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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퍼 오래하고 싶다면 연애를 하라여민선의 골프 뒷담화 18 프로골퍼와 사랑의 함수관계

중요한 골프대회를 앞두고 여자친구를 찾아 화제가 된 골퍼 로리맥길로이(오른쪽)와 그의 연인 캐롤린 워즈니아키.

혼다 클래식에서 우승의 트로피를 획득하고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선 최고의 골퍼 로리 맥길로이(Rory McIlroy, 북아일랜드) 선수가 시합은 뒷전에 두고 2000km를 날아가 여자친구와 핑크빛 연애를 하고 돌아왔다는 뉴스를 관심있게 본 기억이 난다.

월드 골프 챔피언십 시리즈’를 코 앞에 둔 선수가 시합보다 연애를 선택한 것에 대해 언론들은 여러가지 반응을 나타냈다. 재기를 노리는 타이거 우즈와 물 오른 루크 도널드 선수가 바짝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자친구를 찾을 여유가 선수에게 과연 있는지? 그렇게 방심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과 추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여유’ 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에너지 충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일반 골퍼가 아닌 프로 골퍼의 일상 및 일년 스케줄을 알고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펼쳐지는 시합 일정 속에는 선수들이 외골수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숨어있다. 시합 라운딩이 보통 4~5시간이 걸린다고 볼 때, 준비 스트레칭과 연습공 치기, 퍼팅연습과 식사시간을 포함하면 8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물론 라운딩이 끝나도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또 연습을 하거나 근육 트레이닝을 한다.

게다가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선수들은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 8~9시간 수면을 취한다고 볼 때 선수는 개인적인 시간을 낼 수도 없고 다른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좀처럼 주워지지 않는다. 많은 선수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거나 냉정하게 보일만큼 여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건방지다’ 혹은 ‘뜨고나니 사람이 달라졌다’ 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사실은 이야기가 길어지거나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에 오늘 해야 하는 운동을 못하거나 연습시간을 못 채우면 선수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는 측면이 강하다.

비가 와서 시합이 중단되거나 간혹 취소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가 바로 선수들이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날이다. 다만 그런 날은 그리 많지 않다. (마치 직장인들이 연말을 낀 공휴일을 기다리는 것처럼) 어쩌다가 겨우 시간이 나면 선수들끼리 식사를 하거나 영화나, 쇼핑을 잠깐 즐기는 것이 고작이다.

연인이 있다고 해도 일년에 몇 번밖에 볼 수 없는 상대와 누가 데이트를 하고 싶겠는가? 연인이나 식구들이 함께 시합에 와서 관람을 할 수 있겠지만 매번 그럴 수도 없고 시합 중이나 연습 중에는 전화통화도 안되기 때문에 골프선수와의 데이트는 피곤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피 끓는 청춘인 경우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꽤 많은 운동선수들이 결혼이 늦거나 독신인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가 바로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이거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만 해도 결혼 한지 얼마 안돼 혼자 투어를 떠날 수 밖에 없었는데 시즌 중에 남편을 3개월 정도만 만날 수 있었고, 나머지는 혼자 여행을 하면서 보내야 했다. 그때는 성적이 나야 했기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운동하느라 그리움이란 단어는 사치처럼 느껴졌지만 사실 그럴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시즌이 모두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날 남편이 비행장에 마중을 나왔는데 당시 너무나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공항에 내린 필자는 남편을 찾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때 어떤 키 큰 남자가 카라멜 애플(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 디저트) 들고 서있는 모습이 들어 왔다. 속으로 ‘저 남잔 뭐야? 멀대같은 남자가 웬 카라멜 애플을 들고 있지?’ 란 생각을 하는 찰나, 자세히 보니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었다.

몇 개월씩 만나지 못한 우리는 어색하기도 했고 반갑기도 했는데 단번에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 나 역시 스스로도 황당해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기만 하다. 그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남편은 내 손을 잡으며 " 집이 따뜻하다" 라는 말을 했는데 그 때는 진정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난 이제야 선수였던 나보다도 더 힘들었던 사람은 바로 남편이었음을 알게돼 진심으로 미안하고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미국 선수 중에 필자가 아주 존경하는 R선수는 결혼을 세 번 했다. 성격도 좋고 인간미가 철철넘쳤던 R선수가 무슨 이유로 결별을 했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식사 중에 우연히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가정이 있는 나로서는 집을 매번 비우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있고 학교갈 때도 챙겨주어야 하는것들. 그리고 엄마로서 해 나가야 하는 부분을 채우기가 너무 힘들다’ 고 그녀는 고충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녀는 다음 해에 은퇴를 선언했다.

일반적으로 선수가 나이가 들면 운동을 못하거나 체력이 떨어져 선수생활을 포기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골프라는 운동은 다른 스포츠와 달라 힘도 중요하겠지만 구력과 노련함이 더욱 필요하기에 연륜이 쌓일수록 유리해진다고 보면 틀림없다. 선수가 은퇴를 한다면 부상을 당해서나 회복이 안 될때, 혹은 스폰서가 없을 때. 즉 돈이 떨어지면 은퇴 아닌 은퇴를 하게 된다. 가정이 있는 선수 중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골프를 과감히 접는 경우에도 은퇴를 한다.

과거 운동에만 전념해야 한다며 오직 골프훈련에만 전념했던 선수들을 보며 요즘은 오히려 그들의 선수생활이 짧아지는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느낀다. 간혹 잘나가던 선수가 ‘남차친구나 여자친구가 생겨 연애하느라 성적이 낮다’는 어처구니 없는 기사를 보면 더욱 그렇다. 선수에게 슬럼프란 이성친구가 생겨서가 아니다. 똑같은 일상이 지겹도록 반복될 때, 기계형 인간이 되었을 때가 바로 슬럼프의 시작이다.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돌아오는 허탈감과 목표를 채운 뒤 따라오는 허무함에 대해 이야기 하는 선수가 있다. 시즌이 끝나고 아리조나로 그친구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저녁을 만들어 먹기로 해 시장을 가기로 했는데 차를 꺼내기 위해 차고 문을 연 순간 필자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 차고 안에 거미줄이 가득한 채로 그녀의 우승 트로피들이 널려있는 것이 아닌가! 당황해하는 필자에게 그 유명 골퍼는 이렇게 소근거렸다. "사랑하는 남자만 찾을수 있다면 이 트로피는 다 버릴수 있다"고.

우승 경험이 없는 필자에게는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는 혼자였고 외롭다는 점이 너무나 절절이 느껴졌다는 점이다. 운동에 미쳐 연애 한번 못한 채 마흔을 훌쩍 넘긴 소중한 친구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산다. 허무함이 이런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그 선수를 오랫동안 필드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지름길’ 이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선수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 오르기 위해 충전해야 하는 에너지는 너무나도 평범한 것들이다. 식구들과 식사를 하고 친구들과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또 맥주 한잔 하면서 치킨을 먹고 이성 친구를 만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생명력이 길고 성적이 좋은 선수생활을 만끽하게 될 것이라 필자는 굳게 믿는다.

여민선 프로 minnywear@gmail.com
LPGA멤버, KLPGA정회원, 라이프스포츠클럽 골프 제너럴 매니저, 방송인


최원영 기자 uni3542@


최원영 기자  |  uni3542@econovill.com  |  승인 2012.03.15  13: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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