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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인사이드] 영웅은 사라져야 한다영웅이 시스템을 대체하는 사회는 지옥이다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주춤하던 지난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전격적으로 우한을 방문했다. 중국서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당시 사실상의 칩거에 들어가 리더십이 크게 흔들렸던 상황에서 시 주석은 코로나19의 발현지인 우한 방문을 통해 사실상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인민영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실제로 그는 훠선산(火神山) 병원을 방문해 환자들과 의료진들을 만난 후 주택단지를 시찰하며 주민들과 일일히 인사하는 등 난세의 중국인들이 원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다소 늦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훌륭히 소화했다.

▲ 시진핑 주석. 출처=뉴시스

이런 가운데 그가 병원을 방문했을 당시 착용한 마스크가 눈길을 끌었다. 녹색 의료용 마스크. 이 마스크는 코로나19 사태를 조기에 감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했으나 오히려 당국의 압박을 받았던, 그럼에도 끝까지 의료현장을 지키다 사망한 영웅의사 리원량이 착용하던 마스크였다.

그런 이유로 시 주석이 리원량이 착용하던 녹색 의료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우한에 나타난것 자체가, 영웅의 이미지를 본인에게 덧대려는 정치적 의도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의사 리원량. 그는 중국의 절대권력자도 그 이미지를 차용하고 싶었던 진짜 영웅이다.

▲ 의사 리원량. 출처=뉴시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며 지금 전 세계는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확진자는 폭증하고 있으며 각 국은 사실상의 국경폐쇄를 단행하며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마트는 사재기 열풍으로 텅텅 비었고 폭력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올림픽은 연기됐고 주요 국가의 증시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중앙정부들이 헬리콥터 머니를 뿌리며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으나 글로벌 공조의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줄도산하고 있으며 실업률은 치솟고 있다.

이러한 난세에 영웅들이 나타나 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고 있다. 제2의, 제3의 영웅의사 리원량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의료용 마스크를 오랫동안 착용하고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들의 영웅적인 행보가 큰 관심을 끌었다. 그들은 최악의 전염성을 자랑하는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며 얼굴이 푹 패일정도로 마스크를 착용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진짜 영웅이다.

코로나19가 무서운 기세를 보이는 유럽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는 은퇴했던 의사 및 간호사들이 현장으로 돌아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영웅적인 행보를 보였고, 프랑스 전염병 전문가인 디디에 라울 교수는 다소 강경한 의료방식을 동원하며 현지에서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22일(현지시간)에는 현장에서 은퇴했으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다시 복귀,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다 감염증세를 보여 사망한 장자크 라자핀드라나지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불기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코로나19 영웅들을 위해 100만달러를 기부했고 유럽으로 떠난 쿠바의 의료진들에 대한 영웅적 서사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한 때 적폐청산의 대상이었던 삼성 및 LG, 현대차, SK 등 대기업들이 속속 성금을 기부하는 한편 자사의 연수원을 생활치료센터로 내놓자 국민들은 일제히 환호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에 응원의 물결이 쇄도하고 있으며,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순식간에 국민적 영웅이자 국위선양의 모범사례로 칭송받고 있다.

▲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이탈리아 의료진. 출처=갈무리

영웅이 있기에, 씁쓸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들은 진짜 영웅이 맞다. 그들은 스스로를 던져 타인을 지키고 있으며, 그 자체로 숭고함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영웅이며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웅의 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시스템이 얼마나 열악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당연하다. 지금 우리를 열광하게 만드는 영웅의 존재 자체가, 영웅이 등장하지 않으면 이 세상이 올바르게 작동할 수 없다는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빌런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나 빌런이 존재해도 체계적이고 상시적인 시스템이 작동해 빌런에 대한 우려를 낮출 수 있는 사회가 좋을까. 아니면 빌런의 등장을 막을 수 없는 사회라서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필연적으로 영웅이 등장해야 존속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을까.

당연히 전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특히 공공 의료 시스템이 낙후된 나라의 경우, 빌런의 등장을 막을 수 없어 유독 영웅에 환호하는 씁쓸한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는 지난 10년간 공공병원에 대한 예산을 줄였으며 2013년 이후 6년간 정부가 축소한 병상 수만 1만7500개에 달한다.

결국 영웅에 대한 우리의 환호는 곧 열악한 시스템에 대한 반작용이며, 그 열광적인 호응이 커질수록 숭고한 영웅들의 희생도 커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지금의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그 호응에 편승해 숨어버리고 있다. 정상일까.

▲ 이탈리아에 도착한 쿠바 의료진. 출처=뉴시스

만들어지는 영웅 걷어내고, 시스템과 문화가 핵심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상황이 도래하면 대중은 공포에 질리고 분노를 터트린다. 이런 가운데 영웅들이 등장하면 대중들은 환호하고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은 그 뒤에 숨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장면이 반복된다. 심지어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은 영웅을 창조하기도 하며, 나아가 본인을 영웅의 이미지에 덧대는 기막힌 선전술을 동원하기도 한다. 비단 코로나19만의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 내내 보였던 데자뷰다.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시스템이 필요하다. 영웅이 필요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확실하며 일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 이러한 시스템이 발전하면 그 자체가 문화가 될 수 있다. 기업경영학에서 말하는 조직문화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조직을 끌어가는 새로운 동력을 시스템에서 찾아 발전시키고 이를 일상적인 문화로 정착시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 카카오톡 10주년을 맞아 김범수 의장이 말했던 '문화가 일하는 회사'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한국, 아니 세계에 필요하다.

다행히 국내는 방역 시스템에 있어 이미 검증을 받았다. 초반 강력하고 선제적인 '시스템'을 가동해 코로나19에 있어 의미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기고한 것처럼, 한국은 코로나19 방역에 있어 민주적이면서 효율적인 전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인 모범국이다. 이를 잘 발전시키면 시스템을 넘어선 문화의 작동으로 끌어낼 수 있다. 이미 좋은 징조가 엿보인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안하고 온 국민은 대부분 충실히 따르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에서 그 흔한 사재기도 없다.

다만 경제적 관점에서는 아직 난세의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는 분위기다. 정부는 연일 공격적인 대책을 쏟아내고 있으며 지자체를 중심으로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까지 나오지만 아직은 느리며, 또 명확한 방향성이 없다. 4.15 총선 때문일까. 그 어느때보다 엄중하고 위중한 경제위기가 예상되는 가운데 지금이라도 영웅이 등장하기 전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리 구축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크게 늦지는 않았다.

최진홍 기자  |  rgdsz@econovill.com  |  승인 2020.03.26  16: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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