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적을 앞둔 완성차들이 부두에 주차돼 있는 모습(기사 본문과 특별한 관련 없음). 출처= 현대글로비스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자동차에 대한 생산·소비 현황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외국선 셧다운이 들불처럼 일고 있다. 다만 완성차업체들은 국내서 능동적으로 공장을 휴업하거나 직원 근무시간을 줄이는 등 긴축 대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최근 해외 유수 완성차 업체들이 전세계 곳곳에 있는 공장 문을 닫는 행보와 대조되는 움직임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집계한 지난 1~2월 내수 자동차 판매량은 누적 18만2133대에 달했다. 전년동기(22만2691대) 대비 18.2%나 감소했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공장이 가동을 중단함에 따라, 부품을 확보하지 못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차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가 위축된 점도 판매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

같은 기간 국내 완성차 공장의 차량 생산량도 전년 동기(61만1581대) 대비 27.9%나 감소한 44만810대에 그쳤다. 공장 가동률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음을 방증하는 수치다.

20일 현재 완성차 업체들이 지난달에 비해 부품은 원활히 확보하고 있는 반면 감소한 국내 수요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은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코로나19로 취업난과 사업장의 경영적 불확실성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소비 심리가 더욱 위축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집계한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7에 불과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생활형편·수입·지출·경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현황·전망을 지수화한 개념이다 수치가 100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소비자들이 시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소비를 줄이는 경향을 보인다.

완성차 업체들이 지난달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내 협력사 공장으로부터 부품을 수급하지 못할 땐 공급처를 최대한 확보해 차를 출고하는 게 수익성 방어의 관건이었다. 반면 부품 수급이 정상화한 대신 수요가 줄어든 현재로선, 차를 덜 만들거나 직원들이 적게 일하는 방안이 수익성에 도움될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수익 증대 요인을 늘리기보다 수익 감소 요인을 줄여 손실을 방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관측이다.

해외 시장 가운데 미국에 자동차 관련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 잇따라 현지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테슬라, 토요타, 지엠 등 주요 기업들은 각 공장에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도 직원을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하고 줄어든 자동차 제품 수요에 대응하는 취지에서 셧다운을 단행하고 있다.

박재용 이화여대 미래사회공학부 연구교수는 “최근 국내 자동차 시장에선 신차 효과를 제외하면 차량 라인업 전반적인 수요를 끌어올리기 어렵다”며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각 완성차 업체 노사가 제품 생산량 조절에 관한 합의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산차 5사, 임단협·고용정책에 발 묶여 대책 마련에 고심

그럼에도 국산차 업체들은 현재 국내 공장을 휴업하거나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등 방안을 고려하진 않고 있다. <이코노믹리뷰>가 국산차 5사를 취재한 결과 어느 업체도 국내 공장 휴업, 근무시간 단축 등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타사에 비해 이번 1분기 폭넓은 신차 라인업을 갖춘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양사는 오히려 공장 직원의 특근 시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양사의 노사는 현재 근로시간을 주 48시간에서 56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을 도입하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 올해 출시한 GV80, 그랜저, K5, 쏘렌토 등 신차 라인업 뿐 아니라 팰리세이드 등 이미 출시됐지만 높은 인기로 수개월 째 출고 지연된 모델을 가진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재 현대차 노사와 부품사 등 주체들이 모여 현재 업황에 대응할 수 있는 특근 체계를 두고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산차 5사는 비인기 차종의 생산 공정 등 가동 효율이 저하한 생산 현장에 대한 대책에 관해선 말을 아꼈다. 업체 외부에선 근로자 근무 시간을 조정하기 위한 노사 양측간 특별 합의에 많은 부담이 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예를 들어 공장 가동률을 임의로 줄일 경우 이에 따른 임금 저하를 우려한 노조가 반발하며 사측과 대치할 수 있다.

가동율을 임의로 줄이더라도 사측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추가 발생하는 것은 고민거리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달 초~중순 부품 수급 차질로 공장 가동을 멈춘 기간 동안 해당 공장 근로자들에게 기존 대비 70% 수준의 급여를 지급했다. 완성차 업체는 공장을 어떤 식으로 가동하든 크고 작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차선(次善) 대신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실정에 처했다.

업계에서는 국내를 비롯한 전세계 시장에 도래한 위기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한 완성차 업체 모든 구성원이 ‘대승적 차원’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국 등 외국과 비교할 때 고용 정책을 비롯한 대내외적 요인이 천차만별이라 코로나19 대책 또한 상이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국산차 업체별 노사는 향후 사태가 지속될 경우 이대로 남아 심각한 타격을 감수하느니 선제적으로 고통을 분담할 방안을 함께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