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회원 산유국 연합체인 OPEC+가 하루 1000만배럴 감산에 합의했지만 국제유가는 9%대 하락세를 기록했다. 감산량이 코로나19로 인한 전세계 석유 수요 감소량의 3분의 1에 불과해 수요 급락에 대응하기 충분치 않았던 탓이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관세 부과 등 등 인위적인 감산카드에 따라 국제유가의 향방이 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9일(현지시간) CNBC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OPEC+는 이날 국제유가 급락 대응을 논의하는 화상회의에서 5월부터 최대 하루 1000만배럴 감산에 합의했다. 1000만배럴은 하루 원류 소비량인 1억배럴의 약10% 수준이다.  

기간별 하루 감산량을 보면 5~6월 1000만배럴, 7월에서 연말까진 800만배럴을 감축한다. 또한 2021년 1월부터 2022년 4월까지 600만배럴을 감산한다.

앞서 외신들은 총 감산량이 일평균 최대 2000만배럴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선에서 20달러로 급락한지 한달여만이다. 이 소식에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WTI(서부 텍사스산 원유)는 장중 한때 12%나 급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감산량이 1000만배럴 이하에 그칠 것으로 알려지면서 WTI는 급락세로 돌아섰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2.33달러(9.3%) 내린 22.76달러에 마감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도 6월물 브렌트유는 1.36달러(4.1%)하락한 31.48달러로 장을 마쳤다.

과잉공급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역부족이란 우려가 반영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락세를 면치 못한 모양새다. 이날 감산 규모는 사상 최대로, 기간도 2년으로 초장기였지만 시장이 기대하는 감산량에는 미치지 못했다. 전세계 석유 수요 감소량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산유국들이 코로나19로 촉발된 원유수요 감소와 취약해진 시장 환경, 변동성 축소를 위해 최소 수준의 감산 합의를 한 것으로 보고있다. 여기에 미 에너지정보청(EIA)이 현재 유가 수준에서 미국의 원유 생산랑이 최대 200만배럴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데다, 각국의 전략비축유 확대 등을 고려하면 2분기까지 원유 수급밸런스에 안정적으로 도달할 것으로 전망한 것도 반영됐다. 

실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글로벌 원유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든 상황이다. 석유 트레이딩 회사 트라피구라는 각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자택대피령 등을 내림에 따라 이달 일일 글로벌 원유 수요가 300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OPEC+의 추가 감산 합의가 깨지면서 공급은 늘어났다. 시작은 러시아였다. 지난달 5일 러시아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 축소에 대응해 원유를 감산하자는 OPEC의 제안을 거부하고 증산을 선언한 것이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도 산유량을 늘이겠다고 치킨게임을 벌이면서 국제유가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루 970만배럴을 생산하던 사우디아라비아는 결국 이달부터 하루 최대 1230만배럴까지 늘렸다. 이어 아랍에미리트와 이라크 등 산유국도 잇따라 증산을 발표했다. 

설상가상으로 원유와 정제유 사이의 가격차를 뜻하는 정제마진 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정유사들도 원유 확보에 나서지 않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스웨덴 SEB마켓츠의 브잔 쉴드롭 애널리스트는 “곳곳의 정유사들이 원유를 정제할 때마다 손해를 보거나, 더는 정제유를 보관할 곳을 확보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 결과 미국 일부 지역 원유 생산업체들은 원유 배럴당 1달러에 거래하는 곳까지 등장했다. 수요는 늘지 않는데 공급은 지속되면 원유 가격이 급락세를 이어가는 형국이다. 

당초 OPEC+는 사우디와 러시아의 의견 차이로 감산 연장 합의에 실패했지만 미국 셰일석유 업계의 피해를 우려한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으로 협상 재개에 성공했다. 이에 캐나다, 노르웨이, 미국 등이 인위적인 감산을 위한 어떤 묘책을 내놓는 가에 따라 국제유가의 향방이 정해질 전망이다. 

미국은 시장 논리에 따라 감산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며, 원유 생산업체에 감축을 강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유가 급락 대응책으로 관세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급 과잉으로 촉발된 유가 폭락 사태의 해결책으로 수입산 원유에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유가 문제를 논의한 공화당 소속 케빈 크래머 상원 의원은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도구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10일(현지시간) 사우디 주최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에너지장관 특별 화상회의가 예정돼 있어 미국 등 다른 주요 산유국이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백영찬 KB증권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 하락으로 미국 셰일기업의 자연스러운 원유 감산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언급하며 인위적인 감산에 부정적”이라며 “향후 국제유가의 방향은 미국 셰일산업의 인위적인 원유감산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셰일산업 보호를 위해서는 WTI 가격상승이 필수적”이라며 “진통은 있겠지만 국제유가 상승을 위해 미국 또한 일정 규모의 인위적인 감산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