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10월 30일부터 한달 간 파주출판도시 내 각 출판사 북샵에서 ‘똥책축제’가 열려 화제가 됐다. 기대 이상의 반응으로 현재도 똥책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사진은 축제 당시 모습.


지금 주변에 어린 아이가 보인다면, 다가가서 ‘똥’이라는 말과 함께 이야기를 시도해보라. 유쾌하고 편한 대화뿐 아니라 금방 소통이 이뤄질 수 있음을 감히 장담한다. ‘똥’이란 단어는 아이들에게 이처럼 가깝고도 특별하다. 이유 불문하고 아이들이 편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소재라는 얘기다. 출판가에서 이런 소재를 활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직장인에게 ‘투자’, 대학생에게는 ‘취업’이 먹히는 아이템이라면, 아이들에게 언제나 통하는 매력적인 아이템은 바로 ‘똥’이다. 적어도 유아도서 부문에서 만큼은 ‘똥’ 색은 황금색으로 통한다.

소외된 것에 대한 애정 아이들에 강력한 매력
듣기만 해도 아이들을 자지러지게 만드는 강력한 바이러스 덕분에 유아용 도서 중에는 유독 똥을 소재로 다룬 책이 많다. 이런 책들은 대개 제목부터 ‘똥’을 노골적으로 등장시킨다. 국내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똥이라는 소재로 다뤄진 책은 약 100권 정도가 있는데, 그중 70% 이상이 유아용 도서”라고 설명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지난 1996년 발매 이후, 작년 누적판매 100만부를 돌파한 ‘강아지똥’(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 출판 이후 지금까지의 판매액이 무려 90억원을 넘을 정도니, 유아도서 시장의 ‘똥’의 경제적 가치를 알만하다. 이 시장에서 ‘똥’이 가진 매력은 단순히 돈만 벌어주는 얄팍함을 넘어선다.

소외된 것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담아내어, 어린이는 물론 어른이 읽어도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던 ‘강아지똥’을 비롯, ‘똥’을 전면에 내세우는 유아 도서는 대개 재미와 교훈을 적절히 배합한 권장도서로 통한다. ‘누가 내머리에 똥쌌어?’ ‘똥벼락’ 등 인기 서적이 10년 이상 장수하며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라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는 현재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 7권의 책을 권장도서 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문현주 연구원은 “똥을 소재로 한 책은 어린이들과 학부모들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일방적인 가르침을 넘어,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읽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명탄생 근원 알리기 ‘똥책 축제’도 열려
상황이 이러다보니, 소위 ‘똥책’만을 따로 모아놓은 행사가 벌어진 적도 있다. 지난 2010년 10월 30일부터 한달 간 파주출판도시 내 각 출판사 북샵에서 진행됐던 ‘똥책 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똥에 관한 책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와 특별할인코너는 물론, ‘흙으로 동물 똥 만들기’, ‘강아지 똥 캐릭터 만들기’, ‘인형극 똥장수 아들’ 등 똥과 관련된 다채로운 체험행사도 함께 진행돼 많은 참관객들의 큰 관심을 끌어내 화제가 됐다.

그저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이 아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똥이라는 사실을 고취시키고자 했던 이 행사는 독서진흥단체인 ‘파주책나라’에 의해 기획됐다. 파주책나라 이승규 기획팀장은 “소재가 주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과 참여도가 높아 연속성을 가지고 축제를 이어가고자 한다”면서 “‘똥책축제’의 기획의도를 살리기 위해 축제기간이 끝난 후에도 ‘똥책’들을 모아 전시, 할인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순수와 평등’의 상징 유아교육 핵심 아이템
유아도서 시장에서 ‘똥’의 가치가 이토록 높은 이유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아이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왜 ‘똥’에 까무러치는가?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문 연구원은 “솔직하기 때문”이라고 정리한다. 똥은 남녀노소 누구나 누는 것, 결국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고, 아이들은 이러한 유대적 공통점에 무의식적인 끌림을 느낀다는 것이다.

파주책나라의 이 팀장은 ‘순수함’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이 팀장은 “똥책 전시를 본 아이들의 첫 번째 반응은 탄성으로부터 시작되는 신기함과 순수함”이라면서 “동물똥 만들기 같은 체험프로그램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른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러한 아이들의 선호도는 똥이 가진 교육성과 맞물려 책이라는 플랫폼 안에서 최적화된다.

‘똥’ 자체가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중한 거름이 된다는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배변학습이 필요한 유아 시기와의 교육 연관성과 만족도도 높다는 평가다. 농협과 가족건강 365운동본부가 공동 발간한 ‘황금똥 시리즈’ 같은 경우, 이미 지난해 383개 학교에 6만 여부가 무상으로 배포돼 시범 적용되었으며, 일선 교육현장에서 높은 교육만족도를 보인 끝에 최근 서울시교육감 인정도서로 승인되기도 했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똥을 소재로 한 도서들은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동시에 교육도서, 창작동화 등 내용도 다양해 항상 유아용 문학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아이들에게만큼은 무언가 특별한 것 ‘똥’. 노골적이지만 유쾌하고, 더럽지만 흥미로운 소재인 ‘똥’을 대하는 아이들의 자세. 그 ‘즐길 줄’아는 순수함 덕에 ‘똥책’의 경제적 가치는 식을 줄 모른다.

‘똥’이 주는 메시지 건강·환경연계 변화 나설 때
이에 따라 똥과 관련된 책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기존 도서들의 명맥을 잇는 작품이 뜸해졌다고 전한다. 배변훈련용과 교훈 도서라는 두 가지의 뻔한 틀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것.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문 연구원은 “예로부터 농경국가였기 때문에 똥을 거름으로 쓴다는 것을 빗대는 내용이 많았고, 지금도 시중에는 이런 책이 많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은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에 교육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식습관의 변화로 현대인의 똥이 더 이상 거름이 될 수 없는 단순 폐기물에 불과하며, 휴지랑 섞여 내려가는 최근 화장실의 수세식 방식은 똥을 거름으로 추출하기도 힘들다는 것이 문 연구원의 지적이다. 때문에 단순히 ‘똥은 거름’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 환경문제나 건강관련 콘텐츠와 연결하는 등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박지현 기자 j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