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코로나19의 창궐로 우리가 알고있던 세상은 크게 변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변화의 파괴력이 장기간 이어져 주변의 모든 것을 바꾸는 폭풍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 창출을 위한 하나의 실험으로 남을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 사진=박재성 기자

공포는 인포데믹을 낳는다

정치 및 경제의 측면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권력의 힘은 강해지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현실이 됐다. 여기에 글로벌 공조를 바탕으로 하는 전격적인 대응도 효과적으로 펼쳐지지 못하는 한편, 사회적 충격의 일상화가 시작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펼쳐졌다는 뜻이다.

그 불확실성의 시대를 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무엇일까? 바로 공포다. 사업이 어려워지고 자금줄이 말랐다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으나, 공포 그 자체가 시장의 앞을 가로막는 순간 우리는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쓰러지기 때문이다.

난세가 시작되면 창궐하는 가짜뉴스, 인포데믹(infodemic, 정보 감염병)이 판을 치는 이유다. 사람들의 막연한 공포를 먹고 자라는 가짜뉴스 및 인포데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옆에서 악마의 웃음을 흘리고 있다.

단적인 사례가 현 정부에 대한 논란을 목적으로 벌어지는 가짜뉴스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태의 본질을 뒤틀어 현재의 상황을 필요이상 부정적으로 묘사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한 무분별한 증오를 부추겨 중국과 공조하려는 현 정부의 행보를 퇴색시키려는 '작업'도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일부 언론까지 뛰어드는 한편 소위 유명인들도 SNS를 통해 이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SNS에서 논란이 된 '기획재정부 주관 제약회사 사장들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회의 요약 내용'이라는 루머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곧바로 폐를 손상시키고 정부가 사실상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내용인 가운데 이는 가짜뉴스로 판명났다.

인포데믹 현상도 심각하다. 대규모 확진자를 낸 성남시 은혜의 강 교회에서 벌어진 사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코로나19 소독을 위해 이달 초 예배 참석자들의 입에 소금물을 분무기로 뿌렸으나, 이는 오히려 집단감염의 단초가 되고 말았다. 잘못된 정보, 즉 인포데믹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 인천공항이 텅 비어있다. 사진=박재성 기자

공포를 넘어야

가짜뉴스와 인포데믹이 판을 치고, 사람들이 공포에 물들어 ‘패닉’에 빠진 것이 바로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다.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바이오 헬스 사업이 발전하며 정치적 힘의 응축이 벌어지는 한편 세계화 시대가 무너지는 현상의 기저에는 모두 ‘공포’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영위한 모든 세계를 무너트리기에 손색이 없다. 즉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는, 코로나19라는 공포를 만난 이후의 시대로 봐야 한다.

이 공포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백신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고 있는 미국 이노비오(Inovio) 제약사가 코로나19 DNA 백신 임상 1상에 돌입하는 한편 이 시간에도 많은 제약사들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나서는 이유다. 빌 게이츠 창업자는 지난 5일 폭스 비즈니스 방송과 인터뷰에서 “백신이 전 세계에 나오기 전까지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다만 방역적, 치료적 측면에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해 공포를 걷어내는 한편 정치 및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대응방안도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 정부의 권력을 강화하거나, 공포에 질려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의존하는 자세를 버리고 이 최악의 사태를 떨쳐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1933년 2월 27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국회의사당이 불타고 모두가 공포에 질렸을 때, 푸른 눈동자를 가진 열정적인 정치인이 “공산주의자들의 테러로 국회의사당이 공격당했다”며 주변을 선동했을 때, 누군가 그 공포를 극복하고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세계를 끔찍한 전쟁의 포화속으로 밀어넣은 2차 세계 대전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칸토 시즈오카 야마나시 지방에서 무려 40만 명이 사망했던 관동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처참한 폐허의 현장에서 분노한 일본인들이 약탈과 방화를 일삼으며 통제불능으로 치달았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헛소문을 퍼졌을 때 누군가 그 공포를 극복하고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았을 수 있다.

결국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는 공포 이후의 시대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세상을 살게 될 것인가. 아직은 변화의 시작이며, 미래는 우리의 결단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