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집권 경제학> 한성안 지음, 생각의길 펴냄.

한국 경제는 선진국의 제도와 해법을 모방 발전할 수 있는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애덤 스미스, 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필요한 답을 주지 못한다. 진보진영도 신고전주의 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 사이를 하염없이 오가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렇게 판단한다.

이에 저자는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주의경제학을 비판하고 마르크스 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제도경제학을 대안으로 내세운다. 제도경제학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저자의 경험과 사유를 결합한 경제학 교과서를 썼다. 근 20년의 연구성과를 담았다.

이 책은 “진보의 집권을 명확한 목표로 삼은 경제학을 의도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진영이익을 위해서라면 견강부회를 마다하지 않는 폴리페서들의 저작물과는 궤를 달리 한다. 저자는 “가치편향적 진영논리는 과학에 근거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책에는 주요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쟁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진보진영에 지적 기반을 제공하려는 의도가 확연하다. 일반적인 경제학서와는 달리, 보수진영의 비판을 받는 소득주도 성장, 부동산 문제, 최저임금 등 현 정부 주요 경제정책들의 방어 논리들이 치밀하게 정리되어 있다.

어찌 보면, 이 책은 보수 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논쟁의 운동장을 바로 세우려는 학자적 열정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진보와 보수 양측에 대한 주문에서도 엿보인다. 저자는 진보진영에는 “이제 같은 편끼리 뒷간에 옹기종기 모여 비난말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무익하고, 끝도 없는 방황을 끝내고, 보수지식인과 정치인에게 용감히 대응하고 설득하며 계몽할 때”라고 강조한다.

보수진영에도 말한다. “선진국 진보경제학의 발전현황과 진보정당의 정책방향과 그 수단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보수세력도 읽기를 권한다. 그래야 소득주도성장론을 '듣보잡'이라는 망발을 일삼는, 그 무식한 수꼴문화를 면할 수 있다. 보수도 좀 진보하자.”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진보진영은 시장에 대한 외부 주체의 개입을 포기하면 안 된다. 그것은 불안정, 불평등, 불균형, 불의를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실패를 외면해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보수진영처럼 규제완화로 회귀해서도 안 된다. 정부의 실패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시민운동으로 보완될 수 있다.’

‘최저임금이 인상됨으로써 고용이 증가하지 않고 경제 역시 크게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학생들은 마음의 여유를 얻어 청춘을 노래할 수 있고, 가난한 가장은 조촐한 외식으로 자식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으리라! 진보진영은 분배가 유발하는 이런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효과, 곧 ‘비물질적’ 효과를 망각하면 안 된다.’

‘모든 경제학파는 과학(Science)으로 인정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은 경제학모델에서 인문학을 제거하는 대신 그 공간을 자연과학으로 채우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적 모습을 지우고 그 흔적을 제거하려 온 힘을 다한다. 그 결과 행위자가 없어진다. (중략) 인문학의 빈곤은 ‘사람 없는’ 경제학, 사람을 혐오하는 경제학을 만든다.’

경제학이라 쉽지는 않아도 최대한 쉽게 읽히도록 씌여 있다. 진영에 상관없이 일독을 권한다. 평평한 운동장에서 진보와 보수가 치열한 논쟁을 통해 한국경제에 필요한 답을 찾아가길 바란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