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부터 미국 재정 적자가 올해 1조 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온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는 여기에 1조 달러 이상이 추가로 들어가는 코로나 경제 구제책을 검토하고 있다.    출처= Market Watch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미국 정부가 얼마나 많은 빚을 감당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부터 미국 재정은 이미 9월 30일로 끝나는 회계연도에 재정 적자가 1조 달러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지난해 10월 1일 현 회계연도가 시작된 이후 지난 5개월 동안 미국 정부 부채는 이미 6250억 달러(800조원)까지 늘어났다.

현재 분석가들은 코로나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의 재정 적자가 금융 위기 때인 2009년의 1조 5000천억 달러 기록을 훨씬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한다.

무디스 애널리틱스(Moody's Analytics)는 올해 미국 재정 적자가 2조1000억 달러, 내년에는 1조8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JP모건 이코노미스트들은 올해 1조9000억 달러, 내년 2조500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경제 전망이 워낙 유동적이다 보니 분석가들의 예측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오바마 정부 시절 재무부에서 일했던 루이스 알렉산더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3주 동안 적자 전망치를 두 차례나 수정했는데, 이제 세 번째 수정해야 될 판”이라고 말했다.

재정 적자란 세금과 기타 원천에서 나오는 정부 모든 세입이, 국방에서부터 사회보장, 실업급여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모든 지출보다 얼마나 모자라느냐를 나타내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한다.

현재 미국의 적자가 급증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가계 소득과 기업 이익의 감소로 연방 세수가 감소할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코로나 사태로 실업률이 증가하면 실업보험이나 식권 같은 안전망 프로그램에 대한 지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 의회와 트럼프 정부가 여기에 1조 달러 이상이 들어가는 코로나 경제 구제책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방 정부뿐 아니라 주정부들도 비슷한 압력에 직면해 있다.

현재 연방 정부 총 누적 부채는 23조 5000억 달러로, 여기에는 정부 부채뿐 아니라 사회보장 신탁기금 같은 정부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부채까지 포함된 것이다. 정부 부채가 이런 추세로 늘어나면, 국내총생산(GDP)의 대비 비율 기준으로 볼 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수준도 넘을 수 있다.

로렌스 커들로 백악관 경제보좌관은 18일 폭스(Fox)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어느 시점에선가는 부채와 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지만, 위기나 전쟁 중에는 차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특이한 점은, 지금의 코로나 같은 위기가 도래하기 전에 특별한 불경기나 심각한 상황이 없었음에도 이미 부채가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평온하거나 경제가 확장되는 시기에는 부채 증가를 완화시키거나 심지어 적자를 줄이기까지 하는 것이 보통이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 미국 경기가 호황일 때 미국 정부는 흑자 예산을 유지하며 부채를 상환했다.

그러나 경제가 좋았던 2019년에도 국내총생산(GDP)의 4.7%에 해당하는 적자가 발생했고, 이는 이미 2001년 경기 침체 때의 수준을 넘어서 1990-1991년 경기 침체 때 수준에 근접한 수치다.

경제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엄청난 부채와 재정 적자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지에 대해 수 년 동안 논쟁을 벌여왔다. 금리는 초저 수준을 유지했고 인플레이션도 매우 낮았다. 덕택에 정부는 아주 적은 비용으로 차입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단기 금리는 0에 가까웠고 10년 만기 채권 금리는 1% 대에 머물렀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낮은 성장률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으면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으며 같은 상황에서 GDP 대비 부채 비율이 크게 증가해 경제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올리비에 블란차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제로 금리라 하더라도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위기가 닥치면 투자자들은 정부 채권 같은 안전한 자산을 찾는 경향이 있다. 또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이 매우 낮은 시기에 정부 채권이 투자자들에게 어필하기도 한다. 두 가지 요인 모두 금리가 낮게 유지될 것이며 정부가 부정적인 영향 없이 대규모 적자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경제학자들은 정부 재정 적자가 높아진다는 위협만으로 금리가 오르고 성장에 역행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제프리스(Jefferies LLC)의 채권투자그룹 토마스 시몬스 수석 부사장은 "미국의 높은 재정 적자는 정부 채권 공급 측면에서 시장이 단기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현재의 미국 재정 적자 수치가 다소 무섭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서치회사 코너스톤 매크로(Cornerstone Macro)의 로베르토 펄리 이코노미스트는, 만일 투자자들이 미국의 재정 붕괴 전망에 대응했다면 미국 국채 수익률이 독일 채권보다 크게 높아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 채권 수익률은 유럽의 다른 국가 채권 수익률과 유사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책임은 중앙은행(연준)에 있다. 연준은 시장의 공급 압박을 완화하는 측면에서 2007-09년 금융위기 때의 양적완화(QE) 프로그램에서 했던 것처럼 미국 국채를 사들일 수 있다.

다행히 연준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연준은 2007년 12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미 국채 보유액을 1조7000억달러까지 높였다. 이후 점차적으로 보유고를 축소하기 시작했지만 이제 다시 상황이 바뀌었다. 연준은 지난 15일, 5000억 달러의 채권과 2000억 달러의 모기지 담보 증권을 추가로 매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준의 이런 매입에 유일한 제약조건은 인플레이션이다. 연준이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동안 많은 비평가들은 양적완화가 금융시스템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정부적자를 지원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연준의 2% 목표치를 끈질기게 밑돌았다. 이론적으로,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통제되는 한 정부 채권을 계속 사들일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경제보좌관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정책 입안자들은 지금 당장 적자를 지나치게 우려할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이틀간의 연준의 행보는 재정정책이 덜 하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통화정책이 양적완화를 확대하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는 “만일 정부가 지원하지 않아 경제가 무너진다면, 붕괴를 막기 위해 고안된 수 많은 프로그램들은 다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