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의 중심이었던 명동은 예전의 찬란함이 다소 바랬지만 여전히 금융1번지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사진: 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명동은 한국 금융산업의 역사이자 발자취이다. 지금은 여의도와 강남으로 분산됐지만 금융 1번지로서의 저력은 아직도 유효하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은행 본점들이 아직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명동과 금융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명동은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발원지이자 심장이었다. 휴전 직후부터 정부가 주도한 재건사업으로 1956년 이후 명동엔 고층빌딩이 줄줄이 들어섰다. 이때부터 명동은 금융기관의 본사, 대형 백화점, 각종 사무실 등이 밀집돼 내-외국인들이 몰리는 쇼핑의 메카로 애용됐다. 하지만 명동이 한국 금융의 심장이라 불리는 이유는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달 28일 삼성증권 명동지점은 기존의 증권빌딩에서 나와 인근의 명동 아르누보센텀 빌딩으로 이전했다. 새롭게 이전한 명동지점은 전용면적 515.96㎡(약150평)으로 투자 세미나실과 PB와 상담을 위한 1:1카운터, 고객 휴식 공간 및 VIP상담실 등 맞춤형 자산관리에 필요한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하지만 이날 명동점 이전 소식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이 건물이 옛 명동 증권거래소 자리에 위치한 고품격 복합건물이라는 점이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2년 경성주식현물시장으로 건립됐던 명동거래소 건물은 해방 후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로 새 간판을 내걸었다. 지난 1979년 거래소가 여의도로 이전할 때까지 명동은 명실상부한 한국의 ‘월스트리트’였다. 지금은 상가 건물 한 귀퉁이에 옛 증권거래소 자리임을 알리는 자그마한 표지만 쓸쓸하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삼성증권이 그 곳에 지점을 이전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명동은 아직도 대표적인 은행가로 통한다.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시중은행들이 명동과 그 주변에 포진해 있다. 하나은행, 우리은행, 외환은행, 기업은행의 본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렇듯 은행 본점이 유독 명동에 밀집해 있는 것은 바로 한국은행의 위상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책은행인 한국은행에서 열리는 회의 등 유관 업무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 본점들이 명동을 고수하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특히 명동의 금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채시장이다. TV에서 방송되는 기업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채의 대부들이 아직도 ‘명동 큰손’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명동 사채시장은 전쟁 직후 암달러상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전쟁 이후 남대문 시장과 명동·회현동·소공동에서 활약했던 암달러상들이 급전이나 건국국채 같은 채권 매입으로 억척스레 돈을 모으면서 그같은 시장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채업자들이 시중은행의 본점이 밀집해 있는 명동으로 모여들었고, 결국 제도권 안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채놀이를 했다는 것이다. 지난 1972년 사채동결 조치로 잠시 주춤했지만 명동 사채업자는 단자회사나 종합금융회사로 탈바꿈해 영업을 지속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명동은 과거의 찬란함에 비해서는 빛이 바랬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명동은 여전히 금융의 중심지로서 지금 이순간에도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증권은 거래소를 따라 여의도로 중심지가 바뀌고 강남은 소비자 금융 중심으로 위력을 분산시켰지만 명동은 아직도 금융중심축으로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상오 기자 hanso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