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17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의견을 나눈 후 18일 중위소득 100% 이하에 해당하는 117만7000 위기 가구에 최대 50만원을 긴급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1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부유층을 제외한 시민들에게 1000달러를 지급할 것이라는 정책이 발표된 가운데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정부는 4조원의 예비비 집행, 16조원의 경기부양책에 이어 17일 추가경정예산이 국회를 통과한 상태에서 18일 공격적 외화조달 및 해운, 항만 항공 업계에 대한 500억원 수준의 지원책을 발표했다. 그 연장선에서 추가 경제 대책이 논의되는 가운데 정부의 다음 카드가 재난기본소득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재난기본소득 논의 롤러코스터
재난기본소득은 이재웅 쏘카 대표가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론화시키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이 대표는 "50만원씩 1000만명에 주면 5조, 2000만명에 주면 10조원이다. 20조원의 추경을 준비한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10조원이 될 것"이라면서 "지금 시기에 재난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은 그 돈을 받아서 저축하지 않는다. 밥을 먹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출근하고, 마스크를 사고, 집세를 낸다. 버티기 위한 소비를 한다. 최저 소득이 있어야 사람이 버틴다"고 강조했다.

일상적 상황에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기본소득제도는 이미 시도된 바 있다. 핀란드에서는 2017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실업수당을 받던 이들 가운데 무작위로 2000명을 선정해 매달 560유로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정책을 진행했으며 캐나다 온타리오에서도 2017년부터 빈곤층 주민 4000명에게 3년간 매달 약 120만원을 제공하는 실험을 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물론 성남시장 시절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비슷한 실험을 했다.

다만 일상적 상황에서의 기본소득제도는 헛점이 많은 편이다. 시민의 행복도는 상승했으나 실질적인 경기 부양책으로 순기능을 작동시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재난기본소득은 사정이 다르다. 취업률이 떨어지고 경제 성장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등장한 기본소득실험도 '위기 극복'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에 비하면 그 심각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상태에서 재난기본소득은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가장 확실한 경기부양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3%에서 2.1%로 0.2%포인트 낮췄으며 무디스는 2.1%에서 1.9%로 하향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난 상황을 가정한 재난기본소득 논의는 순식간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주로 지자체와 여당에서 논의되었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소득제도 자체에 찬성하는 입장이라 재난기본소득에 의욕적이며 여당에서도 4.15 총선을 앞두고 재난기본소득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며 여당에서는 추경 증액에 더욱 집중하며 재난기본소득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으며, 이와 관련된 논의 동력은 급격히 상실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에서는 재난기본소득에 꾸준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심지어 '퍼주기 프레임'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상황 달라졌다..전격적 시행
정치권에서 지자체를 제외한 대부분이 재난기본소득에 거리를 두던 상황이지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재난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16일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지난 13일 전국 18세 이상 505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재난기본소득 제도에 찬성하는 사람은 48.6%, 반대하는 사람은 34.3%로 집계됐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에서 17일(현지시간) 무려 1조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추진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금지급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 즉시 미국인에게 수표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 "2주 이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액수를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블룸버그는 그 액수가 성인 한 명당 1000달러에 이를 것이라 봤다. 트럼프 대통령도 기자회견 내내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크게 가겠다"고 누차 강조한 만큼, 말 그대로 파격적인 조치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높다.

미국이 제시한 '수표를 보내는 방안'은 재난기본소득 차원에서 단행되는 정책으로 보인다. 현재의 상황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하다는 인식이 나오는 가운데 양적완화 등 일반적인 경기 부양책이 시장에 통용되지 않자 '파격적인 아래에서 위로의 경기 부양책'을 제시한 셈이다.

국내서도 재난기본소득 논의가 빨라지고 있다. 17일 수도권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서울시청에서 코로나19 관련 회의가 열린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정식으로 문 대통령에게 재난기본소득 제도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서는 재난기본소득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나, 관련 논의가 재차 논의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서울시는 아예 선제적인 조치에 나섰다. 중위소득 100% 이하에 해당하는 117만7000 위기 가구에 50만원을 긴급하게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상황은 여전히 엄중하고 민생경제는 유례없는 비상상황을 맞고 있다"면서 "추경에 재난사각지대를 직접적으로 지원할 재난긴급생활비가 포함되지 않았다". 지금의 추경으로는 코로나19 보릿고개를 넘기에 너무나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시는 재난긴급생활비 지원을 위해 327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추경 예산으로 재난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설명이다. 지원대상은 기존 지원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근로자, 영세 자영업자, 비전형 근로자(아르바이트생, 프리랜서, 건설직 일일근로자 등) 등이 포함된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 모바일 방식의 지역사랑상품권 및 선불카드를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1~2인 가구는 30만원, 3~4인 가구는 40만원, 5인 이상 가구는 50만원으로 1회 지원되며 지원금액을 6월말까지 제공한다.

박 시장은 "기존 복지지원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공연예술인, 아르바이트생, 시간강사 등 코로나19로 인해 소득격감을 겪고 있는 중위소득 100% 이하의 실질적인 피해계층이 대상"이라며 "유례없는 사회적 재난상황에 유례없는 지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50만원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 "정부와 국회는 전례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전격적이고 파격적인 논의를 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서울시의회와 함께 '서울특별시 저소득주민의 생활안정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도 추진하며 다양한 보완책도 마련할 예정이다.

당정청 차원에서도 재난기본소득 논의에 있어 긍정적인 기류가 만들어지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위원장은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당정청 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지자체가 하는 것이 중앙정부가 준비하는데 필요한 시범 실시과정의 의미도 있다"면서 서울시의 행보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이어 "지자체의 결단에 대해 저희는 환영한다"면서 2차 추경을 빠르게 준비하는 한편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에서는 아예 10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무너지면 일자리가 사라져서 경제위기 회복이 불가능해진다"면서 "전 국민에게 100만원 재난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 논란 딛고 결단내리나
재난기본소득 제도 논의가 빨라지며 서울에서 이에 준하는 정책까지 가동된 상태지만, 아직 뚜렷한 방향성이 100%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정청까지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공감대를 이뤘으나 아직 행정부에서는 미온적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당 부분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지금의 상황은 금융분야의 위기에서 비롯됐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양상이 더욱 심각하다”면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주재하는 비상경제회의를 바탕으로 특단의 대책과 조치들을 신속하게 결정하고 강력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18일 청와대에서 주요 경제주체와 원탁회의를 통해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상황에서 재난기본소득 제도가 추경에 이은 새로운 경기 부양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중이다.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실효성을 두고는 여전히 논란이 크다. 재난기본소득이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기본소득제도의 폐혜를 감수하면서도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정반대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과 서울시의 정책 모두 부유층을 제외한 재난기본소득 정책이지만, 과연 이러한 '기본소득보장'이 경제의 활력으로 100% 수렴될 수 있다는 장담도 어려운 실정이다. 추후 경제위기 대응에 있어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