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강민성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기업어음(CP)과 같은 단기 금융시장은 물론 회사채 시장까지 확산돼 기업 자금조달 시장이 꽉막힌 모습이다.

시장에 돈이 돌지 않아 경기가 급격히 침체되고 있다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속에 투자자들은 보유했던 비우량 채권들을 처분하는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단기자금시장 안정화 목적으로 지난달 말부터 국책은행과 시중은행들은 CP를 전부 사들이고 있지만 CP금리는 되레 오르고 있고, 회사채 발행시 기준금리가 되는 3년물 국고채 금리도 상승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대규모 지원방안에도 자금시장이 계속 경색된다면 유동성 압박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업은 회사채 상환압박이 가중되면서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 산업의 근간인 제조기업들의 수출이 감소되고, 해외에 공장을 둔 기업들마저 가동중단에 이르면서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들은 만기를 앞둔 회사채의 상환부담은 물론 비용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 감소가 뚜렷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앞으로의 전망도 예상할 수 없어 기업들의 신용강등을 우려한 투자자들은 우량채권 마저 처분하고 있다. 채권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만큼 거래 금리가 상승하고 있다. 두산그룹 계열사와 아시아나항공은 연 8.9~9.9%수준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한신공영, 대한항공, 한양 등 회사채 신용등급 BBB로 평가받은 기업은 6.2~7.9%에 거래되고 있다.

정부의 무제한 양적완화 조치로 지난달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전년 10월 대비 0.5%포인트 하락한 0.75%로 확정됐지만 AA급 3년물 국고채 금리와 단기 시장인 기업어음 금리는 상승세다. 

이에 따라 자금 시장이 장기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의견도 계속 나오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의 ‘리스크 오프’ 전략에 기업들 발 동동

4월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보유 기업, 유동성확보에 유형자산매각·은행 차입 결정

채권 시장 전문가 “회사채 발행시기 재개 지연될 가능성 높아”

채권시장이 본격적으로 패닉상태에 빠진 시점은 3월 초부터다. 

이 시점부터 투자자들은 우량채권 조차 투자를 기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가 위축되고 시장이 불안할수록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채권에 투자가 증가한다는 이론이 깨져버린 것이다. 

특히 기관투자자들은 자산운용을 극도로 보수적으로 운영하면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위험회피 전략인 ‘Risk-off’전략이 가동되면서 우량채 조차 사전청약에서 수요가 미달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3000억원 규모의 조건부자본증권 청약 과정에서 2700억원의 수요만 들어왔다.

회사채 수요를 맞추지 못할 경우 희망했던 공모금리보다 높아져 자금조달에 따른 이자부담이 가중된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주요 기업들은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고 있는데도 쉽게 발행을 하지 못하고 발행을 연기하면서 공모채 시장이 한달간 급격히 얼어붙었다. 일부는 특정 기관투자자와 직접거래할 수 있는 사모채 시장에서 신속하게 자금을 조달했지만 저 신용등급 기업들은 사모채 시장에서도 발행이 어려워 보유중인 부동산 등 유형자산을 매각해 현금화 하거나 전환사채(CB) 등을 발행하는 극단적인 대책도 내놓고 있다. 또는 저금리를 이용해 은행을 통해 단기 차입을 진행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두산, 두산중공업, 롯데칠성음료, 신세계I&S, 진에어, 메리츠금융지주, SK디스커버리 등이다. 두산중공업은 우선적으로 은행에 1조원을 차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두산중공업 자기자본에 16.1% 수준이다. 두산중공업은 현재 유동부채만 13조7732조원에 달하고 부채비율이 363%를 웃돌아 자체적인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현재 자회사인 두산건설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칠성음료도 기업어음을 차환하기 위해서 은행 차입을 지난달 결정했다.

차입금액은 2500억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20.36% 수준으로 자금을 빌렸다. 차입 후 롯데칠성의 단기차입금 합계액은 4030억원으로 차입전 1530억원 대비 2.6배 증가했다. 진에어도 자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달 은행에서 300억원을 차입했다. 진에어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중대형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하는 등 수익창출 방안에 나서고 있다.

한편 4월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기업들은 자금조달 방안을 찾고 있지만 투자심리 위축으로 회사채 시장은 여전히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다 외국인 채권 매각 등이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투자자들은 현금 확보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혜현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시장이 안정화되더라도 채권 시장이 강세로 전환되기 까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시장 수요가 회복되지 않은 만큼 결산공시 이후에도 회사채 발행시장 재개는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 유가 하락 등에 따른 기업들의 부진한 실적이 두드러지면서 신용등급 하향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한은의 추가 인하 여력도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