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현대자동차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 현대차가 코로나19 사태를 비롯한 비상시국에 처한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했고 정 수석부회장이 이를 수용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최근 재계 분위기를 고려할 때 정 수석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나왔으나, 비상시국을 맞아 정면돌파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 수석부회장의 그룹 내 주도력도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출처=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는 19일 침체된 글로벌 자동차 산업과 급변하는 산업 패러다임에 대응하려는 취지로 정 수석부회장을 이사회 의장에 임명했다.

현대차는 “현대차가 확대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 위기와 지속 변화하는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경영 이해도가 높은 정 수석부회장이 의장을 맡음으로써 각종 사업 환경에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현대차 이사회 의장은 정 수석부회장의 리더십 공고화 측면에선 유의미한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직책이다.

현대차 정관에서 정한 이사회 의장 권한은 이사회를 소집하고 이사회 의안을 제안할 수 있는 점 정도다. 사내·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 진행에 관한 중요사항을 결의하고 이사·경영진의 직무집행을 감독한다. 정 수석부회장이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이어 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차의 이사회 의장을 맡은 것이 정몽구 체제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유다.

현대차 이사회의 이번 결정은 ‘정 수석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에 임명된 사실’보다 ‘이사회 의장에 정 수석부회장이 오른 점’에 더 큰 시사점이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가 현재 직면한 과제들을 헤쳐 나가는데 필요한 리더십을 정 수석부회장에게 요구한 셈이다.

현대차의 2010~2019년 10년 간 수익성은 꾸준히 약화했다. 금융데이터 솔루션 딥서치에 따르면 작년 연결 기준 현대차 매출액은 105조7500억원으로 최근 10년 간 꾸준히 올라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2012년 각각 8조4400억원, 9조600억원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뒤 2018년 2조4200억원, 1조6500억원으로 최하점을 딛고 작년 겨우 반등했다.

수익성 높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해외 국가별 니즈에 맞춘 공략 모델을 적극 앞세워 성과를 거둠으로써 매출액은 지속 끌어올렸다. 반면 갈수록 격화하는 업체 간 경쟁에 대응하고 친환경차 등 미래차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맞춰 영업비용을 쏟아부음에 따라 마진이 줄었다.

현대차는 다만 단기적으로 나타난 이윤 감소보다 중장기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기반을 마련하는데 현재 더욱 힘을 쏟아야 하는 실정이다. 현대차는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등 첨단 기술 뿐 아니라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차량공유 서비스 등 전에 없던 사업 분야의 역량을 확보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가 친환경성 향상 등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등 전례없는 시장 환경에 처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경영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쇄신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현대차는 1970년생으로 올해 51세를 맞은 ‘젊은 피’ 정 수석부회장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작년 3월 현대차 대표이사를 맡은 이후 미래 모빌리티에 61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는 ‘2025 계획’을 선포했다. 또 작년 말 이후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 적극 대처하는 등 눈에 띄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출처=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 직책 유지, 정의선 체제 향한 ‘과도기’

정 회장이 1938년생으로 올해 83세를 맞아 재계에서 연장자에 속하는 점은 정 수석부회장의 ‘젊고 참신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부분이다. 정몽구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 이후 2017년부터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 최근 수년 간 이사회 참석율 0%를 기록하는 등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다만 ‘정몽구 시대’의 종결로 받아들이는 것은 시기상조다. 그룹 경영 배후엔 정 회장의 존재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2018년 9월 당시 정의선 사장이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할 당시 현대차는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정 신임 수석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의 경영업무 전반을 총괄하며 정몽구 회장을 보좌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기아차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초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등 전세계에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키기도 했다.

다만 정 수석부회장의 이사회 의장 임명이 그룹의 ‘정의선 체제’로 향하는 과정에 한단계 진전이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정 수석부회장이 작년 3월 현대모비스와 현대자동차의 사내이사 이자 대표이사에 오른 데 이어 이번 의장을 맡은 근거로 높은 전문성이 제시됐다. 의장 임명은 정의선 체제가 도래하기 위한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현대차그룹 안팎으론 정몽구 회장이 회장 사퇴를 공식 선언하는 때가 정의선 체제의 시작점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 수석부회장은 사업에서 꾸준히 성과를 거두고 미래 먹거리를 선제적으로 찾아 나서는 등 활약함으로써 현대차의 기업 이미지를 대폭 개선했다”며 “이사회가 의장으로 임명하는 등, 정 수석부회장에게 어려운 업황을 이겨나갈 추진력을 보태는 것은 현재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