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권유승 기자] 제로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보험사들의 생존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저금리‧저성장‧저출산으로 수익성 악화에 신음하고 있는 보험업계에 최근 0%대 금리까지 더해지면서 역마진 리스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생명보험사 고위관계자는 “리먼브라더스 사태때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 보험사들 망할 것 같아 잠도 안 온다”고 토로했다.

보험사들은 자산 포트폴리오 조정, 사차익‧비차익 강화 등 원론적인 방안 말고는 특별한 대책도 없다는 입장이다. 해외선례를 참고해, 보험업계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 금리인하 직격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6일 임시 회의를 개최하고 기준금리를 기존 1.25%에서 0.75%로 0.50%포인트 인하했다.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0%대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1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기존 1.0~1.25%에서 0~0.25%로 1.00%포인트 인하했다.

금리 인하 소식에 보험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특히 이자율차손익(이차익)의 비중이 큰 생보사들의 경우 금리인하에 따라 역마진 리스크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의 역마진이란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로 투자한 수익률이 지급해야 할 이자율보다 낮아지는 상황을 말한다. 과거에 판매했던 고금리 확정형 상품이 많을수록 보험사들의 타격은 더 심해진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생보사들의 자산운용수익률은 3.5%를 기록했다. 고객에게 돌려줘야 하는 보험료 평균 적립이율인 4.25%보다 0.75%포인트 낮은 역대 최저치다. 이번 금리인하로 장기 국고채 금리도 떨어질 것으로 전망, 생보사들의 자산운용수익률은 더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금리하락에 생보사들의 실적은 악화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1~12월) 생보사 당기순이익(잠정)은 5조3367억원으로 전년 대비 1조9496억원(26.8%) 감소했다. 금리하락에 따른 보증준비금 증가로 보험영업손실이 확대(△7820억원)된 영향이 컸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저금리 직격탄에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 이에 대한 뚜렷한 타개책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금리인하 기조는 시장의 영역이다 보니 관련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며 자산 포트폴리오 조정 등에 나서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한 보험사 자산운용전략 담당자는 “일정 주기별로 모니터링을 하면서 시장 흐름을 체크해 저금리에 대한 영향도 분석을 하고 있다”며 “자산 종류별 점검을 시행하고는 있지만, 추가적으로 기준 금리가 인하 됐다고 관련 TF를 꾸린다든가 획기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할 수 있는 큰 방향은 이미 다 정해져 있다. 좋은 상품을 개발해서 영업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물론, 대체투자를 확대하고 안정적인 장기채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방법뿐이다. 원론적인 방안 말고는 특별히 대응책이라고 꼽을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 해외투자 한도 상향, 계약 전환 등… 해외 선례 따라야

보험사들이 효과적인 자산운용을 하기 위해서는 해외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현재 보험사들의 해외투자 한도는 30%다. 한화생명, 교보생명,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 NH농협생명 등 주요 생보사들의 해외 투자 비중은 20%를 상회한 상태다. 보험사들의 해외 자산운용 한도를 50%까지 상향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0년대 전후에 보험사 연쇄 도산을 겪은 바 있는 일본의 경우 이미 지난 2012년 외화자산에 대한 소유한도 규제를 폐지했다. 영국, 독일 등 유럽연합(EU)은 물론 미국 뉴욕주도 해외 자산운용에 대한 직접적인 제한이 없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대 초 1%대의 저금리환경이 시작된 대만의 경우 해외투자 확대로 금리역마진을 완화해, 수익성 및 건전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만 생명보험산업의 전체 운용자산에서 해외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기준 69%에 달한다. 최근 15년간 해외투자 비중을 꾸준히 늘려온 결과다. 당시 대만 생보사는 국채 10년 금리가 0~1%대임에도 불구하고 운용자산수익률은 4%대를 기록했다.

황인창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투자 한도와 같은 사전·직접 규제는 보험사의 과도한 위험 부담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지만, 보험사의 자산운용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자산운용 역량을 제고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현재와 같은 저금리 환경 하에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사전·직접 규제를 완화해 보험사의 자산운용 효율성 및 역량을 제고하고, 이익유보를 통해 자본 확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보험사 입장에선 해외투자 한도를 늘리면 그만큼 바라볼 수 있는 투자처가 넓어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자산운용수익률을 높이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보험사들이 보장성 보험으로 수익성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역마진이 발생했었던 과거 일본 생명보험업계는 보장성보험으로 체질개선을 하면서 위험률 차익(사차익)으로 손해를 상당 부분 보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역시 보유계약을 전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적극 시행하도록 하고, 소비자 위주 지급보험금 정책을 완화해 보험금 누수를 막아야 할 것이란 분석이다. 현행 국내 보험업법에 따르면 예정이율 변경 등의 계약 전환은 보험사가 파산이나 매각에 처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경기부양책으로 금리는 인하했지만, 이는 보험사들에겐 악재로 다가오는 요인”이라며 “금리 인하에 따른 역마진을 대응하기 위한 뚜렷한 방안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보험시장의 각종 규제를 완화해 성장을 도모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