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유적 공간 363.6×227.3㎝ oil on canvas, 2017

이석주의 ‘사유적 공간’시리즈는 실제로 착각할 만한 정교한 붓질로 만들어진 허구의 공간이다. 진짜처럼 보이는 허구는 역설적이다. ‘사유적 공간’이라는 제목은 관객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 투명한 창문이나 거울에 비춰진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사유 또한 재현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더욱 호소력 있는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의 허구성을 강조한다. 사실과 허구를 표면과 이면으로 가지면서 수시로 자리를 바꾸는 듯 한 극사실적 기법에는 뭔가 부조리한 면이 있다.

2017년의 사유적 공간에 나타난 바처럼, 눈앞에 있는 듯이 그려진 말의 몸뚱이에 접힌 종이 자국이 선명하다면, 작가는 미셀 푸코와 르네마그리트의 대화처럼, ‘이것은 백마가 아니다’라는 언명과 관련된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복제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현재, 허망해 보이기까지 한 극사실적 필법은 실제가 아닌 관념을 복제하는 수단이다.

▲ 사유적 공간, 545.4×227.3㎝ oil on canvas, 2015

2015년의 한 작품에는 쫑긋한 귀 때문에 유니콘처럼도 보이는 백마가 있다. 이석주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 도상은 사람 못지않은 감정이입의 대상이다. 가령 말의 머리에 바짝 붙어있는 책장이 있는 2017년의 한 작품은 마치 말의 생각이 글자로 쓴 것 같은 표현이 있다. 비록 화면상에서 글자는 매우 흐릿하지만 말이다.

2015년의 작품에서 말과 함께 등장하는, 화면의 한쪽 끝은 구겨진 책 한 페이지와 뜯어진 페이지가 있다. 화면과 밀착시킨 인쇄 이미지는 입체파의 빠삐에 꼴레(Papier Colle)가 의도했듯이,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한다. 입체파가 빠삐에 꼴레를 통해서 현대미술에 추가한 개념은, 그림은 저편으로 뚫린 창이 아니라, 화면에 직접 덧붙여진 인쇄물 같은 평면이라는 것이다.

이석주(서양화가 이석주, 이석주 화백,ARTIST LEE SUK JU,이석주 작가,李石柱, 하이퍼 리얼리즘 이석주, Hyperrealism Lee Suk Ju,극사실회화 1세대 이석주)의 작품에서 캔버스 바탕 면에 일치시킨 페이지는 마치 화면이 떨어져 나가고 있는 듯하다. 마치 하나씩 뜯어내는 달력 같은 시공간성이다. 그러나 그의 많은 작품에 등장해왔던 말은 그만큼 늙지 않는다.

△글=이선영 미술평론가/미술과 비평(Art&Criticism), 201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