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배우 안보현씨가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 출연해 공개한 자가용 차량이 화제다. 

안씨가 타고 나온 차량은 현대자동차가 2003년 단종시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갤로퍼로 알려졌다. 단종된지 20년이 다돼가는 모델이지만 안씨 차량의 일부 부위는 개조 작업을 거쳐 세월의 무색함을 넘어서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런 가운데 안씨가 갤로퍼 개조 차량에서 캠핑을 즐기는 모습이 방영된 뒤 ‘안보현 차’가 포털사이트 자동완성검색어에 뜨는 등 누리꾼 관심사로 떠올랐다.

▲ 현대자동차 갤로퍼. 출처= HMG저널

이처럼 국내 자동차 시장에는 최근 안씨 차량처럼 구식 차량을 출시 초기 상태로 복원하거나 새롭게 꾸민 ‘리스토어(restore)’ 수요가 도드라지고 있다. 특히 갤로퍼는 신차로 판매되지 않지만 리스토어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는 모델 가운데 하나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신차 구매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리스토어 시장이 고객의 한 선택지로 자리잡았다.

포탈사이트 네이버에 시사상식 컨텐츠를 제공하는 pmg 지식엔진연구소에 따르면 리스토어는 오래된 자동차의 내부 부품은 물론 색상, 제조공정, 외부 프레임, 엔진, 인테리어 등을 출시 당시와 같게 복원하는 작업을 일컫는 용어다. 본래 ‘복원하다, 되찾게 하다’라는 뜻을 지닌 영단어다. 

국내 리스토어 시장의 규모는 현재 명확한 수치로 집계되지 않는다. 민간 중소 튜닝 전문업체 등을 통해 일부 소비자들이 서비스에 대해 문의하고 리스토어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리스토어 시장은 일부 구식 모델에 대해 향수를 지닌 마니아들이 간간이 비용을 들임에 따라 수명을 이어오다 2013년 유명 방송인들이 리스토어 차량을 공개하며 잠시 주목받기도 했다.

배우 안씨에 앞서 2010년대 초반 방송인 배철수씨가 갤로퍼 리스토어 차량을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배씨도 안씨와 마찬가지로 현대차 갤로퍼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바탕으로 리스토어 작업을 거친 차량을 운행해오고 있다.

현대차는 이 같은 고객 수요를 반영해 2년 정도 재능기부 캠페인 차원에서 갤로퍼 뿐 아니라 다양한 현대차 구식 모델을 운행하는 고객의 차량을 직접 복원하고 있다. 2017~2018년 기간 동안 진행한 캠페인 ‘H-리스토어’를 통해 고객 몇 명의 포터, 등 차량을 출시 초기 수준의 내·외관을 복원해줬다.

현재 2001년식 갤로퍼2 터보엑시드를 타고 있는 30대 직장인 최씨는 “작은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갤로퍼를 첫차로 운행했고 이후 두 번째 차로 지금 모델을 운행하고 있다”며 “차량은 잔고장 많고 노후 경유차라 세금도 많이 들지만, 초기 구입비용이 싼데다 어디든 갈 수 있고 투박하지만 강인한 감성을 자아내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 소비자들은 구식 모델을 물려받아 고쳐가며 오래 타기보다 새로 나온 신차를 더 많이 소비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리스토어 시장이 성행하지 못했다. 반면 외국에서는 완성차 업체들이 관련 부품이나 기술을 공급할 정도로 공신력있는 리스토어링 전문 업체들이 다수 운영되고 있다.

여러 국가 가운데 차량 리스토어 시장이 활성화된 곳으로는 영국이 꼽힌다. 영국에선 출시된 지 통상 15년 넘고 연간 5000마일(약 8046㎞) 미만 운행하는 세컨드카 등 조건을 충족한 차량을 클래식카로 규정한다. 소비자들은 클래식카를 튜닝한 뒤 이용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선다.

일반 승용차 외 주로 고성능 스포츠카의 구형 버전에 향수를 가진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주요 고객층이다. 구매력 갖춘 고객들이 높은 관심을 보임에 따라 클래식카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높아지기도 한다. 지난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카운티에서 열린 클래식카 전시회 ‘페블 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에선 1962년식 페라리 250 GTO가 경매가 4840만달러(약 594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클래식카를 꾸준히 정비·개조해 타고 다님에 따라 보험상품 등 애프터마켓(after market)도 잘 조성돼 있다.

영국 소비자전문 웹사이트 머니세이빙엑스퍼트(MSE)는 “영국에서 클래식카 보험료는 최고 신차 대비 반값에 달할 정도로 저렴하게 책정된다”며 “해당 고객들이 차를 장기간 안전하게 운행하려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서도 최근 자동차 튜닝 관련 규제가 완화함에 따라 관련 분야인 리스토어링 시장 내 소비자 선택폭이 넓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작년 8월 자동차 내수시장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자동차 튜닝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튜닝 관련 승인·검사 절차를 면제해주고 튜닝부품 인증 대상 품목을 확대하는 등 정책을 개선해오고 있다.

다만 리스토어링 자동차가 앞으로 승용보단 렌트카, 관광용 차량 등 사업용으로 쓰이며 중·소규모 시장을 형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부분 구식 모델은 최근 친환경차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구동 장치를 갖추고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신차 가격에 맞먹는 수준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차보다 가성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점은 차량의 매력을 떨어트리는 요소다. 이에 따라 리스토어링 자동차의 낮은 가성비를 감수하고도 ‘나만의 차’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일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승용 시장이 형성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제욱 아주자동차대 자동차디지털튜닝전공 주임교수는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차라는 점에서 리스토어링 차의 매력은 분명 일부 소비자에게 어필할 만하다”면서도 “외국 클래식카 등 희소한 차량 위주로 리스토어링 시장이 새로 조성되는 성과는 나타나겠지만 시장의 성장세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