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일 기자]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대형 금융사의 파산과 구조조정이 전 세계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전이됐다면, 현재는 반대로 기업들의 위기가 금융사들에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유가 폭락까지 겹치면서 항공, 유통뿐만 아니라 정유·화학 등 주요 기간 산업까지 경제 전반이 미증유의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다.

항공, 건설, 정유, 조선 등 산업은 실적 충격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대기업이라도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호텔, 유통, 영화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자동차, 정유, 석유화학까지 전방산업의 부진으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세계 주요 기관들은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이 장기화될 경우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12일 한국 기업들이 수출과 교역 의존도가 높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신용등급 하락 압력에 취약하다고 밝혔다.

S&P는 등급을 부여한 한국 기업 가운데 23%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정유, 화학, 철강, 유통, 자동차, 항공, 전자 업종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다.

박준홍 S&P 이사는 “한국 기업 가운데 올해 상반기 실적이 저하되는 곳이 많을 것이며 등급 하락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기업은 돈을 빌리는데 더 많은 이자비용을 지불해야 된다. AA이상 등급을 유지하던 기업이 경우 신용등급이 한 단계 내려가면 차입금 금리가 0.04%포인트 상승한다. 투기등급인 BBB등급은 0.74%포인트의 금리를 추가로 내야 한다.

더욱이 이번 코로나19가 그간 빚으로 연명해오던 좀비 기업들에 대한 부실을 악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의 ‘2018년 기업경영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은 조사 대상 기업의 35.2%로 나타났다.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이라는 것은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계기업들은 채무상환능력이 떨어져 저신용등급이 많다. 이번 코로나19와 유가 폭락으로 치명타를 입을 확률이 높아졌다.

 

현 상황은 글로벌 금융위기 보다는 1998년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1990년대 일부 기업들은 금융 기관에서 무리하게 자금을 빌려 사업을 확장했다. 하지만 일본의 엔화 약세에 밀려 수출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경상수지는 지속해서 적자를 이루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1997년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삼미, 진로, 대농, 한신, 기아, 해태, 뉴코아 등 대기업들이 차례로 쓰러졌다. 대기업의 잇단 부도로 이들 기업들에 자금을 빌려줬던 조흥, 제일, 상업, 서울, 한일은행 등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더욱이 아시아 전체에 금융 위기가 오면서 외국 채권기관이 채무 상환 기간을 만기 연장해주지 않아 외화보유고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당시 외국에 차입한 돈은 1500억달러가 넘었지만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40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마불사’ 즉, 대기업들은 살아남을 것이란 전망이다. 가계 소비까지 얼어붙으면서 자영업자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총생산의 60%를 차지하는 서비스업이 붕괴 조짐을 보이는 것이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코로나19로 수요·공급이 동시에 줄면서 기업·자영업자 이익과 가계 소득이 급격하게 감소하면 이들이 진 빚은 상환하기 어려워진다. 지난해 말 기준 338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자영업자의 빚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곧 소비자이기도 하다”면서 “기존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 겨우 버텨왔는데 이번 사태로 잃었던 수요를 다시 되돌릴 순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자동차는 나중에라도 사면되지만 이발 한 번 안했던 것을 나중에 두 번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경제 체력이 약한 영세자영업자,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위기에 큰 처했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신한·KB·하나·우리·NH 등 5대 금융지주는 금융시장 불안이 고조되면서 본격적인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은행권은 올해 세웠던 모든 계획이 백지화했다. 코로나19와 유가폭락, 0%대 기준금리는 모두 시나리오에 없던 것들이다. 최악의 경우엔 2008년 금융위기때의 충격을 능가할 것이란 전망 속에서 컨틴전시 플랜을 세우고 있다.

특히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리스크 관리와 건전성에 만전을 기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실물경제 위축으로 인한 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부실 또는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은도 “교역여건 악화, 경기둔화 등으로 기업 채무상환능력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한계기업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신용위험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은행권에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