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시행에 대한 논의가 잠시 미뤄졌음에도 여전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둔 유통대기업과 소상공인간 치열한 찬반 논쟁은 처음 발의된 2017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전통시장 상인 단체, 소상공인 단체들은 홍익표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내용 그대로 국회를 통과해 빠른 기간 내에 시장에 적용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반면, 대기업들은 현행 개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개정안의 논의 자체를 철회하거나 혹은 기업계의 의견을 수용해 일부 내용을 수정해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양 쪽 모두의 주장에는 그를 뒷받침할 만한 나름의 근거들이 있다. 

“Everybody is loser” 

대기업들이 현재 발의돼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그대로의 시행을 반대하는 근거의 중심 논리는 하나다. 바로 “규제의 실효성이 있는가”다. 현 정부가 의도하는 유통업계의 공정한 생태계 구축과 소상공인, 전통시장 상권의 보호 등의 효과가 법 개정을 통해 과연 이뤄질 수 있는지를 재차 되묻고 있는 것이다. 관련 내용을 주제로 통계청과 유통산업을 연구하는 국내 다수의 학자들은 임의의 조사 집단을 선정한 유통산업발전법의 실효성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놀랍게도 이 연구들 중 상당수는 대기업 측 주장에 부합하는 결과들이 도출됐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자료로는 지난 2018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제시한 통계청의 ‘전통시장·상점가 및 점포경영실태조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유통산업발전법으로 대형마트의 영업 일수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 동안 전국의 전통시장 수는 1511개에서 1441개로 감소했다. 

이 자료와 함께 같은 맥락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은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서용구 교수가 연구한 ‘신용카드 사용자 빅데이터 분석’이다. 서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도입 직후인 지난 2013년 29.9%를 기록한 대형마트 소비 증가율은 3년 뒤인 2016년 –6.4%로 하락했다. 만약 규제들이 본래의 의도대로 전통시장의 상권을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라면 전통시장 소비 증가율은 늘어났어야 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통시장의 소비 증가율 역시 대형마트와 마찬가지로 18.1%에서 –3.3%로 대폭 하락했다.

그런가하면,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정진욱·최윤정 교수의 논문 ‘대형소매점 영업제한의 경제적 효과(2013)’에 따르면 2012년 대형마트의 영업일수 제한 이후 1년이 지난 2013년 대형마트 소비액은 월 평균 2307억원 감소했다. 그러나 줄어든 대형마트 소비액 중 전통시장·소상공인점포로 전환된 소비액은 월평균 515억원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규제의 본래 의도인 ‘소비 이전 효과’가 현저히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개정안의 시행에 대해 강한 의지를 표방하는 정부에 대해 대기업들의 불만은 점점 쌓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은 한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한층 강화되는 유통 대기업 규제 강화 기조를 ‘Everybody is loser(모두가 패배자)’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여기에 덧붙여 박 회장은 “대형마트 규제의 실효성이 없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실사례들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라면서 “이쯤 되면 일련의 규제는 국내 유통산업의 진정한 ‘발전’을 도모한다기보다는 정치적 의도로 대기업들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생존권 위협의 ‘현실공포’

대기업들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시행을 반대하는 관점이 산업 전반을 넓게 보는 편이라면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들이 개정안을 찬성하는 관점은 각 주체들이 체감하는 실제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다. 대기업들의 상권 확장으로 인해 생존권을 직접 위협받는 소상공인들이 체감하는 냉혹한 현실은 연구결과에서 도출되는 숫자로는 충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다. 어떤 조사에서는 매년 우리나라에서는 20개 이상의 재래시장과 2만개의 골목 슈퍼가 없어진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 이것이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들이 마주하는 현실이었다.  

지난해 9월 중소기업중앙회는 대규모유통업체(백화점·대형마트)들과 직접 거래하고 있는 국내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관련 소상공인 등 의견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과반수인 55.6%는 대규모 점포의 출점과 영업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대해 ‘찬성’이라고 답했다. ‘잘 모르겠음’은 27.4%, ‘반대함’은 17.0%의 응답률이 나타났다. 

같은 설문에서 개정안 시행 찬성의 이유를 묻는 질의에 대해서는 ‘중소상공인 매출 증가를 통한 골목상권 활성화’라는 응답이 48.9%로 가장 많았다. ‘내수부진·비용증가 등 다른 요인으로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어 추가 악재 감당이 어려움’은 24.8%를 기록하며 그 뒤를 이었다. 이번 설문조사는 대형유통업체들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닌 직접 거래를 함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소상공인 업체의 과반수가 개정안 시행을 찬성한다는 의견을 냈다는 점에 큰 의미가 부여됐다.   

이렇게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업계가 공감하는 여론을 반영해 지난 2월 20일 소상공인연합회(이하 협회)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재차 발표하며 현재의 절박함을 다시 알렸다.  

성명서에서 협회는 “유통산업발전법은 처음 제정된 이래 대기업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출을 자제시키고 전통 유통산업을 보전하며 소상공인 보호에 상당 부분 기여해 왔다”라면서 “그러나 법상 규제 대상인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초대형 복합쇼핑몰과 더불어 신종 유통 전문점, 중형 식자재 마트 등 법의 사각지대를 틈타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신형 유통체계를 실효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이 법이 개정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시행을 둔 갈등과 무관하게 정부는 관련된 논의를 올해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킴으로 종결짓고자 한 의지가 매우 확고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유통업계에 예상치 못한 몇 가지 변수들이 나타나면서 개정안 시행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도 변곡점을 맞게 된다. 바로 지난해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기록한 최악의 실적과 올해 초 중국에서 처음 발생해 현재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이다. 

그간 정부는 유통 대기업들이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상권을 위협하는 점포 출점 전략으로 많은 수익을 얻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경기 불안으로 인한 내수 자체의 침체는 유통 대기업들의 사업 근간인 오프라인 유통채널(특히 대형마트)의 고객 감소로 이어졌다. 여기에 우리나라 유통업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완전히 넘어가 버린 업계의 변화는 대형유통점포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대표적으로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성장한 국내 유통 대기업의 가장 큰 두 축인 롯데와 신세계는 각각 연간 영업이익 전년 대비 28.3% 감소, 창사 이후 최초의 분기(2019년 2분기) 영업손실 등으로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과거 대형유통채널이 업계에 떨치던 위용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에 두 기업은 모두 온라인 유통사업을 별도 법인화시켜 새로운 시장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한다.      

▲ 사진= 이토노믹리뷰 박정훈 기자

여기에 지난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타난 이후 삽시간에 확산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대형유통채널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직면한다. 가뜩이나 오프라인 유통의 수익성이 점점 떨어지는 가운데 자체 온라인 플랫폼의 구축으로 많은 자본이 투입되면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는 시점이었기에 코로나19는 대형유통채널들에게 거의 ‘재앙’으로 다가선다.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한 소비자들이 외출과 대면을 꺼리면서 대형마트의 고객은 급감했다. 확진자가 잠시라도 머물렀다 간 것으로 밝혀지는 점포는 그 규모를 막론하고 즉시 영업을 중단하고 방역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유통대기업들은 하루에 많게는 수억원 대 이상의 손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물론 코로나19는 소상공인점포과 전통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쳤으나 이는 2018년 중국발 사드 보복, 2019년 경기침체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까지 큰 악재를 연속으로 ‘두들겨 맞은’ 대기업들이 입은 피해에 비해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