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JTBC에서 방영되었던 웹툰 원작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 인기의 비결은 다양하지만, 이야기의 전개에 담긴 불변의 흥행공식도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포악한 강자(장대희 장가 회장)에 맞서 바닥부터 차근차근 다지고 올라선 주인공(박새로이)의 통쾌한 복수. 현실세계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이 극적인 판타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이야기꾼들의 사랑을 받아온 전형적 플롯이자 여전히 대중이 환호하는 키 포인트입니다. 쉽게 말해 이야기의 얼개만 촘촘하다면, 싫어할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아주 가끔이지만, 현실에도 이런 판타지가 작동할 때도 있습니다. 절대권력에 맞서 발칙한 상상과 도전이 정면승부를 걸어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장면. ICT 업계에도 있습니다. 각 국 중앙은행의 횡포에 맞서 탈 중앙화된 권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화폐질서를 구축하려는 암호화폐, 거대 방송국의 손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기획과 실천력으로 레거시 플랫폼을 위협하는 1인 미디어가 그 주인공입니다.

 

문제는,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는 거대 권력을 무너트려 성공과 사랑을 거머쥐었으나 암호화폐와 1인 미디어의 현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들도 박새로이처럼 모든 여정의 끝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없을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는 이야기속 주인공들처럼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없을까? 이 글은, 절대권력에 맞서 분연히 일어났으나 아직 완전하게 장가를 무너트리지 못한 ICT 업계의 이단아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중앙은행을 조롱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하며 온 세상에 부의 불평등이 파도처럼 덮쳐오던 2008년. 9쪽으로 구성된 한 편의 논문이 조용히 게시됩니다. 논문의 제목은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정체불명의 인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개발자가 작성했습니다.

사토시는 이 논문을 통해 "중앙은행은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신뢰할 수 있어야하지만, 화폐 통화의 역사는 그 신뢰의 위반으로 가득하다"고 비판햇습니다. 이어 정부와 중앙은행,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기존 금융질서는 억압과 속임수의 연속이며 탈 중앙화를 통한 새로운 화폐질서가 디지털 자산의 이름으로 시대의 주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세계를 주무르며 일부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주는 중앙은행의 권력에 분연히 맞서 일어난 발칙한 도전장.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의 시작입니다.

이후 암호화폐 시장은 급성장을 거듭합니다. 채굴 방식의 비트코인이 아닌, 스마트 컨트랙트를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암호화폐가 우후죽순 등장했으며 이들은 거래 속도의 개선과 투명성 고도화 등 다양한 목표를 설정하고 하드포크를 비롯한 다양한 개인기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블록체인 생태계에 대한 가능성 타진이 벌어지는 한편 매력적인 디앱 생태계를 아우르는 입체적인 전술전략도 벌어집니다. 페이스북이 리브라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네이버와 카카오가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기어이 기축통화인 달러파워를 보유한 중앙은행 등 각 국의 견제가 이어집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다”면서 “규제없는 암호화폐는 불법적인 활동을 촉진할 것”이라고 비판했으며 파월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가 자금세탁의 원흉이 될 수 있다며 “상용화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출처=갈무리

탈 중앙화, 중앙 집중 플랫폼으로
기축통화인 달러파워를 가진 제도권 인사들이 암호화폐 시장을 공격하는 것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제 급성장하는 암호화폐 업계가 그들의 탄탄한 권력에 위협을 가할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이유로 각 국의 체계적인 견제를 암호화폐 시장 입장에서는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링에 올라 챔피언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증명했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집니다. 암호화폐 시장이 무규제의 덫에 빠지는 한편, 각종 범죄사고와 관련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며 크게 휘청인 것은 오히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중앙집중된 강력한 절대권력에 분연히 일어선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업계가 오히려 생명의 연장을 위해 중앙집중으로 무장된 거래소에 의존하는 것이 심각합니다. 그 무엇보다 탈 중앙화를 외치던 이들이 중앙집중형 거래소에 의존해 생명연장을 꾀하는 장면. 이 과정에서 탈 중앙화의 가치보다 마이크로 리코드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이 역시 탈 중앙화를 외치던 최초의 목소리가 오히려 거래소라는 중앙집중 플랫폼에 의존하는 현상에 대한 인지 부조화일 뿐입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최초의 블록체인, 비트코인은 거대한 중앙권력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성격으로 탄생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업계는 시장의 가장 윗 자리를 거래소에 양보하는 한편, 거래소 해킹 한 번에 최고의 보안을 가진다는 암호화폐가 줄줄이 유출되는 기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 출처=갈무리

