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진그룹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치열한 가운데, 국내 재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형제의 난'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세습의 성향이 강한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피해가기 어려운 그 어두운 그림자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 출처=갈무리

삼성부터 한진까지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시대를 맞아 형제의 난은 벌어지지 않지만, 윗 세대인 이건희 현 회장과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은 슬하에 4남6녀를 뒀다. 총 10명의 자녀 중 8명은 박두을 여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2명은 일본인 부인의 자식이다. 첫째는 한솔그룹 고문 고 이인희 회장이며 둘째가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다. 셋째는 새한미디어 회장을 역임한 고 이창희 회장이며 그는 1991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넷째는 LG가와 결혼으로 맺어진 이숙희 씨, 다섯째는 이순희 씨, 여섯째는 이덕희 씨, 일곱째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 여덟째는 신세계 그룹 회장인 이명희 회장, 아홉째는 이태휘 씨, 열째는 이혜자 씨다.

일본인 부인이 낳은 이태휘 씨를 제외하고 이병철 회장의 후계구도는 장남인 고 이맹희 회장, 고 이창희 회장, 이건희 회장으로 압축된바 있다. 그러나 1969년 일명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고 차남인 고 이창희 회장이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사건에 관여했다는 투서를 청와대에 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상황은 복잡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장남인 고 이맹희 회장도 연루됐다는 말이 나오자 고 이병철 회장은 격노했고 이는 삼남인 이건희 회장이 전면으로 나서는 계기가 된다.

고 이맹희 회장은 삼성에서 밀려났으나 동생인 이건희 회장과 재산상속 문제를 두고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직원 미행 등 불미스러운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고 이맹희 회장이 2015년 별세한 후 이재용 부회장이 와병중인 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빈소를 찾아 극적인 화합의 단초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고 이맹희 회장을 실은 운구차가 영결식이 끝난 후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을 출발해 장충동 저택을 들러 경기도 여주에 있는 가족 사유지인 연하산으로 향한 가운데, 그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찾았던 장충동 저택은 아버지 고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머물던 추억의 장소라는 점도 새삼 관심을 끈 바 있다.

현대그룹도 형제의 난을 겪었다.

고 정주영 명혜회장은 1940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공장을 열어 현대자동차의 역사를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1967년 고 정주영 회장의 넷째 동생인 고 정세영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정식으로 열어 국산 모델 자동차인 현대 포니를 생산한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포니는 세계를 달리기 시작했고, 고 정세영 회장은 '포니정'이라는 별칭까지 얻는다. 고 정세영 회장의 장남이 바로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다.

순탄하던 현대차에 형제의 난이 벌어진 것은 고 정주영 회장의 차남인 정몽구 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5남인 고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의 다툼이 원인이다. 결국 정몽구 현 회장이 2000년 경영권을 승계하자 현대의 미래는 변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정몽규 회장은 현재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돌입하며 자동차를 넘어선 모빌리티의 꿈을 꾸고 있다.

롯데그룹도 오랫동안 형제의 난을 겪었다. 2014년부터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아들인 2014년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신동빈 롯데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다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18일 오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회장으로 선임되며 경영권 분쟁은 완전히 끝났고, 고 신격호 회장은 올해 1월 노환으로 별세했다.

두산그룹도 형제의 난을 겪었다. 초반 형제들이 공동경영에 나섰으나 고 박용곤 회장 후 고 박용오 회장, 박용성 회장이 경영권을 두고 정면대결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 사태는 검찰의 개입까지 불렀고 결국 후계에서 밀린 고 박용오 회장은 재기를 노렸으나 2009년 자택에서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진다. 이는 현재의 박용만 회장 체제를 자리잡게 만드는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금은 4세 경영이 열리며 큰 틀에서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중이다.

금호그룹의 논란도 크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벌인 바 있다.  결국 회사는 쪼개졌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워크아웃에 들어가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했다.

