말든 상관없이. 백마나 하얀 비둘기 같은 도상이 가지는 상징은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강력한 상징은 하나의 사실처럼 공유되고 소통되고 변형되곤 한다. 전경에 놓인 책들은 그러한 신령한 존재에 비교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닐 것이다.

▲ 사유적 공간, 181.8×227.3㎝ oil on canvas, 2016

최근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책들은 매우 낡았다. 책들은 시간의 켜를 둘러쓰고 있다. 서사적 과정 뿐 아니라. 한 줄 한줄 읽어내려 가며 한 장 한 장 넘기는 책의 이미지 자체에 시간성이 내재해 있다. 그래서 회화가 공간적 매체라면, 소설은 시간적 매체로 간주 된다.

2016년의 작품 속 낡은 책과 시계의 조합은 인간적 지식의 상대성을 말해준다. 인간이 등장하지 않은 장면 속에 인간의 흔적을 담고 있는 사물인 책은 영원의 반열에 놓인다. 예술에 관련된 제목이 드러나는 것으로 봐서 예술의 상대적 영원함을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그의(서양화가 이석주, 이석주 화백,ARTIST LEE SUK JU,이석주 작가,李石柱, 하이퍼 리얼리즘 이석주, Hyperrealism Lee Suk Ju,극사실회화 1세대 이석주)사유적 공간에는 명화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글=이선영 미술평론가/미술과 비평(Art&Criticism), 201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