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대한항공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올 것이 왔다. 업계 1위인 대한항공이 코로나19발 위기를 견디지 못해 사상 초유의 대규모 휴직을 선언 한 것. 대한항공의 결정에 항공업계가 술렁이는 가운데 조원태 회장이 어떤 묘책을 꺼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한항공, 사상 초유의 휴직 선포
 
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오는 16일부터 10월 15일까지 6개월간 직원 휴업을 실시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대한항공은 전체 여객기의 90% 이상이 방치될 정도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6개월간 진행되는 직원 휴업은 국내지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다. 부서별 필수인력을 제외한 여유인력이 모두 휴업을 실시한다. 휴업 규모는 전체 직원의 70%를 넘는 1만3000여명 수준에 달한다. 휴업 시 급여는 통상임금 수준에서 지급된다.

대한항공이 이 같은 대규모 장기간 휴직을 선언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대한항공은 최악의 위기로 꼽혔던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단기 휴직을 실시한 적이 있지만 이는 2주에 불과했다. 

아울러 지난해 보이콧 재팬 영향으로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하자 그해 11월 비용절감 방안으로 단기 희망휴직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희망휴직제의 대상은 근속 만 2년 이상의 휴직 희망 직원이었으며 인력 운영 측면을 감안해 운항승무원, 해외 주재원, 국내·외 파견자, 해외 현지직원은 신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기간도 최대 3개월에 불과했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미 경영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전사적 대응체제를 구축하고 이달부터 경영진의 월 급여를 30~50%씩 반납한 상황이다. 

대한항공 노조도 이날 성명문을 통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시아, 미주, 유럽 등 전 세계 하늘길이 막혀 모든 항공사가 존폐 기로에 서있다”면서 “이번 위기는 자체 노력으로 극복했던 과거 사례와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노조는 “현재 노선의 90% 이상을 운항할 수 없는 상황이다. 회사는 자산과 채권발행으로 유동성을 확보한다고 하지만, 이미 다수는 직장을 잃었거나 그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범정부차원의 지원을 요청한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서 대한항공의 올해 투자 계획 등도 모두 미궁에 빠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올해 737맥스의 제재가 풀리면 들여오려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기재 도입 계획 변경과 관련해서 아직 논의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어디까지 몰렸나?

대한항공은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외교갈등 등 대외악재에도 불구하고 항공사들 중에 유일하게 흑자를 거두는 등 선방한 바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추측된다. 국적사 중 기초체력이 가장 탄탄한 것으로 알려진 대한항공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해 대한항공의 핵심 사업인 여객 매출을 보면 국제선 7조2813억원, 국내선 4862억원을 기록했다. 월평균으로 보면 국제선 6068억원, 국내선 405억원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월 이후 여객 매출은 사실상 제로 수준까지 하락했다. 주력인 국제선 수는 5분의 1가량 줄었다. 항공화물이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지만 여객 매출을 대체하긴 무리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올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 2조6827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년 동기 대비 14.5% 줄어든 수치다. 영업손실 규모는 995억원으로 7년만에 적자전환할 것으로 예상됐다. 대한항공은 앞서 2013년 글로벌 경기침체로 여객과 화물부문 수익이 동반 감소해 5년만에 적자전환 한 바 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금새 탈출했다.

여기에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대한항공의 회사채 규모는 약 5000억원에 달한다. 연내 차환하거나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도 총 4조5000억원 이상이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지난달 6000억원 규모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을 확정했지만, 이것으로 악화된 재무환경을 버티기엔 무리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부채비율도 급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KB증권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말 867.6%에 불과했던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이 올 1분기 말 기준 1101%까지 치솟았을 것으로 전망했다. 영업손익의 악화와 외화환산손실 영향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항공사의 부채비율이 수천 퍼센트 수준으로 올라가면 기존 회사채나 항공권 판매수익을 기초자산으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의 조기상환 조건이 발동될 수 있다. 일례로 대한항공이 지난 2월 발행한 회사채의 경우 부채비율 1500%를 조기상환 발동 조건으로 삼고 있다. 트리거가 작동하는 경우 대한항공은 안 그래도 어려운 상황에서 직격탄을 맞게 된다. 

“고강도 자구책 이어질 것”… 무급휴직·구조조정 등 카드 꺼낼까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의 고강도 자구책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조원태 회장이 한진칼 지분 전쟁에서 1차 승리를 거둔 직후 대한항공 경쟁력 강화에 나서겠다 강조한 만큼 자구안의 수위가 더욱 높아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우선, 가장 유력한 것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윌셔그랜드센터와 그랜드 하얏트 인천 호텔 등 유휴자산 매각이다. 

앞서 한진칼과 대한항공은 지난 2월 각각 이사회를 열고 ▲서울 종로구 송현동 용지(약 3만7000㎡) ▲인천 중구 을왕동 왕산레저개발 지분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용지(약 6만5000㎡) 매각을 결정지었다. 

이에 따라 한진그룹은 현재 매각준비를 위한 절차에 들어간 상황이다. 그러나 계획한 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와 관련해 매입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금액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불발됐다. 이에 한진그룹은 매각주관사를 통해 매각하는 기존 매각절차를 밟고 있다.

조원태 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윌셔그랜드센터 호텔과 그랜드 하얏트 인천 호텔 등의 사업성도 재검토하겠다며 매각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이다. 이 밖에 업계에서는 하와이 와이키키 리조트호텔과 제주 KAL호텔, 서귀포 KAL호텔 등의 매각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조 회장이 유상증자 카드를 꺼내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금창출능력이 저하된 대한항공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않는 경우 부채비율이 급등해 충분한 외부 자금 확보에 불리할 수 있어서다. 다만, 최대주주인 한진칼이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하는데 자금 여력이 좋지 않아 재무적투자자 확보가 시급하다. 

이 밖에 최악의 경우 무급휴직, 구조조정 등 초고강도 자구책을 꺼내들 수 있다는 이야기도 오가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적 1위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대규모 휴업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점에서 업계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알 수 있다”며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이 이번 휴직카드를 시작으로 고강도 구조조정을 펼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휴자산 매각이 빨리 이뤄지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