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중공업 트랜스퍼 크레인. 출처=두산중공업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채권단이 실사에 돌입하면서 두산중공업의 경영 정상화 과정은 한 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을 포함한 두산그룹의 앞날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채권단과의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에 계열사 매각도 녹록치 않아서다. 여기에 커지는 노조의 반발도 자구안 추진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산은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5월 중순 마무리를 목표로 두산그룹과 두산중공업에 대한 실사를 마무리하고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한다. 

양측은 자구안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다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두산그룹이 내놓은 자구안에는 전자·바이오 소재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두산솔루스 매각과 그룹 계열사 임직원의 급여 삭감 방안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채권단은 이보다 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채권단은 두산 측에 최소 1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요구한 상황이다. 

두산중공업은 차입금 4조9000억원 중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것만 약 4조2000억원에 이른다. 기존 차입금 약 1조4000억원과 채권단의 1조원 지원, 수출입은행이 오는 27일 만기가 돌아오는 약 6000억원 규모의 외화공모사채를 대출로 전환해 준다 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업계에서는 채권단이 실사 착수에 돌입한 것은 다행이지만 각종 변수가 남아있는 만큼 두산중공업의 위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채권단은 핵심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의 매각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여진다. 주택경기 침체로 두산건설은 매각하기 쉽지 않고 두산타워 등도 기존에 담보로 잡힌 게 있어 의미 있는 수준의 현금 확보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산그룹 입장에선 선뜻 매각을 결정하기 쉽지 않은 방안이라 채권단과의 치열한 샅바싸움이 예고된다.

여기에 두산솔루스 매각건도 삐걱거리며 복병으로 떠올랐다. 유력 인수대상이었던 사모펀드(PEF)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와의 계약이 매각가격 등의 의견 차이로 결렬된 탓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스카이레이크가 7500억원까지 제안했지만 두산에서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두산이 생각하는 두산솔루스 가치는 1조50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두산솔루스의 경우 오너일가의 지분이 높아 채권단이 강조한 대주주의 책임 경영 이행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또한, 사업의 성장성이 커 매각 시 경영권 프리미엄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서는 두산 측이 공개매각 등을 통해 다른 원매자를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SK, 삼성, 포스코 등 대기업이 두산솔루스 매각에 참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두산솔루스는 ㈜두산에서 인적분할한 회사로 2차 전지용 전지박과 동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 생산 등을 주력으로 한다. 두산솔루스는 극소수 업체만 생산하는 6마이크로미터(㎛)의 동박을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세계 완성차 업계의 생산 전진 기지인 헝가리에 공장이 있어 유럽에서 유일하게 동박을 생산 중이다.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삼성·SK 등 대기업에게는 군침 도는 먹잇감인 셈이다. 

SKC는 지난해 6월 사모펀드 KKR에서 동박 사업을 하는 KCFT를 1조2000억원에 사들이는 등 인수합병(M&A)에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두산솔루스를 인수하면 동박사업 내 시너지 창출이 가능해진다. 

OLED와 2차 전지를 생산중인 삼성SDI도 원매자로 거론된다. 삼성SDI는 2021년 가동을 목표로 헝가리 괴드에 있는 전기차배터리 공장의 증설도 추진 중이다. 

포스코도 거론된다. 2차 전지 소재인 리튬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만큼 솔루스를 인수한다면 적지 않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앞서 포스코는 지난해 KCFT인수를 검토한 바 있지만 전략적 합치도가 높지 않다 판단해 의사를 철회한 바 있다. 

하지만 매각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채권단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시장에서 점쳐지는 두산솔루스 매각가격은 6000억~8000억원 수준으로, 채권단이 원하는 수준의 금액을 회수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설상가상으로 인력 구조조정 등에 반발을 예고한 노조의 움직임이 경영정상화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고정비 절감 차원으로 추진되고 있는 두산중공업의 창원공장 일부 휴업 조치가 두산그룹의 채권단 자구안 제출 등의 시기와 맞물린 만큼 휴업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회사 내부의 분위기다. 더불어 두산솔루스, 두산밥캣, 두산인프라코어 등의 매각설도 나오고 있어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채권단이 현 상황에서 추가적인 자구안을 요구하는 경우 두산은 인프라나 밥캣까지도 자구 대상에 포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 경우 매각이든 정상화든 인력 구조조정이 뒤따를 수 밖에 없을텐데 노조의 설득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채권단은 오는 27일 전까지 진행중인 실사를 마무리하고 지원방안을 발표할지 혹은 다음달까지 진행하면서 일단 급한 27일 만기 6000억원 규모 회사채 전환을 지원할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