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올해 LG전자 스마트폰 라인업은 말 그대로 '대대적인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다만 거창하고 화려한 변신이 아닌 어깨의 힘을 빼고 더욱 담백해진 플랫폼 전략의 연장선이라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끌고오던 레토릭(rhetoric)을 걷어내고 실리를 찾기 시작한 LG전자 스마트폰 전략에 시선이 집중된다.

LG전자는 5G와 인공지능 시대의 허브인 스마트폰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연장선에서 올해 LG전자 스마트폰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 가죽 아날로그 감성의 LG G4. 출처=LG전자

"어렵다, 어려워"
스마트폰 이전, LG전자의 휴대폰 존재감은 상당히 컸다. 특히 2000년대 후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초컬릿폰은 말 그대로 열풍을 일으키며 LG전자의 행보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유명하다. 초컬릿폰은 출시와 동시에 세계 판매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문제는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며 시작됐다. 전략적 패착으로 인해 스마트폰 시장이 늦었던 것은 삼성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삼성전자가 옴니아 악몽에서 빠르게 벗어나 갤럭시 시리즈를 런칭하는 순간에도 LG전자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물론 LG전자는 이후 옵티모스 시리즈를 다수 런칭하며 반전을 노리는 한편 일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나, 변해버린 시장에 적응하는 것은 어려웠다.

LG전자 스마트폰 경쟁력이 표류하는 가운데 2012년 G 시리즈의 런칭은 일종의 반전 포인트가 됐다. LG전자를 중심으로 LG디스플레이 및 LG이노텍 등 LG 전자 그룹사들이 총출동해 옵티모스G를 출시했고, 2013년에는 옵티모스 브랜드를 떼어낸 상태에서 G2를 공개해 스마트폰 시장의 주류로 올라설 수 있었다.

LG전자는 LG G3까지 순항했으나 LG G4가 출시되는 2015년 스텝이 꼬였다. 퀄컴 스냅드래곤 810 발열 논란에 808을 차용하는 한편,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의 된서리까지 맞았기 때문이다.

사실 LG G4가 출시될 당시만 해도 기대감이 컸다. CNN은 G4를 두고 "아마 지구 최고의 스마트폰 카메라 일 것"이라고 보도했으며 영국 유력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G4의 두 가지 핵심 포인트는 카메라와, 그 결과물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다. 두 가지 포인트 모두 밝은 사진 촬영 환경을 제공해준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특유의 가죽 감성을 내세워 아날로그 브랜드 전략을 시도했으나, 결론적으로 시장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 가죽 아날로그 감성의 LG G4. 출처=LG전자

2015년 상반기 LG G4가 삐걱이자 한 때 구글이 LG전자 MC사업본부를 인수할 것이라는 루머까지 돌았다. 구글이 LG전자 지분 35%를 약 2조5000억 원에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 방식으로 인수해 MC사업본부를 통째로 삼킬 것이라는 내용이다. 물론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이는 LG전자 스마트폰 전략이 얼마나 큰 위기에 빠졌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된다.

이 대목에서 LG전자는 재차 반전을 노린다. 2015년 하반기 V 시리즈를 전격 런칭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상반기 갤럭시S, 하반기 갤럭시노트를 출시하는 라인업 전략을 안착시킨 가운데 LG전자가 상반기 G, 하반기 V 시리즈라는 공식을 고착화시킨 것도 이 순간이다.

▲ LG V10 출시 현장. 사진=최진홍 기자

LG V 시리즈는 멀티 미디어 사용자 경험에 강점을 뒀다. LG G 시리즈가 프리미엄 전략, 즉 일반적인 스마트폰 시장의 기준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LG G4처럼 감성의 변화를 추구하는 선에 머물렀다면 LG V 시리즈는 V10부터 아예 파격적인 실험을 거듭한 스마트폰으로 평가됐다. G 시리즈와 V 시리즈의 사용자 경험이 극명하게 갈리며 LG전자 스마트폰은 완전히 안착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LG G5에 이르러 스텝은 또 꼬인다. 초반 일평균 1만대에 육박할 정도의 성적을 내며 순항했으나 이후 급격히 동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G5는 홈쇼핑에도 등장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특성상 고급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출시 초반 홈쇼핑에 나오지 않는다는 암묵적 룰을 깨버린 셈이다.

▲ 홈쇼핑을 통해 LG 스마트폰이 팔리고 있다. 출처=갈무리

무엇보다 모듈식 실험에 나선 도박이 먹히지 않았다. LG전자는 LG G5를 출시하며 구글 아라 프로젝트를 연상하게 만드는 모듈식 스마트폰 방법론을 공개했으나, 모듈의 호환성에 있어 시장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에 실패했다.

이어 LG G6, LG G7의 성적도 신통치 않은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V 시리즈의 특수성도 약화되기 시작했다. G 시리즈가 LG전자의 글로벌 스탠다드 트렌드를 쫒아가고 V 시리즈는 더욱 멀티 미디어에 집중한 몬스터폰의 이미지를 구축했으나, 후반에 이르러 G 시리즈와 V 시리즈의 경계는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를 글로벌 스탠다드로 잡고, 갤럭시노트를 S펜이 핵심이 된 스타일러스 스마트폰으로 방점을 찍은 것과 선명하게 배치된다. LG전자 스마트폰의 브랜드 정체성이 길을 잃는 순간이다.

