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출처=한진그룹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이변은 없었다. 한진가 경영권 분쟁 1차전은 조원태 회장의 완승으로 일단락됐다. 반면, 승리를 자신했던 3자 주주연합은 추천한 이사 후보 단 한명도 이사회 진입에 성공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재계에서는 한진가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될 것이며, 조 회장이 이에 맞서 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원태, 사내이사 재선임 성공… 3자 연합 ‘완패’

27일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은 서울시 중구 한진빌딩에서 제7기 정기 주주총회를 갖고 ▲재무제표 승인의 건 ▲사내이사 선임의 건 ▲사외이사 선임의 건 ▲기타 비상무이사 선임의 건 ▲정관 일부 변경의 건 등을 처리했다. 

당초 9시로 예정됐던 주총은 의결권 확인 절차 등에 따라 3시간이 넘은 12시 5분쯤 시작됐다. 두 진영이 각각 기관투자자나 개인주주로부터 받은 위임장에 법적 하자가 있는 지 확인하면서 시간이 지체됐다. 주총 전날까지 여론전을 펼치던 조원태 회장과 3자 연합이 주총 당일 까지 신경전을 벌인 모양새다.  

이날 주총에는 의결권 행사 주식 총수 5727만6944주 중 주식 수 4864만5640주에 해당하는 3618명(위임장 제출 포함)이 참석했다.

특히, 이번 주총에서는 올해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후보로 재 추천되면서 그룹의 경영권 향방을 가르는 주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 결과 이날 주총 참석률은 84.93%로 지난해 주총 참석률 77.18%보다 대폭 늘었다. 

앞서 한진칼 이사회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과 하은용 대한항공 재무부문 부사장의 신규 선임안을 상정한 바 있다. 사외이사 후보로는 김석동·박영석·임춘수·최윤희·이동명 총 5인을 추천했다.

▲ 한진칼 이사회가 추천한 사내·사외이사 후보. 출처=한진그룹

이에 맞서는 3자 연합은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과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을 전문경영인 후보로 올렸다. 또한 함철호 전 티웨이항공 대표이사를 기타비상무이사로 추천했다. 3자 연합은 서윤석·여은정·이형석·구본주 후보 총 4인을 사외이사로 제안했다.

결과는 조 회장의 압승이었다. 조 회장 측은 이사회 진입율 100%를 달성하며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반면, 3자 연합 측 후보는 단 한 명도 주주 과반의 찬성을 이끌어 내지 못하며 압도적인 패배를 기록했다.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은 출석 주주의 찬성 56.67%로 무난하게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하은용 부사장도 57%에 달하는 찬성표로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이 밖에 한진칼 측 사외이사 후보 5인 모두 출석 주주의 55~56%로부터 찬성표를 받았고, 결과적으로 이사 후보 전원의 선임 안건이 가결됐다. 이에 따라 차기 이사회 장악에도 성공하게 됐다. 

그러나 3자 연합 측의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과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은 전문경영인으로 선임되지 못했다. 특히, 김신배 후보는 전날 국민연금의 찬성표를 얻었음에도 불구, 의결정족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함철호 후보 55.84%의 반대를 받아 이사회 진입에 실패했다. 또한, 3자 연합 측 사외이사 후보 4인 전원의 선임안도 부결됐다. 이들 중 가장 높은 찬성표를 받은 서윤석 후보가 47.24%에 그쳤다.

‘예고된’ 조원태 승리… 반도건설 의결권 제한·국민연금 결정 카운터 펀치

조 회장과 주주연합 간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며 한진그룹은 ‘조원태 중심 경영체제’를 공고히 하게 됐다. 

애시당초 조원태 회장 측과 3자 연합의 경영권 분쟁은 치열한 표싸움이 예고됐었다. 지난해 말 주주명부 폐쇄 시점 기준 조 회장이 33.45%, 3자 연합이 31.98%의 지분을 각각 보유해 양측이 확보한 우호지분 격차가 겨우 1.47%포인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 회장은 어머니, 동생과 일찌감치 연대한데 이어 대한항공 사우회 등 회사 내부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우군을 확보해 나갔다.

