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달러 부족이 아시아 신흥국의 부채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아시아 신흥국들이 지난 수년간 꾸준히 외환보유고를 늘려왔지만, 전세계적으로 달러 품귀 사태가 발생하면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와 인도의 정부 및 기업이 2022년에 상환해야 할 부채는 내년보다 67% 증가한 419억 달러(51조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2024년에는 444억 달러로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경기 침체에 대처하기 위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인도 세 나라의 부채 상환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애널리스트들이 지적했다. 이들 세 나라의 공통점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자국 경제의 상당 부분이 폐쇄되고, 통화 가치는 폭락하고, 정부 지출의 확대로 재정적자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외환보유고를 늘려오고,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위기 상황에서 활용할 지역 스왑 협정을 체결한 것을 감안할 때,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여겨져 온 이들 국가들에게 최근의 상황은 일종의 경고 신호와 같다.

싱가포르 무디스 투자자 서비스(Moody’s Investors Service)의 크리스찬 드 구즈만 수석 부사장은 "현재 이들 나라 누구도 지불 압박을 받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이들 국가들이 리파이낸싱 옵션을 선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자국 통화에 약간의 압박을 받고 있으니까요. 자금 조달 비용이 실제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인도는 예산과 경상수지에서 모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특히 우려된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정부가 재정적자 한도를 국내총생산(GDP)의 3%에서 5%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함에 따라 재정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2.5%-3%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정부 채권의 외국인 보유율은 35%에 달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루피아화(Rupiah)는 올해 현재까지 달러 대비 16% 떨어져 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인 통화가 되었다. 싱가포르의 S&P 글로벌 신용평가(S&P Global Ratings) 기업 신용등급 담당 자비에르 진 상무는 “이는 달러 부채를 리파이낸싱하려는 기업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꾸준한 자본 이탈, 부채 증가, 경쟁 압박, 특히 부동산 부문에서 운영조건 악화 등으로 최근 3년간 인도네시아 기업 전체의 신용도가 꾸준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진 상무는 “인도네시아 국영기업을 제외한 기업부문 신용등급의 거의 3분의 1이 부정적인 전망에 올라 있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향후 3개월에서 12개월 동안 이들의 신용도가 더욱 악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가 추적한 아시아의 8개 국가의 국채 시장에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국채는 이달까지 달러화 기준으로 각각 19 %와 10% 떨어지며 가장 큰 손실을 나타냈다. 인도네시아의 10년 만기 채권의 수익률은 2018년 이후 가장 높은 8.38%를 기록했고 말레이시아는 3.58%로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도

인도에서도 비슷한 압력이 형성되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펀드들은 이달 들어 3월 23일까지 인도 루피(Rupee) 표시 채권 70억 달러를 순매도했다. 정부가 13억 인구의 이동 금지를 단행한 이후 지난 23일 루피화는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쳤고 주식은 사상최대의 하락세를 보였다.

싱가포르 미즈호은행(Mizuho Bank)의 비슈누 바라단 경제전략팀장은 "시장의 매도세는 인도네시아와 인도가 매우, 그리고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두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경기 침체로부터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올해 들어 금리를 두 차례 인하하고 통화시장 개입을 늘리며 2차 시장에서 채권을 사들였다. 인도 중앙은행도 은행 시스템에 유동성을 계속 주입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프랑스계 금융회사인 나틱시스(Natixis SA)의 아시아 태평양 담당 이코노미스트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와 신흥국 담당 이코노미스트 트린 응우옌이 이달에 공개한 메모에 따르면 나틱시스는 동남아 11개국 중 말레이시아의 유동성이 가장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나틱시스에 따르면, 원자재 수출이 GDP의 15%를 차지하고 중간재 수출이 GDP의 49.5%를 차지하는 등 높은 해외 수출 의존도는 말레이시아를 특히 취약하게 만든다.

싱가포르의 BNP파리바자산운용(BNP Paribas Asset Management)의 에크 폰테이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산업 분야별로 볼 때, 현재 석유와 가스뿐 아니라 금속, 광업도 큰 압박을 받고 있으며 북아시아보다 남아시아에서 달러 부채의 비중이 높다"고 지적했다.

나틱시스 애널리스트들은 "자본계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세계 신용경색으로 인한 즉각적인 유동성 압박 외에 원자재 가격의 하락도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말레이시아와 같이 원자재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달러로 받는 수익의 감소가 수출기업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