효성그룹 형제의 난도 잘 알려져 있다. 2013년 조현문 당시 효성 중공업PG 사장이 돌연 사표를 낸 후 아버지 조석래 전 회장과 형인 조현준 사장의 횡령 혐의를 폭로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논란의 충격파가 여전한 가운데 최근 조현문 전 사장이 싱가포르서 600억 원대 투자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알려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지금도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및 3자 주주연합의 경영권 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며 남매의 난이 벌어진 한진그룹의 경우, 윗 세대에서는 형제의 난이 벌어진 바 있다.

실제로 고 조중훈 회장이 1945년 인천에서 한진상사를 일으키며 한진그룹의 역사를 연 가운데 2002년 그가 타계하자 장남인 고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으나, 이후 차남인 조남호 회장과 4남 조정호 회장은 조양호 회장이 선친의 유언장을 조작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 조정호 회장은 2005년부터 법정공방을 벌이며 소모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한진그룹의 성장 동력은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조남호 회장은 한진그룹과 완전히 결별하는 등 '말로'가 좋지 않았다. 이들은 고 조양호 회장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화해하지 못했다.

▲ 고 구본무 회장이 회장에 취임할 당시. 출처=LG

화합의 무대도 연출된다
국내 대기업에 골육상쟁의 형제의 난, 남매의 난만 있는 것이 아니다. SK와 LG의 사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SK를 창업한 고 최종건 회장은 1973년 11월 48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며 동생인 고 최종현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긴다. 이후 고 최종현 회장은 SK에너지 및 SK텔레콤을 일구며 그룹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이어 고 최종현 회장은 경영권을 창업주이자 형인 고 최종건 회장의 아들이 아닌, 자기의 아들인 최태원 회장에게 넘긴다.

형이 사업을 일으키고 동생이 이를 이어받은 상태에서, 다음 후계를 형의 아들이 아닌 본인의 아들에게 준 셈이다. 창업주의 아들이 반발해 형제의 난이 아닌, 사촌의 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런데 SK에서 사촌의 난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촌의 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샀던 고 최종건 회장의 아들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과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최태원 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특히 최신원 회장의 경우 해병대 출신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의리와 명분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러한 철학이 계승 과정에서 고스란히 묻어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근 최태원 회장은 본인에게 힘을 실어주며 SK의 미래를 맡겼던 사촌들에게 SK㈜ 주식 329만주를 증여하며 여전한 믿음을 보여준 한편 한국판 스웨던 발렌베리 가문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LG도 형제의 난에 있어 무풍지대다. 유교적 가풍이 강해 고집스러운 장자승계원칙을 고수하면서 인화의 경영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LG그룹의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은 1969년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그해 12월 향년 62세로 숨을 거둔다. 아직 명확한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주의 동생인 고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이 욕심을 냈다면 현재의 LG 미래는 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고 구철회 사장은 창업주이자 형이 위독하자 생들과 조카들을 불러 자신은 경영승계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창업주의 첫 째 아들인 고 구자경 당시 부사장이 그룹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그는 LG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땠고 그의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를 그룹에서 독립시킨 LIG그룹을 이끌고 있다.

고 구자경 명예회장에서 고 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지는 승계도 잡음이 없었으며, 고 구본무 회장이 타계하자 그의 뒤는 현 구광모 회장이 원만하게 승계하고 있다.

사실 구광모 회장은 고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아들이다. 고 구본무 회장의 장자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상태에서, LG의 장자승계원칙이 지켜지기 위해 구광모 회장이 고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적됐다. 이후 구광모 회장이 4세 경영을 열자 고 구본무 회장의 동생이자 당시까지 그룹의 전반을 총괄하던 구본준 회장은 경영에서 손을 뗐다. 

결론적으로 다소 딱딱할 정도로 보이는 유교식 장자승계원칙이 확립된 상태에서, 최소한 LG에서는 형제의 난이 벌어질 일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LG는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가장 무난하게 계열분리를 진행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