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출처= 현대자동차그룹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현대자동차가 19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이사회 의장 선임 여부를 결정한다. 업계에선 현대차가 이사회의 투명성과 기업 가치를 모두 향상시키기 위해 정 수석 부회장을 의장에 선임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주로 나오는 분위기다. 반면 코로나19 사태 등 급격히 증폭된 글로벌 시장 위기에 맞설 리더십을 정 수석부회장에게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는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대강당에서 제52회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현대차가 이번 주총에서 부의한 안건은 제52기 재무제표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사내·사외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 크게 다섯 개다.

안건 가운데 지난 16일 사내이사 임기가 끝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재선임 건은 담기지 않았다. 정 회장이 현대차 대표이사 회장직과 현대차 지분(5.33%)은 유지하되 현대차와 그룹의 사업 상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 등 의장에선 물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는 지난 3일 공시한 정기 주총 소집공고를 통해 각종 안건을 공개했다. 이후 업계에선 정 회장의 장남인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경영을 본격 승계함을 의미하는 신호로 분석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재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그룹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사내이사를 모두 맡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 상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주력 계열사를 이끌어 감으로써 그룹 전반의 경영을 주도할 동력을 일부 확보한 셈이다. 정 수석부회장이 이날 정 회장에 이어 현대차 이사회 의장을 맡을 경우 부친인 정 회장의 그룹 경영 주도권을 물려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시장 해석이 나온다.

▲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사옥. 출처= 현대자동차그룹 공식 홈페이지 캡처

경영 투명성이냐, 강한 리더십이냐…현대차 이사회 딜레마

다만 국내 재계의 최근 추세와 코로나19 등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고 있어 정 수석부회장이 의장을 맡을지는 미지수다. 이사회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기업 외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 수석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을 경우, 현대차가 현재 직면한 각종 경영 상 과제를 해결하는데 추진력이 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미·중 무역갈등, 중국 성장세 둔화 같은 불확실성 요소들로 인해 글로벌 자동차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 현대차가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자동차 사업으론 기업 위상을 높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차는 수년 전부터 수소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를 상용화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오고 있다. 현대차는 작년 12월 대표 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미래차 사업을 골자로 한 2025 계획을 공개했다. 2025년까지 61조1000억원을 투입해 자동차 전동화, 자율주행, 개인용 항공차 등 분야의 역량을 강화할 예정이다.

현대차가 이날 상정한 안건 가운데 정관변경의 건을 통해서도 사업 목적으로 ‘기타 이동수단’과 ‘전동화 차량 등 각종 차량 충전 사업 및 기타 관련 사업’을 추가할 방침이다. 내연기관차를 중심으로 한 사업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장 트렌드에 부응하기 위해선 올해 50세로 비교적 젊은 정 수석부회장의 참신한 감각이 요구될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반면 정 수석부회장이 의장을 맡지 않을 가능성이 배제되진 않는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최근 오너의 자제가 이사회 의장을 맡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오너의 2~3세가 경영권을 물려받을 경우 전 세대 오너가 경영에 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나머지 이사들이 사업적 결단에 ‘거수기 역할’하는데 그치는 등 우려에 따른 결단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도 현재 회원국에 기업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의장에 사외이사를 선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날 기준 국내 재계 주요 그룹 가운데 삼성전자와 포스코, ㈜SK 등 세 기업은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현대차는 현재 이사회 정관 상 오너나 오너 자제가 기업 대표이사와 함께 자동으로 이사회 의장에 오르도록 정해두고 있지 않다.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을 제한하는 내용도 없다.

현대차가 정 수석부회장 아닌 이사를 이사회 의장에 선임할 경우 외자(外資)를 확보하는데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대표이사 또는 오너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함으로써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투명 경영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앞서 작년 말 기업가치 향상을 명분으로 경영 쇄신을 공격적으로 요구하던 글로벌 헤지펀드 운용사 엘리엇으로부터 벗어났다. 엘리엇이 당시 보유하고 있던 현대차 지분 2.9%를 매각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현대차 경영진은 엘리엇을 떠나보냄으로써 기업 경영의 추진력을 더욱 얻었지만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본 투입은 더욱 절실해졌다. 현대차의 시가총액은 올해 들어 지난 17일까지 종가 기준 8조6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도 코로나19로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이번 1분기 실적을 부정적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