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으로 간 진화론> 앤드류 로 지음, 강대권 옮김, 부크온 펴냄.

코로나19로 인해 시장이 대혼란을 겪고 있다. 투자자들로서는 기존의 투자 이론이나 고수들의 경험칙 만으로 지금의 불확실한 시장 상황을 파악하고 헤쳐 나가기가 버겁다. 이 책은 한 발 물러서서 금융시장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특별한 시도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적응적 시장가설(Adaptive Market Hypothesis)’을 집중 소개한다. 전통적인 투자 패러다임을 보완하는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이다. 적응적 시장가설은 투자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다윈의 진화론을 동원한다. 생물학 뿐 아니라 심리학, 신경과학, 컴퓨터과학, 윤리학 등 다양하고도 광범위한 최신 연구 성과들이 망라된다.

그 동안 학자들은 시장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고 말해왔다. 시장은 가용한 모든 정보를 반영하고 있으며,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언제나 옳다고 가르쳐 왔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의 거물들도 어설픈 직관에 의존하지 말고, 시장을 이기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 같은 ‘효율적 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에 의하면, 최상의 투자원칙은 패시브 투자전략에 따른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장기간 보유하는 것이다. 인덱스 펀드는 이 같은 개념을 기반으로 탄생해 수천 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이 투자계를 지배하는 지난 40년 동안에도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피터 린치 등 시장과 겨뤄 이기는 투자자들이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특히 독자적인 수학기법으로 선물거래 회사를 운영하는 제임스 사이먼스의 ‘메달리온 펀드’는 지난 1988년 이후 11년 동안 무려 2478.8%의 총수익률, 연환산 34.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2016년 ‘포브스’는 전직 교수 제임스 사이먼스의 재산이 155억달러에 달하며, 2015년 한 해에만 15억달러를 벌었다고 추정했다. 사이먼스는 인덱스 펀드에 투자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시장 상황이 여유가 있을 때는 투자자들이 경제환경에 충분히 적응하면서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상황이 폭력적으로 변화할 때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공포의 감정은 적정한 순간에 손실을 제한하게 하기 보다는 실수를 두 배로 만들어, 바닥에서 팔고 꼭지에서 다시 사게 만든다. 결국 인간의 본능은 인간을 시장이라는 공간에서 매우 위험한 존재로 만들고 만다.

적응적 시장가설의 관점에서 보면, 금융시스템은 물리적이거나 기계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금융시스템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상호연관된 생물종들이 환경변화 속에서 재생산을 반복하는 생태계의 일종이다.

적응적 시장가설에서 투자자는 최고의 선택을 손쉽게 계산하지 못한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행동편향을 갖고 있으며, 그들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휴리스틱도 갖고 있다. 휴리스틱은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쉽고 빠르게 판단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들의 행동은 매우 ‘경로 의존적(path dependent)’이다. 나쁜 것과 좋은 것을 구별하는 선택은 적당히 만족스러울 뿐이지 반드시 합리적이고 최적일 필요는 없다.

적응적 시장가설하에서 가격은 정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공포와 탐욕같은 감정적 반응에 의해 합리적 수준을 이탈해 형성될 수도 있다. 투자자들이 감당하는 리스크에 비해 기대수익이 현저히 낮을 수도 있다. 장기투자가 좋지 못한 생각일 수도 있다. 대중의 지혜를 만들어 주는 경쟁적인 이윤추구의 양상이 때로는 집단의 광기에 지배되기도 한다.

적응적 시장가설은 위기를 ‘인간의 불완전한 행동’의 차원에서 본다. 이 이론에서 보면 금융위기는 자유경제체제 하에서의 인간 행동이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현상의 특수한 경우일 뿐이다. 자유경제체제나 불완전한 인간 행동, 이 둘 중 하나를 제거한다면 금융위기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인간 행동은 위기를 만든다.

적응적 시장가설의 5가지 명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항상 합리적이지도 항상 비합리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진화의 힘에 지배받는 특성과 행동을 가진 생물학적 개체일 뿐이다.
▲우리는 행동편향을 보이며 명백하게 최선이 아닌 결정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고, 우리의 휴리스틱을 부정적인 피드백에 비춰 수정할 수 있다.
▲우리는 추상적인 사고능력, 미래에 대한 가정과 상상,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 예측 등을 바탕으로 환경 변화에 대비한다. 생각의 속도로 이뤄지는 이런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과정과는 다르지만 서로 연관돼 있다.
▲금융시장은 우리가 행동하고 배우면서 인간관계, 사회, 문화, 정치, 경제 그리고 자연환경의 변화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을 통해 움직인다.
▲생존은 경쟁, 혁신 그리고 적응을 강제하는 궁극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