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신도림점 직원들이 2월28일 구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배식봉사 후 설거지를 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에서 캐셔로 일하는 이모씨. 그녀는 어느 날 남편의 직장암 판정 소식에 눈 앞이 캄캄해졌다. 남편의 암 판정 선고는 가족들의 생계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였다. 그녀는 얼마전 남편의 수술을 무사히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그녀는 회사에서 치료비 860만원 전액을 지원받았다는 사실이 마치 꿈만 같았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만으로도 안정된 직장이 보장돼 그저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던 차에 남편의 수술비까지 전액 지원받자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소속감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매번 대선 때 마다 비정규직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화두로 떠오르는 가운데 신세계 그룹이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모범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5년 전인 2007년 8월 11일,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은 비정규직 5000여 명(이마트 4000여 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현재 이마트 1만2600명, 신세계백화점 3000명 직원 중 비정규직은 한 명도 없다. 이를 위해 신세계그룹이 5년간 추가로 지불한 비용은 약 800억 원.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파트타이머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추가 비용은 당초 예상을 초과한 연간 160억 원에 이른다.

2012년 현재 캐셔 직군의 임금은 비정규직이었던 2006년에 비해 33% 가량 늘었고, 캐셔들에게 지급된 의료비의 경우 2006년에 비해 10배 가량이 늘었다. 신세계 그룹이 정규직 전환에 매해 160억원이라는 적지않은 금액을 지출하면서 얻는 효과는 무엇일까? 높은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2007년 비정규직 전원의 정규직화가 가능했던 것은 구학서 신세계그룹 회장의 확고한 의지 때문이었다.

구회장은 2007년 당시 “비정규직 보호법 차원을 넘어 윤리경영과 사원만족경영을 실현하기 위해 파트타이머의 처우를 법적 기준 이상으로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철학으로 인해 5000여명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며 그 동안 받지 못했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먼저 1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해야 하는 유기 계약직에서 정규직 신분으로 바뀌면서 고용불안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됐다.
기존에 시급제로 지급되던 급여지급방식은 주 5일, 주 40시간 근무제로 변경됨에 따라 연봉제로 전환됐다.

또 상여금, 성과급 등을 기존에 정액으로 지급하던 방식에서 정규직과 동일하게 정률제로 지급하게 되면서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의 복리후생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됨에 따라 직계가족의 의료비 뿐만 아니라 경조사, 학자금 등도 지원받게 됐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의 캐셔들은 “배우자와 아이들 수술 시 의료비 지원을 받았을 때와 장례식장에서 회사 로고가 찍힌 상조용품을 지원 받았을 때가 가족까지 생각해주는 회사에 가장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 이라고 말한다.

연 160억 원 비용 늘었지만 업무 생산성 크게 향상
그렇다면 회사 측은 연간 160억원이라는 적지않은 금액을 투자해 정규직 전환을 하고 어떤 효과를 보게 되었을까? 신세계측은 지난 5년간 신세계그룹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으로 발생한 추가 비용은 800억 원에 달하지만 “업무 숙련도 향상, 회사 충성도 상승 등으로 인한 유무형의 긍정적인 효과도 크다”고 말한다.

가장 큰 효과는 역시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점이다. 2006년 14.2%에 이르던 캐셔 퇴직률은 2011년 8.3%까지 떨어졌다. 근속기간이 길어지자 직원들의 업무 숙련도가 개선되면서 이마트에서 점포당 계산 오류 건수는 5년 새 75% 줄었다.

내 회사라는 의식이 높아지자 직원들의 친절도 역시 높아져 온오프라인 고객의 소리 불만건수도 2006년에 비해 2011년에는 65% 가량 감소했다. 반면 만족 의견 접수 건수는 0.88건에서 1.47건으로 67% 증가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게 되면서 회사의 사회공헌 제도에 참여하는 직원도 크게 늘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2006년 3월부터 신세계 희망배달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사원들이 각자의 급여에서 일정 액수를 떼어 기부하면 회사에서 같은 금액만큼 지원해주는 매칭그랜트 제도다. 2006년 30.4%에 불과하던 캐셔들의 ‘희망배달 캠페인’ 참가율은 2011년 94%에 달해 그룹사 평균 92%를 넘었다. 연간 기부 금액도 2006년 연간 3500만원에 불과하던 누적기부액이 2011년 2억2000만 원으로 같은 기간 6배 이상 늘었다.

이 외에도 기존 정규직 사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로 인해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운 업무 생산성 향상 효과도 크다는 자체 평가다. 캐셔들의 근무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의 상시 채용 평균 경쟁률은 7대 1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유통업계 최고 수준이며, 경쟁사에 비해 2배 가량 높은 수치이다.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의 입사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우수한 캐셔 선발이 가능해지고, 업무 생산성도 더욱 높아지는 선순환이 5년째 계속되고 있다. 2007년 8월 신세계그룹이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유통업계의 벤치마킹 사례도 잇따랐다. 유통업계에서는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단계적인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을 진행 중이고, 최근에는 CJ그룹이 비정규직 600여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유통업체가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게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매장 직원 수가 많아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세계그룹의 파격적인 정규직 전환 실험 5년이 지난 현재에도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는 찾기 힘들고, 특히 규모가 5000명을 넘은 것은 유일무이하다. 최근 정치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거론되면서 신세계그룹에는 정규직 전환 사례에 대한 문의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최원영 기자 uni3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