▲ .27일 한진칼 정기주주총회가 열린 한진빌딩 내부. 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 기자

특히, 한진그룹 직원의 절반에 달하는 대한항공과 ㈜한진, 한국공항 등 한진그룹 계열사 노조는 지난 2월 공동입장문을 통해 3자 연합의 한진칼 장악 시도에 대해 “가진 자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벌이는 해괴한 망동(妄動)”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도 조 회장 체제에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 13일 국내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에 이어 세계 최대 자문사인 ISS도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에 대해 찬성을 권고하면서 주총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여기에 법원이 조원태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무게 추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4일 3자 연합이 제기한 한진칼 의결권 관련 2개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모두 기각했다. 그 결과 반도건설의 의결권이 5%로 줄면서 3자 연합의 의결권 행사 가능 지분은 28.78%로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전날 한진칼 지분 2.9%를 가지며 마지막 퍼즐로 불렸던 국민연금이 조 회장 재선임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을 포함한 항공업계가 코로나19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현 경영진 체제를 유지하는 게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가라앉는 배에 굳이 선장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다. 여기에는 대한항공이 지난해 항공업권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달성했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진가 경영권 분쟁 n차전 예고… 리베이트 의혹 등 남아

1차전에서는 조원태 회장이 여유롭게 승리했지만 주총 이후 경영권 분쟁의 행방은 안갯속이다. 3자 연합의 임시 주총 요구, 대한항공 리베이트 의혹, 대한항공의 경영 정상화 등 문제가 산적해 있는 탓이다. 

우선 3자 연합이 추가적으로 확보한 한진칼 지분율을 바탕으로 임시 주총을 제기하는 등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3자 연합은 주총 종료 직후 입장문을 통해 “주주총회 과정을 통해 기존 오너 중심의 경영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많은 주주 분들의 열망과 한진그룹의 변화를 바라는 국민 여러분들의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며 “주주연합은 한진그룹이 위기에서 벗어나 정상화의 궤도에 올라설 수 있도록 계속 주주로서의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강성부 KCGI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설명하고 있는 모습. 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 기자

KCGI와 반도건설은 올 들어서도 한진칼 지분을 꾸준히 매입, 지분율을 각각 18.68%, 14.95%까지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24일 기준 3자 연합의 지분율은 총 42.13%가 됐다. 또한 KCGI가 한진의 주식 60만주를 처분하면서, 이를 한진칼 지분 매집에 사용할 가능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조원태 회장 측도 주총 이후를 대비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우호세력인 델타항공이 한진칼 지분을 추가 매입, 지분율을 14.9%까지 끌어올렸다. 

여기에 3자 연합이 지난 24일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향후 본안소송 등에 나선다고 밝히며 법정 공방에 따른 신경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승소 가능성은 낮지만 본안 소송에서 결과가 바뀔경우 주총 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더불어 대한항공의 에어버스 리베이트 의혹도 남아있다. 이날 주총장에서도 대한항공의 리베이트 의혹을 지적하는 질문이 거듭 쏟아졌다. 대한항공이 한진칼 자산가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핵심 자회사인 영향이다. 

채이배 민생당 의원은 주총에 참석해 “대한항공 임원이 연루된 ‘180억원 리베이트 의혹’은 한진칼 자산가치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만약 리베이트에 가담한 고위 임직원이 한진칼에서도 근무하고 있다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말해달라”고 질문했다. 이에 석태수 사장은 “검찰에서 조사 중인 사안으로, 조사 결과에 따라 진상 파악과 책임 규명에 나설 것”이라 답했다.

여기에 대한항공 경영정상화 문제도 남아있다.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고사직전에 놓인 가운데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1분기 대한항공의 실적이 역대 최악에 가까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두 달 만에 94.2%나 주저앉아 시총 100대 기업 중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이를 반영하듯 대한항공은 최근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다음 달부터 부사장급 이상은 월 급여의 50%, 전무급은 40%, 상무급은 30% 반납에 들어간다. 회사는 경영상태가 정상화 할때까지 이 같은 방침을 지속한다는 구상이다. 

조 회장은 이날 주총 의장인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가 대독한 인사말을 통해 “2020년은 연초부터 확산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더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면서도 “지금까지의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며 슬기롭게 극복해 온 경험을 토대로, 올해도 위기 극복은 물론 주주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경영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