지난해 5G 시대를 맞아 LG전자가 G 시리즈를 4G 전용으로, V 시리즈를 5G 전용으로 삼은 대목도 패착으로 꼽힌다. G와 V 시리즈의 라인업 등장이 혼재되기 시작했고 고객들은 프리미엄과 중저가 라인업의 많은 선택지를 두고 '왜 LG전자 스마트폰을 구입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LG전자는 지난해 상반기 G8 씽큐, V50 씽큐를 동시에 출격시키고 하반기에 V50S를 출격시키더니 올해 상반기에는 아예 V60 씽큐를 북미 시장에만 출시하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물론 프리미엄 스마트폰 출시 일정을 고착화시키지 않고 상황에 맞는 거대 플랫폼 전략의 위에서 합리적인 선택지를 고객에게 제시하겠다는 의지지만, 막상 고객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 LG G5 출시 현장. 사진=최진홍 기자

매스 프리미엄, 벨벳
LG전자 스마트폰의 가장 큰 패착은 브랜드 정체성을 확고하게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글로벌 스탠다드와 파격의 갈림길에서 명확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의 이름은 지워졌고, 중저가 시장에서는 샤오미 및 오포, 비보 등에 밀리고 있다. 덕분에 MC사업본부의 영업이익은 20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최악의 위기에 선 LG전자는 올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이연모 부사장이 MC사업본부장에 오른 대목에 시선이 집중된다. 조준호 사장, 황정환 부사장, 권봉석 사장(겸임)에 이어 콘트롤 타워에 오른 그는 2014년 MC북미영업담당을 맡아 LG전자의 주요 시장을 개척한 경험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과감한 행보에 나서는 것이 올해 MC사업본부의 핵심 키워드다.

그 과감한 행보는 '힘 빼기'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의 프리미엄 입지가 약해진 상태에서, 이른바 매스 프리미엄 전략을 들고 나왔다. 쉽게 말해 가성비 좋은 스마트폰을 만들겠다는 뜻이며, 이는 샤오미의 오랜 전략과 비슷하다.

우선 G 시리즈를 폐기한다. 대신 스마트폰의 브랜드 이름을 ‘LG 벨벳(LG VELVET)’으로 결정해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벨벳은 촉감이 좋은 원단이며 이는 LG전자의 새로운 스마트폰이 편안한 사용자 경험에 방점을 뒀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LG전자는 전면 디스플레이 좌우 끝을 완만하게 구부린 ‘3D 아크 디자인’을 처음으로 LG 벨벳에 적용할 예정이다. 종전의 직각 모양은 손과 닿는 부분에 빈 공간이 생겨 잘 밀착되지 않았다. 이와 달리 3D 아크 디자인은 타원형이기 때문에 손과 밀착되는 접촉면이 넓어져 착 감기는 손맛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그립감을 유난히 강조하던 LG전자의 'G 플렉스 악몽'이 떠오르지만, 현 상황에서 이러한 접근법은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LG전자 MC디자인연구소 차용덕 연구소장은 “한 눈에 보아도 정갈하고, 손에 닿는 순간 매끈한 디자인의 매력에 빠지는 세련된 느낌을 추구했다”며 “향후 출시되는 제품마다 디자인에 확실한 주제를 부여해 LG스마트폰의 차별화 포인트를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이어 V 시리즈도 전면 개편하고, 무엇보다 인공지능 브랜드를 살리기 위한 씽큐 꼬리표도 떼어낼 전망이다. 여기에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센터와 AS 지원을 통해 스마트폰 플랫폼 전략을 추구한다는 것이 LG전자 스마트폰의 큰 그림으로 볼 수 있다.

▲ LG 벨벳 랜더링 이미지. 출처=LG전자

쉽지 않은 길
LG전자 스마트폰 경쟁력은 냉정하게 말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크게 상실했다. 당장 국내와 북미 시장을 제외하고는 의미있는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이 마저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초반 행보가 불안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매스 프리미엄은 이미 샤오미 등 선발주자들이 시장에 뿌리를 내렸고, 무엇보다 이러한 전략은 LG전자 스마트폰 내부의 카니발리즘 현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K 시리즈를 중심으로 하는 중저가 라인업이 벨벳과 어떤 차이를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다만 올해 담백한 플랫폼 전략을 동원하며 본질에 집중해 스스로 눈 높이를 낮춘 것은 인상적이다. 브랜드 라인업을 과감히 개편하고 중저가 스마트폰을 별도로 출시하면서 확고한 방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프트웨어 강화 및 최적화, AS라는 경쟁력이 붙으면 중장기 스마트폰 플랫폼 전략은 완성될 수 있다.

여기에 벨벳 브랜드 강화로 G와 V 시리즈의 아쉬웠던 패착을 보완하면 더 큰 과실도 얻을 수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되는 라인업으로 벨벳을 키우고, V 시리즈의 후속 시리즈를 전혀 다른 브랜드 감성으로 끌어내면 투톱 라인업이 확실하게 꾸려지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듀얼 스크린을 기점으로 하는 하드웨어 폼팩터 변화를 통해 폴더블 스마트폰에 유연하게 대응하면 초콜릿폰의 영광을 재연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차피 5G 및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며 스마트폰은 초연결 플랫폼의 허브가 될 수 밖에 없고 이는 LG전자 생활가전과의 연결로 강력한 생태계를 창출해야 한다. LG전자가 MC사업본부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감수하고도 이를 버릴 수 없는 이유며, 그 실험의 끝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

여담이지만 LG전자는 2000년대 후반 초콜릿폰 출시를 고려할 때 후보군에 벨벳도 고려했다고 한다. 그 벨벳이 10년의 LG전자 스마트폰 잔혹사를 관통해 다시 등장했다.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