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이가영 기자]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가 휘청이는 가운데 국제유가 폭락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다. 최악의 감염병이 창궐하며 각 국이 속속 출입국 중단을 선언한 가운데 원유 소비량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주요 산유국들의 증산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의 국제유가 하락을 단순히 코로나19에 따른 원유 소비량 감소 및 증산경쟁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복잡한 사정을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셰일가스, 시리아 내전, MBZ의 키워드를 알아야 한다.

셰일가스의 추억, 러시아의 분노

국제유가는 9일(현지시간)부터 대폭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24.6%(10.15달러) 떨어진 31.13달러에 거래를 마치는 등 상황이 심상치않게 돌아갔다. 이러한 기조는 지금도 이어져, 한 때 배럴당 10달러까지 국제유가가 폭락하는 일도 있었다.

국제유가 대폭락 사태의 핵심은 코로나19에 따른 원유 소비량 감소 전망, 나아가 산유국들의 증산경쟁 때문에 벌어졌다. 실제로 지난 6일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 회원 및 비회원국은 코로나19 사태 등을 맞아 감산을 결의하는 한편 또 다른 산유국인 러시아에도 비슷한 요청을 했으나 러시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감산을 고려하던 사우디는 러시아의 감산 반대에 오히려 증산에 돌입하며 치킨게임을 벌이기 시작해 국제유가가 폭락했다.

이 대목에서 두 가지 의문이 나온다. 러시아는 왜 사우디의 감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사우디는 왜 러시아와의 협상이 깨지자 즉각 증산에 나서 국제유가 대폭락을 부채질했을까?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이 치킨게임의 이면을 이해하려면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을 알아야 한다.

셰일가스는 퇴적암인 셰일이 형성되는 지층에 함유되어 있는 천연가스나 석유를 말한다. 그리고 셰일가스 업체들은 모래와 물, 화학용품의 혼합물을 강한 기압으로 분사하는 수압파쇄법을 통해 천연가스와 원유를 얻을 수 있다.

일반적인 원유의 경우 중동 등 일부 산유국 지역에만 분포했으나 셰일가스는 세계 각 지역에 고르게 분포해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40년 기준 전 세계의 셰일가스는 1조1180억㎡의 생산력을 자랑할 것으로 예상되며 기존의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이유로 에너지 패권을 장악하려는 미국이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텍사스를 중심으로 다수의 세일가스 업체들이 활동하는 중이다.

사우디는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이 비상하는 것은 우려스럽지만, 일단 감산을 통해 국제유가 하락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최근의 입장이었다. 특히 국부펀드를 통해 비전 2030을 가동,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함께 원유에 의존하는 경제를 벗어나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데저트밸리를 건설하려는 행보를 이어가는 가운데 아람코의 주가를 방어할 필요도 있었다. 또 코로나19로 원유 소비량이 줄어드는 것에 대비하려는 포석도 깔렸다.

그러나 러시아는 오히려 증산으로 방향을 틀어 사우디의 바램을 외면했다. 국제유가 대폭락의 시발점이 된 러시아의 행보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특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장기집권 플랜이 관련되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러시아는 대통령의 연임 제한 규정을 무력화하는 개헌안을 논의하고 있다. 내달 22일 이와 관련된 국민투표가 예정된 가운데 해당 개헌안은 사실상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창궐, 국제유가 폭락에 따른 경제위기 가능성은 국민을 하나로 묶고 푸틴 중심의 정치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만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미래를 두고 중요한 정치적 결단이 남은 상태에서, 러시아가 국제유가 하락을 사실상 자초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러시아의 감산 반대, 증산 결정의 직접적인 배경은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의 득세를 막으려는 포석이라는 주장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사우디와 러시아는 지금까지 적절한 감산으로 배럴당 50달러에서 60달러 수준의 유가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이 대형 플레이어로 성장하며 시장이 출렁이자 러시아는 오랫동안 부양하던 국제유가 유지의 노력에 큰 회의감을 보였다는 말이 나온다. 사우디와 공조해 국제유가를 부양했으나 그 과실은 급성장하는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이 독식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 연장선에서 러시아가 택한 증산은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핵심적인 무기다. 미국의 셰일가스는 단숨에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들썩일 수 있는 파괴력을 가졌으나, 채산성이 낮다는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내려가면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은 대부분 도산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사우디 및 OPEC은 물론 러시아는 2015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기던 시기 갑작스러운 증산을 통해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의 줄도산을 일으킨 경험도 있다.

러시아는 당시의 기억을 살려, 증산을 통해 ‘만만치않은 경쟁자’인 미국 셰일가스 업체를 정조준한 셈이다.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제1부총리는 22일(현지시간) 관영 타스통신과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국제유가 하락을 일으킨 것이 아니며 지금의 상황(국제유가 폭락)은 순전히 아랍 동맹국들이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으나 로이터는 푸틴의 최측근이자 사실상 ‘러시아의 설계자’로 알려진 이고르 세친 로스네프트 회장이 최근 “지난 3년 동안 감산으로 미국과 같은 경쟁국의 점유율만 높였다”고 말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하기도 했다.

자신감도 충만하다. 당장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있으나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횡보를 거듭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외환보유고가 충분하기 때문이며, 결국 러시아는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유가전쟁에 있어 ‘당분간은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는 와환보유고 순위에서 중국, 일본, 스위스에 이어 세계 4위다.

결론적으로 러시아가 감산에 반대하며 증산에 돌입한 것은 약간의 정치적 이유와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에 반감으로 풀이된다. 또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당장 러시아 재무부에서는 “앞으로 10년 동안 유가가 25~30달러로 움직여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사우디는 왜?

러시아에 감산을 요구하던 사우디가 막상 협상이 깨진 후 갑작스러운 증산에 돌입한 이유에도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업게에서는 ‘판을 흔들었던 경험’이 주효한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사우디는 2010년대 중반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당시 갑자기 증산에 돌입하는 행보를 연출한 바 있다. 지금의 러시아처럼 당시의 사우디도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을 노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은 채산성이 낮은데다, OPEC 회원국의 기업처럼 국영이 아닌 민영기업이라는 특수성이 있어 가격 담합을 시도할 수 없다. 결국 미국 외 주요 산유국 입장에서는 당장의 호황을 포기하더라도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을 공격할 필요가 있고, 2010년대 중반 당시 사우디의 도박은 큰 성공을 거뒀다.

물론 사우디도 최근까지는 감산을 통해 코로나19로 위축된 원유 수요에 대응하자는 기류가 강했으나, 러시아가 판을 깨버린 이상 치킨게임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다. 사우디는 러시아와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에 대항해 글로벌 원유 패권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미국 셰일가스 업체 하나에만 대항한다면 러시아와의 감산공조를 통해 충분히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으나 러시아가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떠나는 순간, 원유 패권을 지키기 위해 판 흔들기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