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의 항공우주 부품기업 에니움 엔지니어링(Aenium Engineering)은 코로나 대유행 기간 동안 마스크 필터 제작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에니움 엔지니어링이 만든 마스크 필터.     출처= Aenium Engineering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3D 프린팅 전문 다국적 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인한 필수 의료 장비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최첨단 3-D 프린터를 재프로그래밍하고 있다. .

지멘스(Siemens AG), 제너럴 일렉트릭(GE) 같은 산업 대기업, 휴렛패커드(Hewlett-Packard) 같은 기술회사, 그리고 스페인의 에니움 엔지니어링(Aenium Engineering) 같은 3D 프린터 전문기업들이 병원과 의료 종사자들을 돕기 위해 그들의 엔지니어링과 제조 능력을 바꾸고 있다.

3D 프린팅의 선구자인 독일의 EOS GmbH는 전세계 3D 프린팅 업계의 대 코로나 전쟁 활약상을 담은 ‘코로나와의 3D 싸움’(3DAgainstCorona)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현지시간) 이 웹사이트에 소개된 사례들을 소개했다. .

항공우주 부품을 만드는 스페인의 에니움 엔지니어링은 지난 2주 동안 회사의 3D프린터를 의료용 마스크 필수품인 필터 생산 시설로 전환했다. 이 회사는 초경량 금속 부품을 만드는 레이저 기술을 사용해 의료용 폴리머로 만든 4중 필터를 개발했다. 이 필터는 현재 HP가 개발하고 있는 3D 프린팅 마스크나 기존 인공호흡기에 삽입할 수 있다.

현재 인공호흡기 같은 의료 장비의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어서 많은 산업 회사들이 인공호흡기 생산에 뛰어들고 있다. 3-D 프린터를 사용하면 한 공장에서 일련의 시설을 갖추고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곳 근처에서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 연속적인 층을 쌓아 제품을 만드는 3D 프린팅 기술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거의 모든 형태를 만들 수 있다. 어디서든 디지털 청사진만 보내면 병원 근처에 3D 프린터를 설치하고 물건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물류비 부담도 덜 수 있다.

휴렛패커드(HP)는 미국과 스페인의 3D프린팅 시설을 이용해 안면 마스크 조절장치, 안면 차광막 등의 의료 장비를 만들고 있다. 회사는 먼저 고객사인, 3D 프린터로 치과용 금형을 만드는 회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의 시설은 이미 미 식품의약국으로부터 의료용 장비를 만들 수 있는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가장 빨리 동참할 수 있었다.

세계 최대 의료기기 생산업체이자 첨단 제조분야의 선두주자인 독일의 지멘스도 부족한 의료 장비 제작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자동차 제조업체를 포함한 자사의 3D 프린팅 고객으로 구성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동했다. 또 미국과 유럽에 퍼져있는 자사 소유의 3D 프린터 100대도 기꺼이 투입했다. GE와 보잉도 3D 프린터로 안면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이번 캠페인을 위해 회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유럽 공작기계산업협회(CECIMO)의 필리프 기르츠 회장은 “지금이 3-D 프린팅 업계의 큰 기회"라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우리는 모든 것을 그 물건이 필요한 현장 가까이에서 맞춤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3D 프린팅 선구자인 벨기에의 머티리얼라이즈(Materialise)는 사람들이 손을 사용하지 않고 문을 열 수 있는 도어 손잡이 부착물을 설계했다.      출처= Materialise

그러나 3D 프린터의 적층 생산(additive manufacturing) 방식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으며, 특정 용도에 따라 재료와 생산 방법이 조절되어야 한다. 특히 호흡기 장비의 경우, 건강 요건이 까다롭다. 3D 프린팅에서 발생한 파편들이 제품에 묻거나 다른 위험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

3D 프린팅 기술은 또 전통적인 사출성형 양산 방식보다 생산 속도가 느리며 비용이 더 많이 들 수 있다. 평상 시에는 필터, 면봉, 보호 마스크 같은 일회용품을 만드는데 3D프린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같이 절대 부족 상황에서 빈틈을 메울 뿐이다.

게다가 3D 프린팅 업계는 의료기기 생산에 익숙하지 않아 의료기기에 필요한 인증 취득도 3D 프린팅 업계의 도전이다. 3D 프린터 장비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 병원을 돕고 싶어도 함부로 병원이 필요로 하는 의료 장비를 만들어 줄 수 없다.

물론 엄격한 인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장비도 있다. 3-D 프린터와 관련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벨기에의 머티리얼라이즈(Materialise NV)는, 최근 손을 사용하지 않고 문을 열 수 있는 핸들 부착 장치에 대한 무료 디자인을 온라인에 게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본사를 두고 있는 3D 프린팅 회사 스트라타시스(Stratasys Ltd.)의 미국 사업본부장 스캇 드리카키스는 "좀 더 전문지식이 필요한 부품에 대해서 대형 3D 프린팅 회사들이 의료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매일 소통하며 디자인과 테스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업체들 사이에 이렇게 치열한 협력이 이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에니움 엔지니어링은 N95 마스크 표준에 따라 인증된 필터를 만들기 위해 HP, EOS같은 대기업들과 협력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자체 개발한 필터와 디자인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기계를 가진 다른 모든 3D 프린팅 회사들은 이 회사의 도움을 받아 다공성 플라스틱 디스크를 만들 수 있다.

에니움의 생산 엔지니어링 매니저 호세 미구엘 암푸디아는 "우리는 우리 기술을 의료 분야에 적용할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진단 키트에 사용하기 위한 비말채취용 면봉의 부족은 하버드대학교 킷 파커 교수와 이탈리아의 금속 3D 프린팅 전문기업 데스크탑 메탈(Desktop Metal)의 리크 풀롭 CEO와의 협력을 가져왔다.

빠른 해결책을 찾아 나선 두 사람은 폼랩(Formlabs)과 OPT인더스트리즈(OPT Industries) 등 산업용 3D 프린팅 회사들에게 3D 프린터로 면봉을 생산할 수 있는지 타진했다. 그들은 코로나 감염 환자의 점액 샘플을 채취하기 위해 면봉 구조를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목화 대신 부드러운 플라스틱 털 구조로 대체해야 했다. FDA는 최근 이 설계를 승인했고 즉시 생산이 시작되었다.

풀롭 CEO는 "만약 평상시에 누군가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1주일 안에 FDA의 승인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수백만 달러를 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일을 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