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어수선합니다만, 그럼에도 이사가 많은 봄철입니다. 네, 오늘은 이사와 관련된 임대차 계약서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임대차 계약시 한국의 계약서는 두세 장짜리로 간소한 편입니다.  과거에는 달랑 한 장짜리 계약서에 몇 가지 사항만을 기재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이동이 적고 신뢰와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로 계약내용을 상세히 장황하게 쓰는 것 자체가 자칫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고 체면을 깎는 것으로 인식되어 간단하게 한두 장짜리 계약서를 쓰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이후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부동산 투자가 허용되면서, 영-미계 투자자들은 50~100 페이지의 부동산 계약서를 들이밀며 계약을 요구하였습니다. 당시 한국 변호사들은 처음 접해보는 계약서의 두께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에서도 영-미계 스타일의 부동산 계약서 작성시 분쟁소지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을 가능한 자세하게 기재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임대차 계약을 할 때, 계약서 기재사항들과 관련하여 나라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전체 분량면에서, 한국은 달랑 2~3장 정도로 간소한 반면, 독일의 임대차 계약서는 10여장에 이르고 영국은 무려 30여장이나 됩니다. 한국의 임대차 계약서에는 부동산에 대한 토지와 건물의 면적과 용도, 계약내용, 시설물에 대한 포괄적 상태와 임대차물에 대한 훼손조항 등 중요한 몇 가지 사항만이 기재되어있고, 전기, 수도, 오물 등 제세공과금과 집의 운영과 관련된 부수적인 문제들은 임대관례에 따르거나 임대인과 임차인간의 구두로 확인 및 합의하는 과정을 통하여 결정합니다. 굳이 계약서에 이외의 세세한 사항까지 포함하지 않습니다.

독일의 임대차 계약서를 보면, 주거공간에 임대료 뿐만 아니라 차고와 정원 같은 부속시설에 대한 임대료, 전기료, 수도세와 관련된 조항들이 상세히 열거되어 있으며, 심지어 각종 문의 열쇠와 숫자, 애완동물 허가여부, 건물의 야간 잠금과 열쇠 소지자, 쓰레기 변기투기 금지 등을 포함한 거주자 주의사항이 세세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대략 10여 장짜리 계약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국의 임대차 계약서는 어떨까요? 계약서에는 일반적인 계약용어 해설에서부터 임대료, 전기, 상하수도 등 기본적인 사항과 함께 건물의 불법적 사용금지, 정원관리와 잡초제거, 사전협의 하지 않은 파충류 사육금지 등 임차인이 지켜야 하는 30여 가지 의무사항들과 임대인이 임차인과 협의한 사항들까지 포함되어 분량이 약 30여장에 달합니다. 보증금에 관련된 내용만 해도 무려 3장에 달하고, 요즈음 사회적 금연추세에 맞추어 입주자 뿐만 아니라 방문객들까지도 금연 의무규정이 부가되며 흡연피해 발생시 보상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대륙법(Continental law)’은 제정법 분야에 관련된 사건들을 두루 포섭하도록 폭넓게 해석하므로 계약서를 간단하게 작성하는 편입니다. 즉 한국과 독일의 대륙법계 국가들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발생할 수 있는 사건들을 폭넓게 해석할 수 있도록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입법을 추진합니다. 분쟁이 발생하면 관련 법률에 의거하여 해당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기에 계약문서에 아주 자세한 내용까지 기재하지 않는 편이죠.

하지만 ‘보통법(Common law)’을 따르는 영국에서는 제정된 법률이 법조문을 문자적 의미만큼 아주 좁게 해석하므로, 계약시 분쟁의 소지가 있는 내용은 가능한 자세하게 계약서에 표기를 합니다. 더불어, 주로 과거의 판례에 의거하여 분쟁을 해결하는데 분쟁 발생시 동일한 판례를 찾는 것이 쉽지 않거니와 당사자간 개별 계약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가급적 계약서에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자세하게 기재하여 분쟁요소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죠. 그래서 당연히 계약서가 두꺼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즈니스에서 법무적 사안은 직간접적으로 깊이 관여가 됩니다. 품격있는 글로벌 비즈니스는 상대방의 법과 제도를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