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베이징현대 본사 사옥. 출처= HMG저널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이 침체된 내수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소비 촉진책을 내놓았다. 해당 대책에는 자동차 번호판 발급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도 담겨 눈길을 끈다. 중국에 진출한 전세계 완성차 업체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가개발 개혁위원회, 중앙 선전부, 교통부 등 중국 부처 23곳은 이달 13일(현지시간) 중국 내수 시장 활성화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코로나19로 들이닥친 불경기에 대응해 소비자들의 상품·서비스 구매를 촉진하려는 취지로 시행한다. 이번 개혁 방안에는 이번 전염병 대유행(팬데믹)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은 자동차 시장에서 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한 계획도 담겼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내수 판매량은 작년까지 2년 연속 감소했다. 미국·중국 양국간 무역갈등같은 요인으로 기업별 생산 활동이 위축되는 등 시장 불확실성이 심화함에 따라 현지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가 쪼그라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 승용차연합회 등에 따르면 2018~2019년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2235만1620대, 2069만7600대로 각각 전년 대비 3.0%, 7.4%씩 줄었다. 올해 1~2월 자동차 판매량도 223만8000대로 작년 같은 기간 385만8620대에 비해 42.0%나 감소했다.

중국의 중앙 정부는 이번 개혁 방안을 통해 자동차 번호판 발급 규제를 완화하도록 지방 정부를 장려할 방침이다.

중국은 지난 1994년 베이징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자동차 등록대수가 비교적 큰 직할시·성 10곳에서 순차적으로 국민들에게 자동차 번호판을 한정 발급해오고 있다.

번호판을 발급해주는 정책을 도입한 이유는, 중국 산업이 발전할수록 대기질 악화 등 환경오염, 교통 체증 같은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출가스를 현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보고 자동차 수를 제한하고 나섰다. 발급 규모는 해당 규제를 도입한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연간 10만~12만개를 추첨이나 경매를 통해 국민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번호판 규제가 도입된 지역에서는 자동차를 구매하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국내외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2018년 번호판 규제를 도입한 베이징의 지방정부가 번호판 10만개를 발급하는데 100만명 이상이 몰렸다. 작년엔 한 중국인 남성이 베이징에서 번호판을 갖고 있는 여성과 위장 결혼해 번호판을 이전받은 뒤 이혼한 사실이 발각돼 사회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자동차에 대한 중국인들의 높은 수요를 방증하는 사례다. 이번 규제 완화책이 완성차 업체의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17일 현재 규제 완화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지방 정부에 제시하지 않았다. 삼성증권은 올해 규제 완화 수준이 작년 대비 100%(2배) 증가한 규모를 보일 경우 200만대 상당의 수요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번호판 발급 비용 비싸…구매력 갖춘 고객 대상 프리미엄 카 앞세울 만

다만 해당 도시의 거주자들은 번호판을 발급받기도 어려운 데다 큰 비용을 발급 수수료 명목으로 당국에 지급해야 한다. 최근 2~3년 간 번호판 발급 비용은 한화로 1000만~3000만원에 달했다.

번호판 발급 비용은 높게는 차량 가격을 압도하는 수준을 보인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마크라인즈(Marklines)에 따르면 작년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하이폭스바겐 세단 ‘라비다(Lavida)’의 최소 가격은 15만8900위안(약 2716만원)이다. 차량을 구매하려고 번호판 발급 대기열에 뛰어든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구매력을 갖춘 것으로도 풀이된다. 번호판을 확보하더라도 차량을 구매하지 않으면 다시 당국에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중국 소비자 특성을 감안해, 중국에 진출한 완성차 업체들이 프리미엄 차량을 바탕으로 프로모션을 전개할 만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작년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량 10종의 특징을 살펴보면, 하발(Haval)·울링(Wuling) 같은 현지 토종 브랜드 또는 폭스바겐·토요타·뷰익 등 외국 업체의 합작사가 각각 출시한 소형~준중형급의 보급형 모델이다. 이들의 가격대는 한화로 1000만~3000만원대에 달한다.

이들 브랜드나 제품이 앞서 시장 입지를 공고히 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경쟁자가 상위 리스트에 오르긴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완성차 업체들이 프리미엄 모델을 차별화 제품으로 내세우는 게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번호판 규제 완화책이 시행되는 대도시에서도, 처음부터 높은 경제력을 갖춘 고객층을 겨냥하는 방안이 성과 창출에 유효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현대자동차 제네시스는 연내 대형 SUV GV80을 중국 시장에 출시하려는 목표를 둔 상태다. 중국인들이 주로 꼽는 프리미엄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 토요타 등 독일·일본 브랜드들도 완성차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맥킨지앤컴퍼니는 작년 중국시장에서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7% 확장한 것으로 분석했다.

남대엽 계명대 국제지역학부(중국학전공) 교수는 “중국 당국이 번호판을 더 많이 확대하는 점은 소비자 수요를 진작시키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경제적 여유가 있는 번호판 발급 대기자들을 프리미엄 차량으로 공략하는 차별화 전략이 통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분석했다.