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엘리자벳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연동원 문화평론가의 문화가 산책]

실존했던 오스트리아 황후를 소재로 한 뮤지컬 '엘리자벳'. 이 뮤지컬은 평범한(?) 처녀 엘리자벳이 황후가 돼서 겪는 온갖 심적 고통을 다각도로 묘사하고 있다. 어느 면에서는 오스트리아판 다이애너 황태자비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엘리자벳이 더욱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우유부단한 남편과 엄격한 시어머니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평생을 외로움 속에 지냈을뿐 아니라 아들 루돌프가 자살했으니 말이다. 이처럼 스토리가 음울하니 극의 분위기도 대체로 어둡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가 상상 속의 토드(송창의)인데, ‘죽음’을 의미하는 이 캐릭터는 극중 내내 엘리자벳을 맴돌면서 그녀에게 죽음을 유도한다. 그러나 암울한 내용과 달리, 관객을 신명나게 하는 요소도 있다. 바로 이탈리아 아나키스트로 엘리자벳을 암살한 루케니가 내레이터와 관객의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감초 역할도 맡고 있다.

이 공연을 뜨겁게 달군 두 배우를 들라면 엘리자벳역의 옥주현과 루케니역의 박은태를 꼽을 수 있다. 옥주현은 TV 방송 '나가수'에서 보여준 그 이상의 가창력을 발휘해, 가히 정상급 뮤지컬배우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다. 박은태 역시 폭넓은 성량과 관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돋보인다.

2막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등장한 점도 그 한 예. 그런데 그의 역할과 영향력이 크다 보니 오히려 상대적으로 토드와 엘리자벳의 남편 요제프 황제의 극중 비중이 위축되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엘리자벳이 죽음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 토드가 등장해야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데, 토드가 너무 자주 나타남으로써 마치 엘리자벳은 처녀 때부터 암살범에게 살해될 때까지 죽음만 생각하는 비관주의자 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 더욱이 그녀의 불안한 심적 상태를 토드와 루케니가 각기 언급함으로써, 두 캐릭터가 종종 겹쳐 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이 공연의 가장 아쉬운 대목은 “회전무대가 멋지고 3개의 리프트가 웅장한 효과를 냈다”는 보도자료와는 달리 무대 전체가 산만하다 못해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뜬금없이 움직이는 회전무대도 그렇고 리프트가 나오는 장면에선 볼거리가 아닌, 어지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 토드가 등장할 때마다 나오는 리프트가 대체 뭘 의미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만일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의미한다면 사족같은 장치이고, 관객을 향한 볼거리라면 역효과인 듯싶다. 배우들의 역량이 뛰어나지만 캐릭터의 겹침 현상이 보여지고 화려하지만 산만한 외화내빈(外華內貧)의 무대장치, 바로 뮤지컬 '엘리자벳'을 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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