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중공업 트랜스퍼 크레인. 출처=두산중공업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두산중공업의 자구계획안 제출이 임박한 가운데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오너일가가 어떤 묘수를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1조원의 자금을 수혈해준 채권단이 자회사 매각, 사채 출연 등 대주주의 고통 분담을 언급하며 높은 수위의 압박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시장에서는 오너가의 사재출연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두산그룹이 최소 2개 이상의 자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1조원 수혈’ 두산重, 추가 지원엔 고강도 자구안 내놔야

9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조만간 채권단인 KDB산업은행·수출입은행에 자구안을 마련해 제출할 계획이다. 자구안에는 인력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 방안과 비핵심 사업의 매각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진다. 

채권단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이 빠른 시일내 자구안을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대주주의 책임 있는 계획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채권단은 자금 지원에 앞서 이달 말까지 두산중공업 정밀 실사를 끝낸 뒤 경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두산중공업은 자구안 내용과 관련해 별다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돈을 빌리는 입장인 만큼 채권단을 의식해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두산중공업은 유동성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의 총차입금/EBITDA 지표는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2배를 뛰어넘었다. 지난해 말 두산중공업의 실질재무부담은 6조1000억원 수준에 달한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이 4조2000억원에 달하는데다 두산건설에 대한 추가지원도 불가피해 재무부담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부담을 견디지 못한 두산중공업은 결국 지난달 27일 ㈜두산 및 주요 계열사 지분 등을 대출 담보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원의 한도 대출을 받았다. 앞서 2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도 불구 재무부담을 벗어날 수 없었다. 

두 은행이 자금 추가 지원 여부는 두산중공업의 자구 노력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한만큼 고강도 자구안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두산그룹은 수년간 자구노력을 지속해왔다. 유동성 부담이 고조된 2019년 이후 대규모 유상증자, 대내외 자산매각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그룹의 재무위험은 지속되고 있다. 

▲ 출처=한국신용평가

자구안, 어떤 내용 담길까?

시장에서 나오는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 정도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양대 신사업을 담당하는 두산솔루스와 두산퓨얼셀 매각설이다. 알짜배기 사업인데다 두산그룹 지분이 높아 매각 1순위로 거론된다. 

전기차 등 소재사업을 영위하는 두산솔루스는 지난해 10월 두산이 인적분할해 설립한 회사다. 연료전지 사업을 맡은 두산퓨얼셀과 함께 두산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회사로 주목받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두산솔루스의 OLED 소재, 동박, 전지박 사업 영업가치는 9615억원수준으로 추정된다. 

두산솔루스는 지주회사 ㈜두산이 보통주 13.94%, 우선주 2.84%를 보유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포함하면 보통주 50.48%, 우선주 11.04%다. 두산퓨얼셀은 두산이 보통주 18.05%, 우선주 12.47%를 갖고 있으며 특수관계인까지 합치면 보통주 65.08%, 우선주 48.34%로 늘어난다.

사업 성장성이 큰 만큼 매각 시 경영권 프리미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솔루스와 푸얼셀의 매각이 현실화되는 경우 두산그룹은 신사업을 포기해야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양사는 두산그룹이 신사업을 위해 야심차게 출범시킨 계열사다. 9일 종가 기준 두산솔루스 시가총액은 1조446억원, 두산퓨얼셀은 4084억원에 달한다.

중공업과 건설의 비우호적인 영업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미래 먹거리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면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겠지만 성장 동력까지 잃는 경우 장기적으로 그룹사에 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배구조 개편도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두산중공업의 알짜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을 분리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두산중공업을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리한 다음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두산인프라코어·두산밥캣 지분을 투자회사에 두고 투자회사를 (주)두산과 합병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두산중공업 밑에는 100% 자회사인 두산건설만 남게 된다. 

(주)두산→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두산밥캣으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구조를 단절하면 두산중공업의 재무리스크가 계열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고, 우량 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을 활용한 자금 조달도 원활해질 수 있다. 

이 같은 방안이 부각되고 있는 데는 우선순위로 꼽히던 두산건설 매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 따른 것이다. 두산건설의 지난해 말 별도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319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부채 총계는 1조8102억원에 이르는 등 재무구조가 취약하다. 여기에 건설 업황마저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원매자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두산중공업 내 담수화 플랜트 및 수처리 설비를 담당하는 WATER 부문의 분리 매각 가능성도 점쳐진다. 바닷물을 생활용수나 공업용수로 바꾸는 담수화 플랜트 사업은 두산중공업이 전 세계 1위의 기술경쟁력을 자랑하는 부분이다. 

특히, 오일머니가 풍부한 중동 시장에서 수요가 탄탄해 시장에서 비교적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만큼 채권단에 두산그룹의 자구 의지에 대한 높은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면세점 등 유통사업을 과감히 접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두산은 지난해 면세점 사업에서 손을 뗀 바 있다. 핵심 사업보다 비핵심 계열사를 매각하는 경우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주사 두산의 유통 사업은 동대문 두타몰이 유일하다. 

업계 관계자는 “채권단 입장에서는 자금을 지원 받은 두산중공업의 정상화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별도의 재무 부담이 없는 사업 분할 방안이 유력하다”며 “다만 분할 이후 두산중공업은 수주 산업의 특성상 예상되는 매출액이 정해져 있는 만큼, 영업 정상화를 위해 비용 절감 방안이 수반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익수 한국신용평가 선임애널리스트는 “두산중공업이 2021년 구조조정 효과에도 수익창출력의 10배를 상회하는 과중한 재무부담이 지속될 것”이라며 “등급 하향압력 완화와 유동성 대응을 위해서 최소 1조5000억원의 차입금 감축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