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2019 항공사 영업익 변화 추이. 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 기자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성장이 정체된 항공업계는 지난해부터 줄줄이 대외악재가 터지며 격변기를 맞이했다. 과잉 공급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보이콧 재팬’으로 인한 일본 여행 수요 감소, ‘홍콩 사태’ 등 악재가 줄이으면서 여객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화물 물동량도 감소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 들어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항공업계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놓였다. 이에 항공업계는 잇따라 무급휴직, 임금반납 등 자구책을 내놓으며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고 있다. 

보이콧 재팬 겨우 버텼는데… 코로나19에 항공업계 초주검

지난해 항공사들은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연결 재무제표 기준 대한항공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2조6918억원, 2619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2.5%, 59.1% 줄어들었다. 아시아나항공 또한 지난해 연결기준 3683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전년 351억원 대비 적자폭이 10배 가량 늘었으며, 당기순손실도 6727억원으로 전년 963억원 대비 7배 늘었다.

저비용항공사(LCC)들도 일제히 적자로 돌아섰다. LCC업계 맏형인 제주항공은 34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적자 전환했다. 지난 2010년 이후 9년 만에 연간 기준 첫 적자다.

업계 2, 3위인 진에어와 티웨이항공도 지난해 각각 영업손실 491억원, 192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국토교통부의 제재로 1년이 넘도록 어려움을 겪었던 진에어는 지난해 하반기 국제선 노선 점유율 부분에서 3위였던 티웨이항공에 2위 자리를 내주는 뼈아픈 역전을 당하기도 했다. 

항공업계의 지난해 실적 악화는 지난해 3분기부터 이어진 ‘보이콧 재팬’의 영향이 가장 컸다. 이로 인해 단거리 노선 여객 수요가 줄었고, 항공사마다 자구책으로 탑승률을 채우기 위해 운임을 공격적으로 낮추면서 실적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돌파구라 여겼던 동남아와 중화권 등 단거리노선에서도 출혈경쟁은 반복됐다.

올 들어 터진 코로나19는 근근히 버텨오던 항공업계에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하늘길도 다 막히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항공업계는 시계제로 상태로 치달았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와 국제선을 합한 항공 여객 수는 174만3583명에 그쳤다. 이는 1997년 1월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23년 만에 가장 적은 수치다. 항공 여객수는 2003년 6월 299만345명을 기록한 후 한 번도 300만명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항공업계는 올해 상반기 항공사 매출 피해액이 최소 6조30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한항공도 못버텨… 항공업계, 앞 다퉈 고강도 자구책
 
상황이 이쯤 되면서 항공사들은 고강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4월부터 부사장급 이상 월 급여의 50%, 전무급은 40%, 상무급은 30%를 반납한다. 또한, 전직원을 상대로 장기 유급휴직을 추진한다.

이달 1일부터는 모든 외국인 조종사를 대상으로 오는 6월 30일까지 3개월간 의무적인 무급휴가를 적용하기도 했다. 아울러 송현동 부지 등 유휴자산 매각에 더해 추가적인 유휴자산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월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간 이후 3차 자구안까지 내놨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특단의 조치다. 3차 자구안은 4월부터 전 직원이 최소 15일 이상의 무급휴직에 들어가는 것이 골자다. 지난 3월 전 직원 최소 10일 이상 무급휴직보다 더 강화된 조치로 휴직 대상도 조직장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인력 운영을 50%로 줄인다.

급여 추가 반납도 실시한다. 임원들은 급여 10%를 추가 반납해 총 60%를 반납한다. 아시아나항공은 3월부터 사장 급여는 전액(100%) 반납하기로 했으며, 임원 급여는 50% 반납해 왔다. 임원 급여 반납 규모를 늘려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LCC들은 더욱 어려운 처지다. 제주항공은 비상경영을 넘어 2월부터 위기경영제체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경영진이 임금 30% 이상을 반납하고, 무급휴가제도의 대상 범위를 기존 승무원에서 전 직원으로 확대했다.

진에어도 창립 이래 첫 무급휴직을 실시했다 이어 최근에는 일반직을 대상으로 실시 중인 유급 순환휴직제를 5월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1개월 단위로 신청 가능하며 이 기간 중 평균 임금의 약 70%가 지급된다. 

이스타항공은 국적사 중 처음으로 지난달 24일부터 국제선에 이어 국내선까지 모든 운항을 한 달간 중단하고 4월부터 휴업에 들어갔다. 초유의 개점휴업 상태다. 이스타항공은 2월에는 임금 40%만 지급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100% 임금 지급을 유예하고 희망퇴직 실시도 검토 중이다. 이스타항공은 보유항공기도 23대에서 13대까지 줄인 상황이다.

이 밖에 티웨이항공은 근무일을 주 4일로 단축하고 희망자를 대상으로 유급휴직을 시행하고 있다. 에어서울·에어부산 또한 대표이사를 포함한 모든 임원이 사직서를 내고 급여를 일부 반납하고 있다. 에어부산은 전 직원이 40일간 유급휴직, 에어서울은 직원의 90%가 무급휴직 중이다.

자구책에도 한계직면… 신용등급도 ‘빨간불’

상황이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항공사들의 재무건전성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신용평가는 대한항공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로 유지하면서도 ‘하향검토’ 워치리스트에 등록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수익 저하와 그로 인한 유동성 관리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대한항공의 항공운임채권 유동화증권(ABS)의 신용등급도 ‘하향검토’에 등록했다. 운송객 감소로 운임채권 회수율이 크게 하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ABS의 안정성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 본 것이다. 추가신탁 등 대응이 이뤄지지 않으면 향후 조기 지급 등 퍼포먼스 트리거가 작동할 수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한신평은 아시아나항공 회사채 신용등급 또한 BBB-로 평가했다. 다만, 대규모 유상증자, 대주주 변경에 따라 상향검토 워치리스트를 유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영업 펀더멘털이 훼손될 경우 상향검토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기업평가도 대한항공을 ‘부정적 검토’ 대상에 등록했다. 장부상 차입 규모가 과중하고 지난해의 저조한 실적과 잠재채무 등으로 재무적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해 부정적 영향이 가중될 수 있다는게 한기평의 설명이다. 

국제신용평가사 S&P도 “코로나19 확산에 한국 기업들의 신용도 압박이 심화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 중 하나로 항공산업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발 충격이 단기에 끝나지 않음에 따라 항공사들의 유동성 문제가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항공권 취소 대금도 항공사들의 재무건전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이 카드사에 지불해야 할 항공권 취소 대금만 500억원으로 추정된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항공권 취소 대금은 더욱 불어날 수밖에 없다.

박소영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에 따라 항공 수요 정상화는 상당 기간 지연될 수 있다”며 “글로벌 경기 부진에 따라 2019년부터 나타난 여객 수요 성장 둔화와 화물 수요 부진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추세화 될 경우 영업 펀더멘털의 약화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