이러한 현상은 1인 미디어 업계에서도 엿보입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를 부르던 시절, 우리는 거대한 미디어의 영향력에 한 번 정도 간택받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이는 그 만큼 방송국으로 대표되는 미디어의 권력이 중앙집중형이며, 카르텔을 유지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국내를 기준으로 볼 때 1990년대 케이블TV 시장이 열리고 2000년대 IPTV 시대가 도래하는 한편, 이제는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 및 웨이브의 시대로 대표되는 다매체 시대가 개막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지상파 방송사는 최강의 플랫폼이 아니고, 200년 50%를 넘기던 직접수신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1인 미디어입니다. 유튜브의 등장과 함께 촉발된 1인 미디어 시대는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미디어가 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마저도 영상의 측면에서 시작된 역사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이며, 블로그 및 SNS의 역사로 보면 1인 미디어 시대의 태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1인 미디어의 역사적 의미는 미디어 권력의 해체, 즉 중앙집중 플랫폼의 분산입니다. 그런 이유로 1인 미디어의 강점은 곧 레거시 미디어가 할 수 없는 입체적이고 다양한 기획과 콘텐츠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레거시 미디어에 도전장을 내민 발칙한 1인 미디어의 도전입니다.

그 도전은 의미있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의미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사실 '아직은 부족하다'라는 평가가 적절합니다. MCN으로 촉발된 1인 미디어의 폭발적인 위력은 콘텐츠의 기획적 측면에서 높은 호평을 받았으나 브랜디드 콘텐츠 및 커머스 분야와의 접점을 끝으로 더 이상의 확장은 멈췄으며, 이 마저도 모바일 플랫폼에 대한 비약적인 사용자 경험을 끌어내기는 역부족입니다. 심지어 1인 미디어의 열악한 장비로 레거시 미디어 수준의 C.G 능력을 구현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아이러니한 일도 벌어집니다. 강력한 레거시 미디어가 할 수 없는 모든 사람을 위한 미디어가 아이러니하게도 레거시 미디어의 문법을 차용하며 단순히 디바이스의 최적화 설정에만 매달리는 모습입니다.

물론 틱톡과 같은, 1인 미디어 기반의 시청 사용자 경험을 파격적으로 조성하는 시도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웹드라마와 같은 신선한 실험을 레거시 미디어의 답습이라 매도하는 것도 위험한 일로 보이기는 합니다. 조금 확장된 영역의 분야지만, 퀴비와 같은 실험도 큰 틀에서는 1인 미디어의 감성을 담아낸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인 미디어의 플랫폼 의존도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여전히 거대 ICT 플랫폼 기업 구글의 유튜브며, 콘텐츠적 기반의 새로운 실험이 오히려 사회적 통념을 파괴하는 '선을 넘는 모습'으로 수렴되는 장면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은 논란입니다. 1인 미디어는 레거시 미디어의 대안이 아닌 일부가 되어가고 있으며, 이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말의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분명합니다. 발칙하게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거대 레거시 미디어의 일부가 되거나 그 연장선에 머물러 있는 장면 말입니다.

▲ 출처=갈무리

그들을 위한 변명, 희망
한 가지 전제하고 싶은 것은,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업계와 1인 미디어 업계에서 고군분투하며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도전자들을 폄하하고 싶은 뜻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도전장이라도 내밀었고, 장근원을 폭행하고 감옥에 가 절치부심하는 초반의 박새로이라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들이, 오히려 자기들이 극복해야 할 콘텐츠와 플랫폼에 종속되는 장면은 다소 씁쓸하게만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위한 변명, 아니 희망을 이야기할 필요도 있습니다. 당장 길이 보이지 않아도, 또 처음 시작했던 그 이데올로기가 다소 방향을 바꾸어도 끊임없는 도전은 세상을 바꾼다는 전형적인 플롯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고, 1인 미디어의 토양을 건전하게 구축하려는 이들의 노력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들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들이 지금 이 순간 도전상대인 중앙집중 콘텐츠 플랫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시 챔피언의 품에 안겨있었던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 말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그 시간을,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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