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퓨터 화면에 바둑판처럼 배열된 친구들과 와인 한잔을 나누는 것은 집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재 현실을 부드럽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상 경험의 한 종류이다.     출처= Distant Job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집으로 피신하면서, 이전의 많은 대면적 상호작용들이 ‘가상’의 영역으로 옮겨갔다. 이번 주에 많은 가족과 친구들이 비디오를 통해 가상의 유월절 모임을 가졌고, 부활절 기념행사도 온라인 브런치, 온라인 예배, 심지어 부활절 달걀 찾기까지 가상으로 진행될 것이다.

코로나 확산 이후 재택근무에 돌입한 회사들은, 가상으로 행복한 시간(가상 비어퐁 게임 등)을 가지면서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려고 애쓰고 있고, 기업가들은 가상 이발소(DIY 헤어컷 라이브 가이드) 같은 새로운 온라인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프로풋볼리그(NFL)가 이달 말 계획하고 있는 가상 드래프트에는 어린이들도 참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소파에 편안히 앉아 가상 콘서트, 게임 나이트, 박물관 투어를 즐길 수 있다.

이와 같은 가상 천국은 우리가 나쁜 상황에서도 잘 대처할 수 있게 해주고,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동서고금의 격언을 다시 한번 증명시켜 준다. 또한 ‘가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떻게 계속 우리에게 새롭게 되새겨지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가상’이란 단어의 어원과 의미를 상세히 소개했다.

우리가 오늘날 가상이란 말의 유익함을 이해함에 따라, ‘가상’(virtual)이라는 말이 ‘덕목’(virtue)이라는 말과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라틴어 ‘비르투스’(virtus)는 ‘강함’ 또는 ‘훌륭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고, 형용사 ‘버튜얼리스’(virtualis)와 함께 쓰이면 사람과 물질에 내재된 자연적 특성을 의미한다.

14세기 후반에 ‘가상’이란 말이 영어로 사용되면서, 주로 식물이나 물약 같은 강력한 치유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지칭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다. 1603년 영국에 흑사병이 덮쳤을 때 토마스 데커와 토마스 미들턴이 공동으로 쓴 시적 소논문에서, 작가들은 '치료 주문'(呪文)으로 신성한 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근엄한 마법사들을 언급하며 그 마법사들이 "효과 빠른 ‘가상’의 치료약 속에서 밝게 빛난다"고 썼다.

이후 ‘가상’이란 말은, 물리적 성질과는 다른 개념인, 어떤 것의 본질이나 효과와 관련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철학자들은 물리적 형태가 없는 성질의 ‘가상적’ 존재를 묘사하기 위해 이 용어를 받아들였다. 영국의 신학자 대니얼 워터랜드는 1734년에 "선험적인 모든 증거는 실제적이거나 가상적인 원인에 의해 진행된다"고 간주했다. 과학자들도, 광학에서 ‘실제 이미지’가 거울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같이 빛의 광선만 방출되는 ‘가상’ 이미지와 구별되는 것처럼, 가상의 개념을 실제와 분리하기 시작했다.

▲ 출처= James Yang

컴퓨팅 시대 초기에 ‘가상’이란 말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자원'을 지칭하는 말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1959년부터 사용돼 온  ‘가상 메모리’(virtual memory)는 추가 메모리인 것처럼 가장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의 물리적 저장 공간을 확장시킨다. 그 다음으로는 ‘가상 기계’(virtual machine)란 말이 생겼는데, 가상 기계에서는 실제 컴퓨터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실행한다. 이어, 원격 사용자가 컴퓨터 네트워크에 직접 연결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 컴퓨팅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가상 사설 통신망’(virtual private networks, VPNs)이란 말이 등장했다.

1979년 IBM의 장난기 많은 직원 몇 명이 '개별 사용자가 자신만의 완전한 우주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상 우주 운영 체제’를 설명하는 농담조의 메모를 돌림으로써 ‘가상’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들은 한술 더 떠, 사용자가 ‘완전 비현실적인 우주로 이주’할 수 있는 ‘더 강력한 운영 체제’를 2001년까지 선보일 것을 약속하고 이를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1979년 당시만 해도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였던 이 개념이, 몰입형 VR 경험을 가능하게 해 주는 ‘가상 현실’ 헤드셋과 장갑의 발명 덕분에, 1990년대에 진짜와 똑같은 환경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실제로 구체화되었다. 곧 이어 진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처럼 가장하는 계란 모양의 전자 장난감 ‘가상 애완동물’ 타마고치 같은 각종 ‘가상’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최근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 같은 정교한 VR 시스템이 초기 약속들을 완벽하게 관철하기 시작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탐색하는 가상세계 전부가 몰입적인 환경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컴퓨터 화면에 바둑판처럼 배열된 친구들과 와인 한잔을 나누는 것은 집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재 현실을 부드럽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상 경험의 한 종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